[사진]


신쥬쿠 가부키쵸의 호스트 바






[...]



오늘 부터 겨울방학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모시모시...'

'어... 나야.'

'엉. 왜?'

'너 방학이지.'

'엉.'

'일해 볼 생각 없어?'

'일...  돈 많이 주면 하지.'

'배부른 소리하네. 너 방학 때 할 거 있어?'

"뭐... 별로.'

'애인 있어?'

'넌 있냐?'

'그럼 됐다. 오늘 나랑 일자리나 구하러 다니자.

크리스마스 특수다, 연말이다 해서 지금 부터 시작하면 꽤 짭짤해'





그렇게 해서 뜻하지도 않게

일자리를 구하러 이곳 저곳을 헤매고 또 헤맸다.

오늘 하루 동안

동경 땅에서 유명하다 싶은 곳은 모조리 찔러 본 셈.





한참을 걷다가 지친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왕이면 돈 많이 벌고 싶지 않냐?'

'당연하지.'

'그럼 도쿄 겠지?'

'여기가 도쿄잖아.'

'그럼 도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곳은?'

'긴자? 이케부쿠로? 신쥬쿠?....'

'맞아. 신쥬쿠... 그 중에서도...'

'가부키쵸?'

'그렇지. 환락의 거리, 가부키쵸!! 말이 통하네'

'가부키쵸에서 뭘 하는데...'

'NO.1이 되는 거지...'

'무슨 헛소리야...? 야쿠자 밑이라도 기어 들어가자고?'

'아니.. 아니..'

'?'

'호스트'

'.... ...'






어안이 벙벙했다.

유학생이 호스트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호스트를 할 기본 예의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매가 죽이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유창한 일본어 구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향한 곳은 신주쿠의 가부키쵸였다.

무언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따라갔다.

어쩌면

워낙 말도 안되는 일을 때때로 가능하게 하는 녀석이라

될지도 모르겠다는 믿음이 있어서

따라간 건지도 모르겠다.





가부키쵸의 거리에 들어서자 가슴이 두근 거렸다.

하지만

더욱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창희의 눈빛이었다.

친구의 눈빛은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 호스트가 되어볼 생각인 듯 했다.

나는 은근슬쩍 겁이나 녀석에게 물었다.





'너 진짜로 할려고?'

'그럼 가짜로 하냐.'

'그러다 잡혀서 귀국하면 어쩌려고?'

'그때는 귀국하지 머.'

'한국인을 받아줄까?'

'야 그럼 호스티스로 일하는 여자들은 어떻게 일하는데.

긴자 호스티스들 중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3개월 빡시게 일한다음 집 한채 만들고 가는 거지.

말은 별로 신경쓰지마.'

'무엇보다도 이런 몰골로 가도 되는 걸까?'

'누구는 처음부터 호스트였나 머.'




10분쯤 지났을까.

환락의 거리 가부키쵸가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실 정도의 전광판들....

우리는 이 거리의 수많은 호스트바 중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이왕 실패하더라도

이 정도쯤 되는 곳에서 퇴짜를 맞는 게

자존심은 덜 상하겠지 싶은 곳.





호스트바에 들어가자

빨간 융단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벽면에는 금박의 액자에 호스트들의 사진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 벽면을 따라 몇개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룸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왠지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녀석이 입구에 서있는 말쑥히 생긴 금발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무언가 한참동안 말을 하는 사이, 나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 있었고

그 사이 미니스커트에 하얀 모피를 입은 여자들이

몇명 들어왔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키색 정장을 입은 금발남자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

 힐끗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불렀다.


'어이.... 오마에'


'오마에'는 반말이다.
 
한국어로 하면 '너'쯤 되는 말.

일본에서 누군가가 나를 이런 식으로 부른 건 처음이었다.

그 사람은 카운터의 뒷쪽 문을 가리키며 그 쪽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 ....




호스트들이 쉬는 곳으로 보였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연가죽 소파에 대리석으로 된 기다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고 구석에는 조그마한 검은색 냉장고가 한대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거기서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녀석은 무얼하고 있을까....






그리고는 아까와는 다른...

이번에는 윤기나는 검은색 머리에 나 정도 되는 키의 남자가 들어왔다.

얼굴은 하얗고 곱상했지만 눈빛은 아주 차가웠다.

그는 내 반대 쪽 소파에 털썩 앉더니

말보루 레드를 꺼내고는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단 한번도 나를 바라 보지 않고 한참동안 무언가를 응시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 눈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치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마에 나니 얏뗀다요.....'(너 뭐하냐)

'하이?'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남자를 쳐다 보았다.

그는 다리를 다시 한번 꼬더니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에 문 담배를

가리키며 허공에서 툭툭치는 시늉을 했다.

담배불을 붙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제서야 말을 알아듣고 성급히 라이타를 찾았다.




'다메... 다메다....'(안돼 안돼...)

'하이...?'

나는 또 영문을 몰라 그 남자를 쳐다 보았다.




'모또 하야꾸 야레... 소레데 나니가 데키루'

(좀더 빨리 해... 그래 갖고 뭐가 돼겠어...)

그리고는 나에게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했다.

이 정도는 호스트가 아니라도 눈치를 챘어야 할 부분인데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호스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직업이다.

게다가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하는 직업이다.

너처럼 눈치가 느린 녀석은 이미 실패라고 했다. 

그리고는 담배를 다시 입에서 내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될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이렇게 되니 오기가 생겼다.





'조또 마떼 구다사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아.... 오마에와 젯따이 다메'

(넌 절대로 안돼.)

'고훈. 쵸우도... 고훈 다케데 쥬분데쓰.

와따시노 하나시오 키이떼 구다사이.

오네가이 이따시마쓰.'

(5분. 정확히... 5분이면 충분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나보다 어릴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 ...



녀석은 조용히 나를 쳐다 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좀 괜찮군' 이라고 말했다.

또 영문을 몰라 내가 말을 잊지 못하자

그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때는 정중히 일어서서

그렇게 고개를 숙이라고 말했다.

너는 호스트가 되려고 여기에 온 사람으로

자신이 이 방에 들어올 때까지 서 있어야 되는 것이

예의였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 섬찟했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따지는 구나.... 하고.

그냥 편하게 돈을 버는 양아치로만 생각했는데 

돈을 그냥 버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그는 그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것은 여자의 마음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움직이기 쉬운 생물의 마음이라고.

그 마음을 잡기위해선 조그마한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제 3자의 입장이었다면 

여자들 등처먹는 직업 주제에 폼을 잡는다고 생각했을 텐데 

막상 나의 일이 되니 한마디 한마디가 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정말로 긴 시간동안 우여곡절이 있었다.

세세한 이야기는 직업상 비밀이니...




어쨌든 나는

내일부터 가부키쵸의 'CLUB GOLD'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어떻게 된 건지 어안이 벙벙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

나 또한 NO.1이 되고 싶다.

이 곳에서라면

 '사람의 마음'에 대해

좀 더 빨리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 여기까지가 호스트 바의 광고사진을 보면서 상상한 내용.

어쨌든

가부키쵸의 스시는 먹을만 했다.









BY 죽지 않는 돌고래 / 0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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