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쥬쿠 11번 라인.
아래 글은
저 11이라는 숫자의 오른편에서 쓰여진 것이다.
나는 살면서 유독 11이라는 숫자를 많이 접하는데
역시나 당신과 마찬가지로
시계만 봤다 하면 11:11분이다.
[AM
신쥬쿠.
11번라인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오른편.
(검은색 바탕에 11이라는 숫자가 크게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속의 형광등으로 인해 빛을 발하고 있다.)
바로 그 곳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귓가에는 잭 존슨의 Good people.
휴일,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JR중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다.
주위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에스컬레이터의 이동에 의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한 일본인 여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실 일본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뛰어가서 물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소한 호기심에 전력을 다하는 편이지만
그녀의 국적 문제 정도로 전력을 다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리고 그녀가 까다로운 성격일 경우
‘왜 그런 것을 물어 보나요’라고 되물 었을 때,
그것은 상당히 곤란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어쩌면 국제 문제로 까지 번질지 모른다-
이것은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는
그녀와 그녀 친구들간의 수다의 한 토막에서
‘나 신쥬쿠에서 작업 당한거 있지-’
라며 시작되는 대화의 일부분으로
내가 등장하는 것은 굉장히 억울하다.
-어쨌든 나는 그럴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으므로-
또한
그런식으로 밖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가여운 존재로 그녀가 그녀의 친구들에게 보여지는 것,
혹은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한
배려가 담겨 있기도 하다.)
갈색 염색의 기운이 이제 막 빠지기 시작한,
그래서
다시 염색을 해야 할 때가 온 듯한 긴 머리칼.
가슴 위쪽으로는 알 수 없는
(정말로 알수 없다.
그것은 이미 지구레벨의 디자인을 벗어나 있다.)
흰색 문양이 새겨진 검은 티.
녹슨 듯한(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청바지.
그리고
베이지색 핸드백을 손에 든 그녀.
에스컬레이터를 완전히 내려와서는,
바쁜 움직임 속에서 홀로 두리번 거리고 있는 그녀는,
역시 바쁜 움직임 속에서
여유있게 벽에 등을 기대고
무언가를 깨적거리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뒤로 돌아 지하철의 안내판을 확인하더니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 ….
길치는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다.
by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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