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의 한국인이 버려진 나리타 공항>

 

 

현재 시각 pm12:35.

비행기의 출발 시각은 10:45.

지금 나는 'NH907'기를 타고 있.어.야.만.한.다.

게다가 어제 밤을 샜으므로

지금 쯤 기내에서 쓰러져 자고 있.어.야.만.한.다. 

꼭.그.래.야.만.한.다. 

도대체 왜 내가 지금 이 시각,

이 곳,

그것도 나리타 공항의 인터넷 액세스 실에 앉아 이 글을 적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나와 같이 동경으로 건너온 14명은

지금 쯤 비행기에서 곯아 떴어졌거나, 

짧았던 동경의 추억에 젖어 있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공항에 마중나올 누군가를 생각하며

설레임을 느끼고 있을텐데 말이다.


 

<나리타 공항의 인터넷 액세스실, 

사진에 보이는 의자의 맨 왼쪽 구석 2번째 자리에서

현재 이 글을 적고 있다>

 

할 수 만 있다면 똘스또이나 무라카미의 문장력을 빌리고 싶다.

도대체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나조차 알 수 없다.

am5시 58분,

히가시 아즈마역에서 덴샤를 타고 출발한 후,

코이와 역에서 리무진 버스를 불과 4분여 차이로 놓쳤다.  

그리고

7시까지 버스를 기다리다가,

고속도로에서의 10중 추돌 사고가 일어나 

공항에 제 시간에 도착하기 힘들꺼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스카이라이너를 탈 계획으로

부랴부랴 우에노로 방향을 바꾼 다음,

혹시 늦어질까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신코이와에서 7시22분안에 내리면  나리타까지 쾌속덴샤로 갈 수 있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순간,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하니

7시 18분,

그리고

현재역 신코이와.

문이 닫히는 순간,

뛰쳐 나가듯이 신코이와 역에 내려

겨우 겨우 쾌속덴샤로 갈아 탈 수 있었다.

 

 

<바로 이 덴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왕 마지막인데 1000엔 더내고 편하게 가야지'라는 생각에 탄 그린카.

몇몇 덴샤안에 먼 길을 가는 승객을 위하여 이런 칸이 있음>

 

1시간 10분간 쾌속덴샤를 타고 가다  

실수로 나리타 제2터미널에 도착.

 

공항의 버스를 이용,

다시 1터미날에 도착했을 때가 

9시 20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코노미 클라스에서

30분이 넘게 긴 줄을 기다렸다.

 

 

 

<바로 이 줄, 가난한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은 기다릴 수 밖에. 

이 때만 해도 이 줄이 끝나는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는

당연히도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드디어 수속절차를 밟으려는 순간

'손님은 오늘 비행기로 예약되지 않으셨는데요.'

...라는 영혼마저 녹아내리게 만드는 직원의 말이 들렸다.

 

나는

'15명 중에 저만 다를 리가요. 분명히 학교에서 예약을 했고

같이 가고, 같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요.

무언가 분명히 잘 못된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무언가 잘못 됐다면 오늘로 꼭 바꿔 주세요.

.....돈도 없어요

라고 답변했다.

20분동안 카운터 구석에서 기다린 뒤

'오늘은 만석입니다.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도 오늘 이것 한대

뿐이구요.'

'절대 안되는 겁니까? 정말 절대 절대 절대 안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오늘은 무리네요...최선을 다했는데

캔슬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 라는 말을 듣고 이 시각까지(1:23) 나리타 공항에 혼자 남겨져 있다.

 

 
<또 한번의 사고, 정말 고마운 사람들>


 

모두가 출발한 후 1시간이 지났을 즈음이다. 

그러니까 11시 30분 정도.

'근래'에 보기 드문,

아니 '근세'에 보기 드문

짜증과 화가 나를 덮치는 중이 었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 실수로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면,

나는 내일자 마이니찌 신문 1면에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찾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곧 휴대폰이 없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선 지갑을 확인했고

('지갑까지 없어지면....' 이라는 생각이 나를 덮쳤다. 다행히 지갑은 가방안에 있었다.) 

가방  하나하나를 꼼꼼히 체크한 후,

내가 공항 내에서 앉았던 의자,

걸었던 길 하나 하나를 모두 살펴 보았다. 

어디에도 내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었다.

 

'김창규, 정신차려 임마. 비행기 캔슬 된거에 열 받아서 휴대폰까지

잊어 버리냐. 겨우 이런거에 열받아서 정신 놓고 다니냐.

정신차려,김창규. 정신차려, 김창규. 정신차려....'

 

...라고 말이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공항의 한켠에 서 있는 

공항 내 직원을 찾아 갔다. 

'저... 잊어 버린 물건은 어디서 찾나요?'

'음. 인포메이션을 이용하시는게 빠르실 것 같은데요.'....라며,

그녀는 두 군데의 인포메이션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중 가까운 쪽을 택했고,

인포메이션의 그녀가 묻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핸드폰의 모양이라던가, 색깔이라던가....

(바보같이 내 번호는 까먹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휴대폰의 배경화면을 묻더니 낯이 익은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 ...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여권의 번호라던가, 주소, 싸인 등 간단한 절차를 거치고

휴대폰을 돌려 받았다.

 

 

위 사진은 그 후,

'정말 너무 고마워서 그러는데요.

업무중에 바쁘시지만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도와주신 분의 사진을 꼭 남기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에 고마운 분들의 사진을 올려 기억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세 명이 잠시 웃으며 서로 눈치를 보았다.

잠시 후,

남자직원은 내가 인포메이션 센터 안에 들어 올 수 있도록 

무릎 높이의 낮은 철장문을 살짝 열어 주었다.

'자 그러면 이 2명의 미인을 찍으시죠.' 

'아니요. 같이 찍으셔야죠. 3분 모두. 3분이 같이 도와 주셨잖아요.'

 

하나-,둘-. 셋-,,.....

그렇게 해서 남기게 된 사진이다.

나리타 제 1터미널.

그 중 가장 오른 쪽 끝에 위치한 인포메이션에서

11시 50분경에 일하던 3분. 

정말 고마웠어요.
 

 

<현재의 모습.  

동경 나리타 공항의 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인터넷 액세스실,8월 6일 오후 2시>

 

덧붙이자면

밤을 샜고,

아직 한끼도 먹지 않았으며,

기분은 절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재밌는 점은 훨씬 화가 가셨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캔슬된 상황에서는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휴대폰까지 잃어버린 상황을 거치고 보니,

그리고 

다시 찾고 보니,

 어느 정도 페이스를 찾고 있는 중이다.

 

마치 신이 나를 가지고 노는 듯 하다. 

힘들 때 투덜거렸더니 그 보다 더 힘든 일을 준다.

그리고

그  '더 힘든일'에 지쳐 갈때 즘, 

'더 힘든일' 을 없애 버린다.

그러면 그제서야 '힘든 일'에 투덜 거리지 않는다.

... ...

설마 신이 그렇게 짓굿진 않겠지?

 

 

<슬슬 한가해져가는 나리타 공항>

 

 

어쨌든 시간은 계속 흐른다.

공항에서만 벌써 5시간이 넘어간다....

어차피 오늘은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으니

가는 건 틀렸지만,

금 더 이시간을 즐겨야 겠다.

그러고 보면

이러고 있는 것도 슬슬 재밌어 진다.

 

 

 

 

 

 

by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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