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하일기가 뭔데? 
- 사행록(使行錄)의 전통에서 창작된 연암 박지원의 여행기 되겠다. 그럼 사행(使行)이란 뭔가? 사신행차란 뜻이다. 조선의 관리가 원만한 외교를 위해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걸 뜻하는데, 갔다 온 쌔럼들이 보고 들은 걸 여행기로 남기는 게 사행록(使行錄)이란 말씀.  

 


2. 근데 왜 하필 열하에 간 거임? 
-원래 목적지는 북경이었다. 헌데 연암 일행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넨장, 당시 중국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북경에서 400리 떨어진 열하에 간 게다…! 

 

 

대충 1,600km!!! / 이미지 출처: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1>, 휴머니스트, 2006

 

건륭제라면 당시 세계관 최강자…! 앤드  세계관 최강 관종이라 특별한 생일을 치르고 싶었고, 몽골과 티베트 등의 사절단을 두루두루 고려해 열하에서 고희 잔치를 열은 게다. 이에 조선 사신단은 크… 큰일 났다…! 뿌… 뿍경에서 열하까지 시간 맞춰서 가지 않으면 황제님이 노하셔…!, 해서 급히 사신단 중 74명을 추려 열하로 졸라 달려갔고 박지원은 그중 한 명이다. 즉, 연암은 조선 사신단 최초로 열하에 간 셈이다. 

 

참고로 박지원 형아 고생시킨 건륭제 할부지는 일케 생겼다고 함!

 


3. 열하는 어딘데? 
- 지금 중국으로 치면 청더시. 열하는 옛 이름이다. 날씨도 굿, 자연도 굿, 풍경도 굿이라, 청나라 황제가 요양, 휴식, 집무의 목적으로 별궁을 지었는데 여기서 열쒸미 놀고 열쒸미 일했댄다. 

 

지금의 열하(청더시)는 이런 느낌. 저 건물이 그 유명한, 청나라 황제들, 그니까 건륭제도 룰루랄라 쉬었던 피서산장.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하다는!

 


4. 근데 박지원은 백수 아니었음? 애초에 백수가 거기 왜 간 거임? 외교통상부 직원들 사이에 백수 끼워줌?  
- 한마디로 빽… 이다. 

조선 사신단의 목적은 첫째가 건륭제 칠순 생파 축하, 둘째가 당시 1년 전, 조선 사신단이 북경 숙소에 불냈을 때;;; 책임을 안 물어서 땡큐 황제님하!,를 전하기 위해 간 거다. 총인원은 270명이었다. 참고로 공식 명단엔 연암의 이름이 실리지 않았는데, 사신단 총책임자로 연암보다 열두 살 많은 8촌형인 박명원의 추천을 받아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갔기 때문이다. 글타. 빽이 좋았다…. 자비로 비글호 탄 다윈이 생각나기도…?! 아, 참고로 연암(직업: 백수/여행비용: 자비)은 1780년 당시 44세, 다윈(직업: 대학원생이라 쓰고 백수/여행비용: 자비)이 비글호 탄 건 1831년 당시 22세란 차이가 있다.    

 


5. 얼마나 걸린 거임? 
-1780년 5월 25일 한양을 떠나 동년 10월 27일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5개월의 여정이다.   

 


6. 근데 열하일기가 왜 글케 인기 쩔었던 거임? 사행록 그러니까 여행기 겁나 많았을 터인데?    
- ㅇㅇ. 일단 귀국한 연암은 한양과 연암협을 오가며 열하일기를 썼는데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탈고가 되기도 전에 너도 나도 베끼고 전해져(해적판… 토렌트… 불법출판 근절하자…!) 한양의 화제가 되었다. 열광적 반응 못지않게 오랑캐 연호를 썼네, 문체가 불순하네, 비난이 따랐는데 급기야 국왕 정조까지 열하일기를 읽었다. 일개 야인 백수 나부랭이가 쓴 글을 왕까지 읽을 정도였던 거니 지금으로 치면 커뮤니티 게시판에 라노벨 썼는데 초대박…?! 

 


7. 다른 여행기랑 뭐가 달랐는데?  
- 당대로 치면 제목부터가 논란이다. 일단 “열하”란 제목 자체로 시비 거는 사람이 졸라 많았다. 조선 사람들 입장에선 오랑캐… 땅 이름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 주류 사대부는 오랑캐가 다스리는 중국 땅(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을 밟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여겨, 혐오하는 땅의 지명을 써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중국은 아버지 나라인 명나라를 무너트린 원수의 나라요, 병자호란 이후, ‘무찌르자 오랑캐!’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가장 강력한 국가 이데올로기였으니 말 다했다. 요즘으로 치면 남북관계 무지 안 좋을 때, 김정은 만나러 평양 간 이야기쯤 되려나.  

허나 연암은 잣까! 정신으로 조선 사람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열하까지 갔고, 열하에서 경험한 일을 주로 썼으니 열하라고 대놓고 썼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아무리 명칭이 비루해도 꺼려서는 아니 되며 실상이 속되어도 은폐해서는 안된다”는 명실상부의 정신에 입각해서 쓴 게다. 즉, 당대로 치면 배짱이 쩔었다는 얘기.   

아, 또 하나.

 연암은 책에서 명나라/조선/청나라 세 개 연호를 이어 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놈;;; 방식으로 썼는데 이는 연암만의 표기법이다. 시간 표기를 서기 2020년, 단기 4553년, 불기 2564년이라 쓴 셈이다. 이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만 지키겠다는 고집도 아니고, 조선만 중심에 두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근본주의 춘추의리에서 벗어나 발 딛고 있는 지금을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하겠다. 일단 연호로, 책 첫머리에,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지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참고로 조선 시대에는 수도인 한양을 장안이라 부르곤 했는데 ‘장안의 화제’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장안이 워낙 번화하고 유명해지니 수도를 일컬을 때면 으레 습관적으로 장안이라 한 게다. 이처럼, 연암은 지나가 버린 남의 나라 수도 이름을 쓰는 걸 예로 들어 “명칭”과 “실상”이 뒤죽박죽 되어 지저분해진다고 생각했다 -창애에게 답하다 중에서(열하일기 첫걸음, 박수밀 저서에서 재인용)

 


8. 그럼 치우치지도 않고, 아주 사실적으로 썼고, 논란의 한 복판…  뭐 이런 게 열하일기 포인트임? 
- ㄴㄴ. 글케 단순하지 않다. 박수밀 교수에 따르면 열하일기는 감동을 목적으로 하는 정서적 글이 아닌, 깨달음을 주는 자각과 성찰의 글이다. 사전 배경 지식 없이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그저 그런 여행기란 말씀(유홍준 교수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 참고로 유홍준 교수 인터뷰는 “범인은 이 안에 없다”를 참고하자. 좋은 인터뷰집이다. 왜냐하면 죽지않는돌고래가 인터뷰어이기 때문이다). 

알고 읽으면 역사, 지리, 풍속, 문화, 경제, 문학, 예술, 건축, 의학, 종교에 이르는 조선 시대 역사와 문화, 사상을 아우르는 모든 내용이 망라되어 있다. 즉, “줄탁동시”하며 읽어야 한다. 줄탁동시, 뭔 말인지 모르지? 에헴.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안에서 쪼는 걸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깨트리는 걸 “탁”이라 하는데, 박지원은 깨우침의 계기인 탁을 제공할 뿐,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으려는 “줄”은 내가 해야 한다, 이 말씀이다(… 라고 박수밀 교수가 그랬음. 사실 나도 줄탁동시 뭔 말인지 몰랐…). 

 

참고로 박수밀 교수님은 일케 생김. 어려운 말은 모두 이 분에게 따지자... / 이미지 출처: 시민행성 홈페이지


연암은 사실의 언어가 아닌 진실의 언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진실을 전하기 위해 때로 허구와 상상의 언어를 썼다. 해서, 여행 감상문처럼 읽으면 안 되고, 어라? 할 때는 숨은 의도를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그게 이 책의 묘미고 당대를 총망라하는 연암의 맛이다.  

 


9. 아 맞다. 백수의 라노벨… 아, 아니, 백수가 쩌는 책 쓰고 왕까지 읽었는데 뭐 없었나? 금일봉 안 주나? 
- 이게 열하일기에 얽힌 가장 재미있는 사건 중 하나다. 당시 정조는 안 그래도 세상의 잡스러운 문체를 바로잡고자 하는, 흔히 “문체반정”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인데 

“법망에서 빠져나간 거물”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에 문체가 이와 같이(이따위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당연히 결자해지 하도록 해야 한다.”

등의 평을 하며 박지원에게 잡스러운 문체에 대해 반성하고 순수한 글을 지어 올리라고 명했다. 자. 그럼 박지원은 반성했나? ㄴㄴ. 박지원은 고작 이런 장난스런 글이나 쓰는 내가 반성문을 써서 벼슬을 얻으면 이것이야말로 신하 된 자의 도리가 아니다, 라는 글을 써 올린다. 즉, 끝내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

 

정조 표준영정. 이분한테 개겼다는 말씀. 참고로 정조 어진은 모두 불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므로 상상도이다!


간지긴 한데 당대에 왕한테 개긴다는 건, 글고 왕이 내린 정책에 정면 대응한다는 건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대담함, 자신의 작품을 낮춤으로써 신념을 지킨 노련함, 글고 배짱이 동시에 돋보이는 박지원 인생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10. 이제 대충 대단한 건 알겠다. 근데 연암 박지원의 연암은 뭔 뜻이냐?  
- 잠시 은거하던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서 따왔다. 연암협은 ‘제비 바위 골짜기’라는 의미인데, 제비들이 바위나 벼랑에 집을 짓고 살 정도로 험한 골짝 마을이었다. 퇴계, 율곡처럼 옛사람은 사는 집이나 마을 이름을 호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호’에는 집과 고향을 자신의 인격처럼 여긴 선조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는 말씀이다. 

붓싼 죽지않는돌고래…, 충정로 죽지않는돌고래…  아, 지금 쓰니까 좀 이상하네…  

 


11. 연암은 우째 생겼음? 존잘임? 
- 7할은 닮았다 평을 받는, 연암의 손자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 우람한 풍채에 눈매가 매섭다. 실제 주변 사람을 압도할 만큼 풍채가 컸다 한다. 한마디 하면 주위가 조용해졌다고도 하고, 일단 얼굴만 보면 좀 조폭 대장같이 생겼다(…).

 

이게 손자 박주수가 그린 초상. ... ... 내가 그랬잖아.. 무섭게 생겼다고...

실제론 어릴 때부터 담이 작고 겁이 많아 대낮에 빈방에 들어가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였다 한다.  

 


12. 연암은 대충 어떤 사람임? 

1) 탁월한 문장가다. 뭐 대충 다른 사람 말을 좀 빌리자면,  

- 우리나라 문장가들은 입만 열면 성명(性命)을 말하고 성리학을 베끼는 폐단을 보였는데, 오직 연암만이 여기서 벗어났다. - 운양 김윤식 


- 조선 500년 역사에 퇴계, 율곡의 도학(道學)과 충무공의 용병과 연암의 문장, 이 세 가지가 나란히 특기할 만하다 -창강 김택영

2) 우울증, 불면증, 울화증 환자

- 연암은 18세 전후로 오랫동안 우울증을 동반한 불면증을 앓았다(친했던 사람들도 쟤 좀 이상해… 하고 피할 정도). 글고 69세로 죽을 때까지 늘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병을 앓았다…. 둘째 아들 박종채(1780-1835)의 증언에 따르면, 젊은 시절, 권력과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환멸, 아첨꾼들의 비방, 어그러진 이상과 현실, 쏟아지는 비난과 원망의 말들이 이유인 듯하다… 

뭐. 정신과 의사들이 흔히 병원에 정작 와야 할 사람은 밖에서 멀쩡히 잘 다니고 실제론 오지 않아야 할,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온다카던데 글고보면 요즘 우울증 걸리는 사람들이랑 다르지 않네…   

3) 도덕보다 이용후생을 중요시했던 괴짜 선비(?)

- 당시 조선 선비 사회의 분위기는 책을 구입하는 일조차 꺼리는,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부끄러워했다. 도덕과 윤리만 잘 서면 그뿐이며, 먹고사는 문제에 마음을 쏟으면 짜쳐 보인다는 게 그때 분위기다(…). 해서 실제의 삶보다 형식에 집착해 백성은 가난했다(…). 

연암은 이용후생을 중시했다. 이용후생이 뭐냐! “이용”은 도구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고 “후생”은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한다는 뜻인데 즉, 생활의 도구를 쓸모 있게 만들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연암은 이용후생을 하면 도덕이 바르게 설 것이라 생각했다. 즉, 이용후생과 정덕을 경중의 문제로 보지 않고 선후의 문제로 본 사람이다. 

- 연암은 열하일기 “일신수필”에서 깨진 기와 조각과 똥오줌이야말로 중국의 장관이라 하였는데, 버리는 기와 조각을 담장에 배치해 멋진 무늬를 만들고, 뜰에 깔아 비가 내려 진창이 되지 않게 하는 걸 유심히 본다. 그리고 똥오줌을 거름으로 쓰는 기술에 감탄한다. 조선 후기에 한양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여기저기 똥오줌이 즐비해;;; 똥오줌 처리가 문제 될 시기에, 이를 소중한 자원으로 잘 활용하는 중국을 보고 감탄한 것이다. 선비들이 오~ 과연 장관, 대국은 풍경이 좋쿠나… 뭐 이러고 있을 때 연암은 길바닥 인간의 삶과 생활을 본 게다.     

4) 화는 잘 안 내지만, 낙타 못 보면 빡치는 호기심 대장 

- 어지간한 일에 화를 내지 않는 연암이지만 자기가 조는 사이에 낙타가 지나간 걸 하인이 말하지 않았다고 속이 상해 화를 낼 정도로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물론 그 외에 하인에겐 당시 선비로서는 보기 드물게 매우 인간적으로 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낙타 지나갈 때 안 깨우면 화낸다(…). 

 

조선의 박지원이 날 보고싶어 했다규?


5) 이상한 친구 많음  


- 지금의 종로구 탑골공원 내에 있는 백탑 근처가 주서식지(?)였다. 거기서 18세기 스타 실학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정철조, 이서구 등과 어울렸다. 

 

홍대용, 이 분과도 친구! / 출처: 어린이 강원일보

모두 백탑 근처에 살았다. 지금은 탑골 뇐네라 놀리지만 그때는 힙스터 중의 힙스터가 모이는 곳이었다구…!

 


13. 아참. 그럼 연암은 계속 백수였던 거? 
- 일단 50세까지는 무직이었다(…) 집안은 명문가지만 대대로 청렴한 집안이라 가난했다(지금 기준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은 가난한 거 가지고 뭐 자랑질이냐, 바보 같은 것들…!’, 하지만 그땐 실제로 봉급만 받고 청렴하게 생활하면 양반이라도 정말 가난했다…). 글고 과거 시험 치랬더니 답안지 대신 그림을 그려놓고 나와 비웃음을 당하질 않나, 1차에 장원해놓구 2차를 백지로 내질 않나, 이후에도 과거에 도전했다가 떨어지고… 뭐 여튼 천재는 천잰데 우여곡절이 많아서 돈과 관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처가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밖에. 오십이 되고는 친구 유언호의 추천으로 종 9품 선공감 감역이 되어 드디어 벼슬길에 오르긴 한다…!(누… 눙물이…!) 

 


14. 가족은 힘들었겠다… 우째 평생 고생한 아내는 박지원이 나중에 유명해지고 벼슬한 덕을 좀 보았나?
- 박지원만 아내 덕을 보았다… 전주 이 씨인 아내는 박지원과 동갑내기로 16살에 결혼했는데 아주… 고생했다. 말했다시피 50세까지 남편이 백수였으니까(…). 안타까운 건 박지원이 벼슬에 오르자 반년도 안 되어 아내가 죽는다… 당시 실질적으로는 일부다처제였던 조선시대에 연암은 아내가 죽고 다시는 재혼하지 않았다. 첩도 두지 않았다. 평생 아내를 그리워했으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남겼고, 한글을 배우지 않아 아내와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지 못했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있을 때 잘하자… 한글 배우자…).    

 


15. 자식들은? 
- 2남 2녀를 두었다. 지방관 생활을 하며 자식들에게 반찬거리와 고추장을 직접 담가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을 안 해서 툴툴대는 편지가 무지 유명하다. 무지 유명하지만 재밌으니까 한 번 더 보자.  

“이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간에 반찬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이나 장조림 따위의 반찬보다 나은 것 같구나.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연암선생서간첩”

글타… 부모 마음 다 똑같다… 

 


추신
위 정리는 <청년, 책에서 길을 묻다> 1회 대담 사회를 보기 이전에 아내한테 보여주려고 만든(책 읽고 이런 거 해주면 좋아하는 스타일);;; 제 나름의 요약본입니다.

요런 행사라는. 진행자가 나니까 계속 재밌을 듯? 으응?!

우째 그날 행사에서 텐션이 올라버려 필요하신 부우우우운~ 하고 말이 헛나와;;; 뒤늦게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내가 일케 책임감이 강하다아아아아아…! 근데 육아 끝내고 드라마 배터 콜 사울, 그린마더스 클럽 넘 잼나서 정주행하다가 늦었다아아아아아…! 내가 이렇지 뭐…)이제사 올리게 되었습니다. 

 

보면 제가 왜 늦었는지 알 거라는... 겁나 재밌...


원본은 이래 저래 마음에 드는 문장까지 넣었는데 그럼 넘 길어져서 좀 줄여서 올립니다. 박수밀 교수님의 저서 “열하일기 첫걸음(돌베개)”이 넘 잼나고 군데 군데 위로를 많이 받아(나보다 400배 잘난 당대의 초천재도 일케 괴로워하고 힘들었는데 나 따위야, 같은 느낌이랄까)걍 나름 정리-요약 및 여기저기 추가본이라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레알은 박수밀 교수님의 책과 논문을 참고해주시길. 

 

꿀잼이었다는...


당일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신 <책방넷>과 <인사회>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잼난 기회를 제공해 주신 인사회 회장 양현범님(차 태워주신 거 캐감동… 인격자… 나 사계절 출판사 책 많이 살 거임…), 심신의 안정을 도모해주신 오래된 서점 안현주 대표님(애 셋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이미 신같은 존재…), 글고 쩜오책방 이마담님(나이차가 많이 나는데 왜 액면가는 비슷한 것인가… 왜 저분은 동안인가…)도 알게 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꾸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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