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열 선장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답답함'이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다. 하지만 그래서 안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마냥 답답하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며 불가능에 가까운 듯하다.

 

 

우선 밤새서 기사를 올린 김규열 선장 관련 첫 기사는 생각보다 조회수가 많지 않아 답답했다.(편집부는 조회수 확인이 가능하다.) 다 늙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남자가 필리핀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은 온갖 자극적인 사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관심을 끌기에는 힘든 일인 듯하다.

 

 

이 사건이 묻히면 내 자신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많은 사람에게 부탁했다. 영향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접근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가진 이외수 선생님이 트위터에 사실을 알려주어 참으로 고마웠다. 개인적으로는 한 맺힌 집안에서 태어난 어떤 못된 성질 때문에 점잖게 있지 못한 것 같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 사건이 딴지일보에서 처음 알려졌기 때문에 당사자가 피해를 입거나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후회를 평생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 중,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일이지만 꼭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어떤 일들은 보통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언론사 기자들이 더 적극적이다. 기자정신이 더 뛰어나서 그렇다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대체로 그렇다.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서도 어떤 새로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메이저 언론사가 1면 탑으로 싣기로 약속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는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준 마이너 언론사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이를 한발 먼저 그 마이너 기자(내가 존경하는 기자 중 한명이다. 지금은 시사 주간지에서 탐사보도를 맡고 있다.)에게 알렸고 메이저 기자에게 그 사실을 솔직히 말해 주었다.

 

 

메이저 언론사 기자는 기분이 나쁘다며 그 기사를 빼버렸다. 감히 딴 곳에 먼저 기사를 줬다는 이유다. 그런 어이 없는 이유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어떤 일들이 메이저 언론사의 기사에서 빠지는 일도 있다. 세상에는 딴지일보 편집장임에도 불구하고 재미는 없지만 꼭 알려야 할  기사에 높은 가치를 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편집장들도 아주 조금은 있는 듯하다.

 

 

나는 혹시나 그와 비슷한 이유로 이 사건을 처음 기사로 쓴 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 언론사나 방송사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일을 말해 주고 넘기는 편이 당사자에게는 더 나은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딴지일보 독자들 덕분에 이례적으로  외교통상부에서 빠른 반응이 있었고(놀라웠다. 독자분들께 정말 고맙고 외교통상부도 고맙다. 기사에서는 공격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보여준 행동들에 대해서-독자들께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을 포함-외교통상부에 고마운 부분이 많다.)여러 방송사나 매체에서 접근을 해왔다.

 

 

하지만 모 방송사가 필리핀 현지로 갈 일정이 잡힌 후, 방송이 갑자기 엎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유 중 하나가 '딴지일보에서도 이 사실을 잘 알리고 있고..'등의 말을 제보자를 통해 들었는데 괜히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송을 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좋아하고 즐겨보며 때로 감탄하는 그 방송의 성격상, 그것은 필시 표면적인 이유이고 또 다른 납득할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답답했을 뿐이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서 멈추면 안돼는데. 더 큰 힘이 필요한데.

 

 

다행히 또다른 방송사 측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 또한 최대한 공정하고 제대로 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노력하고 있지만 방송의 특성상 언제 엎어질지 몰라 또한 두렵다. 타 매체에서 이미 많은 사실이 공개되면 취재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차라리 방송사 측으로 모든 정보를 넘긴 후, 딴지일보는 발을 빼는 것이 옳지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타 매체에 우리가 안 사실을 전할 때도 주제넘은 참견으로 보여 기자 사이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김규열 선장 사건에 악영향을 미칠까 조심하고 있다.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김규열 선장 사건 이전에 벌어진 조중사 사건으로 필리핀 교민사회가 심한 갈등과 불협화음을 겪고 있고 아직까지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필리핀 교민사회의 불협화음에 대해서는 많은 제보자를 통해 나름대로 자세히 알고 있는 상태지만 아직 100% 확신이 없기에 기사를 쓸 수 없다.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진실과 동일한 것은 아니기에 섣불리 쓸 수 없는 것이다.

 

 

장애인 국민연금 공단 점거나 보도연맹, 세종시 여론조사 등은 상대편에서 무어라하든 내 가치판단이 정확히 서 있고 진실이 명확하기에 몸은 고되도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와 반대라 참 어렵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목표는 김규열 선장이 비상식적인 대우에서 벗어나 정당한 재판을 받는 것이므로 이전까지 취재해 왔던 내용은 모조리 덮을까도 생각 중이다. 어쩌면 이전의 일들은 잠잠해진 그대로 두는 것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가장 좋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모든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가정한다면 필리핀 교민사회나 이 사건에 대해 깊숙이 알고 있는 이들이 조중사 사건과 김규열 선장 사건을 별개로 취급해야 옳다. 또한 김규열 선장이 어떤 사람이든, 만에 하나 그가 진짜 죄를 지었다고 해도 지금 겪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해 집중해야 옳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의 경험 속에서 현재를 판단하며 나를 포함, 어떤 인간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나는 지금, 무어라  말하기 힘들다. 한번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리핀 교민사회는 망설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필리핀 교민사회는 다른 어느 곳보다 정 많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며 생면부지의 남을 위해 모두가 단합했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외지에선 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존경받을 만하다. 찬찬히 과거의 일들을 취재하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필리핀 교민사회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본다면 참으로 기분이 좋을 듯하다. 물론 이 또한 주제넘은 참견이다.

 

 

블로그에 깨적이는 여느 때와 같은 넋두리다. 여유가 없으니 유머가 없다. 가장 싫어하는 글이 되어 버린 듯하다.

 

 

마음이 좋지 않다. 




추신 : 이 글을 쓴 다음날, 그러니까 오늘, 조중사 사건 당시 필리핀 교민사회의 오해가 잘 풀렸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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