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지일보 창간 14주년 기념, 본격 서스펜스 액션 대하 역사극 내맘대로 비망록 ~ 딴지일보와 나! 두둥~ 이라고 큰 소리로 외친 다음에 읽으시면 글의 맛이 더욱 살아납니다. 공공장소에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큰소리로 말해주셔야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17.

처음 예고했던 대로 이 시리즈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끝낸 후, 茶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茶를 테마로 세계여행을 하는 것은 내 오랜 염원이었고 최소 3년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다. 가족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가 인생에서 필요한 유일한 몇가지, 즉 신선한 茶와 좋은 책, 쵸콜렛을 보내주는 걸 행복으로 여기는 고마운 후원자들에게는 스리랑카 남동부 지방이나 히말리야 아샘 고원에서도 엽서 쓰는 걸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기억력이 나쁘지만 내게 호의를 베푼 이들을 잊을 만큼 기억력이 나쁘지는 않으며 매우 형편없는 인간이지만 영혼의 구호품(茶, 쵸콜렛, 책)을 보내 준 이들의 인연을 가벼이 여길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술을 못하고 車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걸까, 룸싸롱에 왜 그렇게 안달하는지, 외제차가 왜 남자의 평가 기준이 되는지, 나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존경해 마지않는 온갖 성공 스토리와 유흥문화가 너무 이질적이다. 반어법도 비유법도 환멸도 조소도 아니다. 진심으로 알 수 없다. 룸싸롱, 외제차, 강남, 고급 아파트, 명품 등 이 사회의 기준은 내게 다 쓴 휴지곽 수집광이나 네크로필리아 만큼이나 이상하게 보인다. 물론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라면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이들이 꽉 차 보일 정도로 늘어난 이 사회가 너무 이상하다.

오랜 친구들 마저도 그런 세상에 편입해 가는 것을 보며 나는 이 곳이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자취방에서 뒹굴거리며 격의 없이 우정을 나눴던 친구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외제차와 국산차, 연봉등으로 자신의 가격을 매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순수함에 에너지를 얻었던 소꿉친구들은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위선의 줄자를 오랜 친구들에게까지 들이댄다. 
 
누군가에게는 나약한 인간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인생에서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받아 줄 것은 茶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날의 기분과 햇빛의 양에 따라 홍차, 녹차, 보이차, 우롱차등을 골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다. 나는 그 외에 이 사회에서 어떠한 즐거움도 발견할 수 없기에 떠나려 한다.

다만 모두에게 어색하지 않은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시작한 이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또는 불완전 연소된 마음의 재로 사방이 가득차 있는 답답함을 느낀다. 나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쫓아 헤매다 그 길의 마지막에 존재하는 절벽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절벽의 끝에서 만물의 근원을 응시하는 듯한 한 남자를 발견했다.

기괴한 소문과 각종 전설의 중심. 혹자는 그가 외계인 페티쉬를 가졌다고 하며 어떤 이는 외계인을 해부해 본 유일한 남자라고 한다. 또 다른 이는 그가 영국 유학을 떠난 기간이 NASA와 한국 정부와의 비밀 협약 아래 달에 간 시기라고 주장한다. 

한국에 인디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가져왔고 딴지일보 역사상 유일하게 모든 부서에서 근무했으며 '총수'이외에 모든 보직을 섭렵했다는 딴지일보의 살아있는 화석. 내게는 처음으로 딴지일보 입사를 제의한 인물이자 내가 처음으로 '딴지 해방 전선' 계획을 털어 놓게 만든 남자, 여자 후배들에게는 와인 한잔과 감미로운 기타연주로 잘못을 타이르지만 남자 후배들에게는 예외 없이 기타로 내려 찍어 버릇을 고쳐 왔다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또는 딴지일보의 오메가이자 알파.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 떠날 만큼 정상적인 간 크기를 가지지 못했다. 차두리의 지겨운 충고를 무시한 참담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18.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내가 본 기획에 없었던 인물을 집어 넣는 것에 대해, 프로 의식으로 무장한 돌고래 답지 않다며 나를 비난할 줄로 안다. 물론 나는, 그 이름에 티끌 한점의 의문도 없으며 진리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세기를 뛰어넘는 美의 표상이라는 '죽지 않는 돌고래'란 위대한 이름이, 바로 나를 지칭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이 이름이 지금껏 여러분에게 보여준 무한한 믿음과 더는 오를 곳 없는 기대의 표상이라는 사실 또한 내치고 싶지 않다.

다만 완벽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근원으로 돌아갈 때조차 그 완벽함을 가져가야 한다는 하찮은 강박관념을, 나는 온몸으로 거부한다. 총수형이 월급을 오롯이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남성미를 강조했듯, 나 또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독자 여러분께 나만의 패기를 한번쯤 보여 주고자 한다. 혹자는 본인이 넘쳐나는 교묘함으로 이 모든 상황을 조종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언제나 내 예상 속에 존재해 왔고 내 통제 아래 벌어져 왔다. 알다시피 본인이 잘생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왜 처음부터 '파토'라는 남자를 기획에 넣지 않았는지. 나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물론, 우주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이 나에 의해 조종되고 통제되기를 허락해왔고 지금껏 그 허락을 거둔 적이 없다. 어떤 인간도 내가 상상한 이상의 생각을 말하지 못했고 어떤 인간도 나 이상으로 잘생기지 못했으며 가장 뛰어나다는 인간조차 내가 가진 재능의 최소치에서 허우적 거렸다. 개인적으로는 페르마, 라마누잔, 아인슈타인 같은 이들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꽤 똑똑한 축에 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테무진이나 카이사르, 알렉산더 같은 남자들도 미약하나마 공격적 리더로서 재능은 있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단 한명의 예외가 존재했고 사람들은 그를 '파토'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후루야 미노루 이후에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을 상상한 유일한 남자다. 장동건이나 현빈, 빌게이츠나 워렌 버핏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내 자존심에 티끌을 얹은 유일한 남자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통제나 허용 범위 밖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애써 무시하려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 또한 그곳에서 몇 발짝 떨어져 있지 않은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것을 인정하고 품어냄으로서 더욱 강력하게 나의 존재를 확인코자 한다. 티타늄으로 도금된 의지를 선조대대의 긍지에 녹여내 이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는 말이다.

우주라고 표현되는 내 그릇으로 조차 아직 그를 재지 못했기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고 어디서 끊어야 할지 알 수 없다. 다만  필독형의 '하반신 마음설'(인간의 진짜 마음은 하반신에 있으며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행동하는 것이 진짜 삶이라는 그의 인생철학)이나 총수형의 '숱론'(남자의 평가 기준은 '머리숱'이며 머리숱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장애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그의 인생철학)같이 파토형만의 인생철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은 상당히 기괴하고 기묘해서 인류의 정신세계를 분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가 이룩한 세상이 오직 인류의 의지 아래에서만 움직이길 원하며 거대한 실수조차 우리의 의지 안에서만 이루어졌을 때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정상인 또는 총수형의 실수에도 관대할 수 있었다. 따라서 파토라는 남자가 나의 이야기로 인해 인류에 개입하는 것을 조금도 원치 않는다. 

총수형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내가 각오할 것은 단지 죽음 뿐이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두려운 방문자이지만 내게는 때때로 오랜 친구같은 존재다. 다만 파토형의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수치의 바다에 빠져 영겁의 비참함을 반복할지 모를 내 자신을 본다. 섭씨 1만도에 달하는 불지옥에서 벌거숭이 소방수가 될지언정, 그것은 내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삶의 형태 조차 짓뭉개 버리는 끔찍함이다.

그는 내가 어떤 비밀을 공개하더라도 내 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가 지구상에서 나 이상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남자라는 사실을 알며 반복되는 죽음마저 하찮아 보이는 고통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는, 그가 잠적한 후, 내게 온갖 고문과 자신의 암살 의혹을 뒤집어 씌워 스스로 神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의 우심방 좌심실에 새겨주기 바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후에 벌어지는 파토에 관한 모든 일들에 대해, 당신이 가진 모든 지적능력을 다하여 의심해야할 의무감이 이 순간 탄생했다는 것을. 또한 여러분의 대뇌반구에 새겨주기 바란다. 내가 넘쳐나는 교묘함의 돌고래라 비난 받을지라도 파토는 그 교묘함을 인류에 전파한 최초의 전도사였다는 사실을.   

나는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위대한 영혼들(그러니까 우스타 쿄스케 같은)이 '준비'나 '각오'라 불러왔던 행동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순도 99%의 은으로 주조된 탄환을 인류의 용기로 담금질한 후, 무모함이라는 방아쇠로 파토의 심장에 겨누어 줄 것을, 당신에게 부탁한다. 그와 나 사이에 누구하나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주저 없이 그 탄환을 쏘아야 한다. 

다만 나는 알고 있다. 탄환이 나의 심장을 관통한다 해도 그것은 파토의 죽음으로 뒤바뀌어 그가 神이 되는 첫 발판으로 기록될 것을. 나는 도망자 또는 비겁자로 기록될 것을. 탄환이 파토의 심장을 관통한다 해도 바닥에 뒹구는 가난한 육체는 그의 영혼과는 억만광년 이상 떨어진 존재라는 것을. 그는 자기가 평생 걸쳐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인류를 비웃으며 인생을 즐길 것을. 

그렇다면 나는 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인가. 그것 마저도 인류에게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어떻게든 물질적인 파토는 사라졌을 테고 그것은 작게나마 인류의 평화가 '표면상으로는' 집행된 것일테니까.

스스로가 스스로를 죽이는 연습을 백만번 반복하면, 가능성 있는 게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기 바란다.

 
 

 



추신 : 사진은 1년 전, MBC PD수첩 20주년 기념식 때다. 악의 제왕 파토가 지애님에게 나쁜 짓을 할까봐 철저히 감시한 결과, 지애님을 마수로 부터 지킬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악의 제왕이라 하더라도 사진기 앞에서는 쉬이 허튼 짓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파토는 본인이 지애님에게 다소곳이 술을 따른 것에 대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파토가 따르는 술은 그 자체로 효모 구석구석까지 썪어 들어가 인간의 정신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 내가 가진 진리와 평화의 힘으로 막을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이 지애님을 지켜낸 것은 흔히 잘생긴 남자들의 취미 생활인 인류 평화 구축 계획의 일환으로 특별한 감정은 조금도 없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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