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승만, 백선엽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


2011. 08. 12. 금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1.

1차대전의 포화속에서 자란 젊은 날의 레지스탕스,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2.


지난 7월 12일, 백선엽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에 분노한 독립운동단체와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민간인 피학살 유족을 중심으로 '친일파 찬양방송 사과 없는 KBS규탄 결의대회 및 김인규 사장 퇴진촉구 서명운동 선포식'이 열렸다. 


7월은 덥다. 7월의 열기에 익은 오후 3시의 여의도동 보도블럭 위는 더욱 덥다.

 
지나가는 행인 중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백선엽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고 이승만은 나라를 세운 국부인데 왜 난리들인가.


하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 백선엽은 자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자


이승만은 자신의 어머니를 이유 없이 죽인 학살자일 수도 있다.  


이들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지난 50년간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 백선엽, 이승만의 죄과를 말한 이들은 빨갱이로 몰렸다. 대를 이어 죽임을 당하거나 대를 이어 고문을 당했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 앞에 소소한 희생은 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1960년, 4.19혁명의 바람을 타고 독재자 이승만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질 즈음, '전국피학살자유족회'가 정부에 보고한 민간인 학살의 규모는 113만명이다. 물론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런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6월 7일에도, 6월 9일에도 거리에 나섰다. 6월 20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했고 6월 21일 부터 1인 시위, 6월 29일에는 기자회견, 그리고 오늘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KBS는 말이 없다.


3.





7월 한달간 계속되는 항의 속에서도 KBS는 꿈쩍하지 않는다.
 
8월 2일,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된다. 그들은 '독재자 이승만 찬양방송 전면중단'을 호소하며 릴레이 단식을 결정한다. 97개의 독립운동, 시민, 사회, 언론단체가 참여했다.

 





7월에 모였던 바로 그 장소다. 모두가 다시 모였다. 내리쬐는 햇살이 따갑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비서였던 이기형 시인은 떨리는 손으로 준비한 원고를 읽는다.

'KBS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KBS는 국민의 눈이요, 귀요, 입입니다. 이승만과 백선엽을 찬양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요, 어불성설입니다. 이승만과 백선엽은 역사의 죄인입니다. 4.19혁명이 이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침통한 표정으로 뙤약볕 아래,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올해 그의 나이 95이다.


경찰들이 등장한다.


농성은 계속된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판넬을 세우기 시작한다. 깁스를 한 손이 눈에 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사무국장과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인 박중석이 한켠에 서 있다. 집회가 있을 때마다 음으로 양으로 힘을 쏟는 사람들이다. 박중석은 탐사보도팀, 사회부등에서 권력의 비리고발이나 숨겨진 진실추적을 담당한 12년차 KBS기자 출신이다.  


'천막을 철거하라'는 경찰의 경고방송 소리가 너무 커 집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전국유족회 박봉자 상임공동대표가 경찰에 항의한다. 


경찰의 경고 방송은 계속되고 그녀는 경찰차 앞에서 팻말을 들어 무언으로 자신의 뜻을 전한다. 


무더운 여름, 경찰도 짜증이 났는지 경고 방송의 수위를 높여간다.

이때 한 남자가 경찰차 앞으로 걸어가 말 없이 팻말을 든다.   


그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맥을 지켜낸 차이석 선생의 장자다.  


보다 못한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이 마이크를 든다.

"경찰분들, 여기 계신 분들 때문에 범죄예방에 전념할 시간을 뺏긴다고 방송하는데 그 자체가 이 분들을 능욕하는 말입니다. 말씀 잘 하셔야 해요. 단어 선택 잘 하셔야 합니다.

여기 있는 분들이 시정잡배입니까. 돈 구걸하러 나왔습니까. 커피 한잔 얻어 먹으러 왔습니까. 나라 지켜 온 분들이고 그 분들의 당당한 후손입니다. 이 분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모욕적인 말, 그만 하세요" 

 

 
수위는 낮아졌지만 경찰의 경고방송은 지속된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법을 잘 지키세요. 여러분들 때문에 시민의 통행권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불편해 합니다'

 



이때, 불편해 보이지 않는 시민 한명이 집회 인원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든다.

집회인원은 박수로 회답한다.
 

 

 

하지만 오늘도 KBS는 묵묵부답이다.

 

4.


농성 2일차인 8월 3일. 오늘 단식농성 릴레이 주자는 전국유족회 김광호 상임공동대표다.
 


김광호씨의 부친은 한국전쟁 피학살자 유족회를 결성해 활동했던 故김영욱씨다. 그는 4.19혁명 직후,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故김정태)를 포함해 학살된 이들의 유골을 찾아 장례를 치르고 이승만 정권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앞장섰다. 하지만 5.16 쿠데타 세력이 이를 반국가 행위로 몰아 징역 7년을 선고받고 2년 7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이라는 명예는 권력 앞에 숨죽일 때만 의미가 있었다.

지난 7월 28일, 김광호씨의 부친인 故김영욱씨는 대법원에서 50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단식 릴레이 농성을 응원하는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천막을 방문했다. 미디어 오늘의 허완 기자와  경향신문의 주영재 기자가 김광호 상임대표를 취재했다.





천막 밖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이 '이승만 진실 찾기 자료집'을 돌리며 연신 흐르는 땀을 닦는다. 


 오후 2시를 넘어 한차례 세찬 비가 쏟아진다. 이 비 덕분에 더위가 조금 가신다. 


천막은 다음날 새벽, 영등포 구청과 경찰의 기습에 의해 철거 된다. 경찰은 천막이 신고되지 않은 집회물품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불법이라고 한다.   

이승만, 백선엽을 찬양하는 방송은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다.



5.

농성 3일차인 8월 4일, 오후 9시를 넘어 현장의 시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촛불집회를 하고 아침에 철거당한 천막을 다시 치려다 경찰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좋은어버이들 회원인 이기탁 할아버지가 쓰러졌어요.'

전화를 받고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갔으나 큰 부상은 아니었던지 금방 퇴원했다고 한다.  

택시를 잡아 KBS본관 앞으로 향했다.
 



 

 


무너진 천막이 나뒹굴고 있다. 몇몇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 중이다.
  


새날희망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인 백은종씨가 오늘의 철야 당번이다.

'밤 새실 건데 태풍 오면 어떻합니까?'

'집회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7,80 고령이신데
땡볕과 비를 피하려면 최소한 바람막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걱정이지 저야 천 하나 뒤집어 쓰면 됩니다.
영등포 구청에 매우 섭섭할 뿐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8월 11일 오후 1시 50분경, 종북좌파척결단, 나라사랑실천운동,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부산민생보호연합, 자유민주수호연합등에 소속된 회원 20여명이 단식농성장으로 몰려와 플랜카드를 찢고 원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빨갱이들은 북한가서 살아라."


6.

백선엽을 찬양하는 것도 이승만을 미화하는 것도 좋다. 

허나 KBS쯤 되면 그들이 '친일파'와 '독재자'로 불린 이유에 대해서도 같이 다루어야 한다. 어떻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는지를 함께 말해야 한다. 공영방송사의 책임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론으로서 그 정도 자존심은 필요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독립운동' 역사가 '반공투쟁'의 역사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져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할 수 없다. 아버지, 어머니들의 '민주화운동'역사가 '반공투쟁'의 역사에 비해 대수롭지 않아 제쳐둔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친일파와의 야합과 반공 정신'이 아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독재와 부정으로 물러난 초대 대통령의 정신'이 아닌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  

일개 기자 나부랭이의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그리 나와있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하고 싶다면 이 문구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이라는 CM송은 현실을 고려해 고치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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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해킹사태로 데이터베이스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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