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승만 미화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2011. 09. 27. 화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1.

 

KBS가 칼을 들었다.

 

독립운동가 후손,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유족, 4.19혁명회를 비롯한 97개의 독립운동, 시민, 사회단체가 무기한 릴레이 단식까지 하며 반대했지만(관련기사 : 이승만 백선엽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 28일부터 이승만 다큐를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2.

 

지난 7월 12일, 혹시나 하며 백선엽 다큐를 보았고 역시나 하며 가슴을 쳤다. 특히 KBS 다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백선엽의 말에 치를 떨었다. 그는 다큐의 마지막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한 인치의 땅도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피와 땀을 흘려서 얻은 국토입니다.’

 

그가 전쟁에서 세운 공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보다 먼저 피와 땀을 흘리며 뺏겨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이역만리 땅에서 죽어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보는 앞에서, 그 반대편에 섰던 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워 인정받은 것도 백선엽이고 일제에 충성해 독립운동가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도 백선엽이며 사학비리의 원흉이라고 비판 받는 것도 백선엽이다.

 

백선엽의 공을 깎으라는 것이 아니다. 과도 사실 그대로 밝히라는 말이다. 적어도 국민의 방송이라고 자칭하는 KBS라면 백선엽 특집으로 만든 94분 분량의 다큐에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일본군장교가 된다. 이 전력으로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라는 단 5초의 나레이션으로 과에 대한 모든 설명을 끝내선 안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승만 다큐가 방영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3.

 

미화 방송을 내보내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너무한 부정부패와 제 나라 국민까지 집단학살하며 독재권력을 휘둘러온 이승만을 국민이 직접 끌어내린 게 겨우 반세기 전의 일, 미화해봤자 얼마나 영향력이 있겠냐는 뜻이리라.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안일한 생각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갖은 미사여구가 들어간 이승만 찬양글의 스크롤을 내리며 생각했다. 부정부패와 독재에 견디다 못한 이 땅의 국민들이 그를 직접 끌어내린 사실까지는 미화할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의 마지막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이승만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이승만 : 국민이 원하나?

 

예, 각하.

 

이승만 :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도 물러나야지, 그게 우리 자유민주주의니까.

 


20년쯤 더 지나면 다음과 같은 글이 떠돌지도 모른다.

 

전두환 : 국민이 원하나?

 

예, 각하.

 

전두환 : 국민이 원하면 직접선거 해야지, 그게 우리 자유민주주의니까.

 

 

4.

 

이승만 다큐는 곧 방영될 것이고 그 방송은 이승만에 대한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 특히 지금의 10대, 20대에게 이승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개념을 잡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번 그렇게 생긴 틀은 웬만해서는 바꾸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이 이 땅의 기득권이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언론을 장악하려는 이유다.

 

역사를 바로 알고 있는 이들이 이런 일련의 흐름을 우습게보거나 방치한다면 2,30년 후에 이승만은 국민이 직접 끌어내린 부정부패의 독재자가 아니라, 친일로 민족의 피를 빨아 먹은 자들에게 ‘반공’이라는 방어막을 쳐준 것까지 모자라 ‘정의’까지 선점하게 해준 은인으로 길이길이 위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반드시 제2, 제 3의 이승만이 나타난다. 이승만을 비난하는 환경 속에서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헌정을 유린하며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왕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나타났는데 하물며 그런 인물을 장려하는 사회에서야 어떻겠는가.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줄줄이 어긋난다. 언론이 눈앞의 달콤함을 쫒고 안일함으로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기 시작하면 지금 한 발짝 어긋난 이 현실이 10년, 20년 후에는 종잡을 수 없이 뒤틀린다.

 

이건 정말로 씻을 수 없는 큰 죄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5.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려는 이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우익들이 존경하는 한 인물의 글로 이 분노와 무력감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 글은 아래와 같다.

 

'자유당 독재 12년에 농촌의 경제는 파탄되고 관기는 문란해졌으며, 부정축재자들은 건전한 국가 경제의 성장은 제쳐 놓고, 그릇되고 썩어빠지기만 했다. 해방 16년에, 남한에서는 이승만 노인의 어두운 독재와 썩어빠진 자유당과 관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해방 귀족'들이 날뛰어 겨레의 장래는 어려워만 갔던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배 형태인 카리스마적인 1인 정치는 이승만 독재로 끝났다.’

 

1962년에 출판된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에서 발췌했다. 


위 책의 저자는 박정희다.

    




추신 : 다음 달 16일부터 이승만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알리고 반세기 이상 억울한 죽음을 숨겨왔던 유족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도보순례 캠페인이 시작된다. 보도연맹 등의 국가범죄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왔던 본지는 이와 관련하여 밀착 취재를 기획하고 있다.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관련기사

 

이승만, 백선엽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 

국가범죄 - 10살 아이 앞에서 아버지를 총살한 대한민국

전쟁의 뒤편(1) : 아군을 죽인 아군

전쟁의 뒤편(2) : 그런 것도 못하는 국가가 무슨 놈의 국가입니까.

전쟁의 뒤편(3) : 100만 학살을 기억하라

 

딴지일보 해킹사태로 인해

데이터베이스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관련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 백업본으로 링크를 겁니다.

 

보도연맹, 민간인학살 등 국가범죄에 관련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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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부팀장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1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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