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한민국에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


2011. 10. 14. 금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서울시장 선거에 시선이 집중된 이때에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합니다. 아마 다들 크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조금은 알아주시면 좋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한국에는 한국전쟁유족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입니다. 뭔가 길고 끔찍한 느낌이 나지요. 이 단체는 1960년에 조직되었는데요. 잠시 탄생배경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승만 아시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데 저는 이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편협한 역사관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대한민국의 기초가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뛰어난 사람입니다. 외교수완도 좋고 배짱도 두둑하지요. 정치가에게 꼭 필요하다는 야망으로 볼 때, 이승만을 능가할 사람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겁니다. 특히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무서울 정도입니다. 물론 리더에게는 가끔 그런 면도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심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랑과 욕망이 자기 자신에게로만 향했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 빠진 셈입니다. 




자국민이 도망가는 중에 한강 다리를 폭파시키고(한강교폭파사건) 100만에 가까운 제 나라의 국민을 단지 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집단학살하고(국민보도연맹사건) 50만에 달하는 장정들을 아무 대책 없이 군인으로 편성한 후,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나가게 만들었지요.(국민방위군사건) 국민방위군 사건의 경우는 이승만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영익 교수조차 ‘9만 명 가량의 군인이 동사, 아사, 병사한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겁하고(한강교폭파사건)잔악하고(국민보도연맹사건)무능(국민방위군사건)했습니다. 참다 못한 국민이 4.19혁명으로 이승만을 끌어내린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전쟁유족회가 탄생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유심히 보면 입이 다물어 지지 않습니다. 제가 진주에 취재를 갔을 때 일인데요. 진주유족회 회장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는 어릴 때 아부지가 원래 다 없는 줄 알았어요. 동네 친구들 다 아부지가 없었거든요.’

또 다른 분은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저눔 저거 빨갱이 자식이다, 빨갱이 새끼다’ 이렇게 욕을 하니까 ‘빨갱이가 뭡니까’ 물어 보고는 아주 나쁜 놈이란 걸 알았답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는 아주 못된 사람이었구나, 내가 그런 더러운 피를 물려 받았구나 하고 자괴감을 가졌답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빨갱이의 자식은 살인마, 강간범의 자식보다 더 나쁜 말이었죠. 

그런데 크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란 거예요.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군국이 있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환영을 안 한다고 여긴 빨갱이 동네라고 마을 전체 씨를 말렸습니다. 정부에서 좌익들 교화해야 한다면 할당제를 주니까 이장이 이 명단을 채우려고 아무나 데려다 싸인을 시키고 지장을 찍게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터지니까 그 사람들을 불러서 그냥 싸그리 죽여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이 왜 벌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청산을 안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는 미소가 맞부딪치는 공간이었습니다. 한국의 점령군이었던 미국은 친일파들이 업무에 능숙한 인재라며 이들을 적극적으로 비호했지요. 점령당한 주제에 우리네 민족을 무시하지 말고 역사를 바로 세워달라고 요구하기는 무리였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이 의지를 가졌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죽이던 매국노들 정도는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초대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해주었어야 할 일이었지요. 하지만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좌우대립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그 이용이란 것은 반공을 근거로 자신의 편에 선 친일파들을 감싸 주는 것이었습니다.

해방을 맞아 숨 죽이던 친일매국노들은 만세를 외쳤습니다. 죽지 않는다, 살 수 있다, 애국 대 매국의 구도가 좌와 우의 대립으로 바뀌었다, 반공을 외치면 살 수 있다, 반공으로 살길이 생겼다,라고.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 비극이 지금까지 이어져 애국과 매국이 교묘하게 섞이고 정의의 개념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라고 후배는 선배를 보고 자랍니다. 이승만을 보고 박정희가 따라 하고 박정희를 보고 전두환이 따라 합니다.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도 되는 구나, 반공을 이용하면 되는구나, 저 정도는 죽여도 되는구나. 이런 생각과 습관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정신 한 귀퉁이에 자리 잡혔고 한국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점점 극우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정도로 발전한 나라 중에 이 정도로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알고 이 정도로 국가폭력에 관대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알게 모르게 우리네 의식 속에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1년에 김대중은 예비군 폐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엔 그러진 못했죠. 아마 그랬다면 역시나 진짜 빨갱이라며 언론들이 공격했을 겁니다. 남자들은 알 겁니다. 예비군 제도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하지만 1971년엔 가능했지만 수 십 년이 지나면 이걸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제도로 먹고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서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는 거죠. 

과거 청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산을 안 한 탓에 이득을 얻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것이 얽히고 설키면 풀 길이 없어집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손을 대야 합니다. 물론 이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할 것 같은 이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최근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있었지요. 


노무현, 어떤 사람들에겐 저런 미천한 것이 대통령이 됐구나, 저런 촌놈이 대통령이 되었구나,  나라가 망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역사를 길게 보고 물줄기를 바꾸어 보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눈 앞의 것만을 생각하지 않고 먼 훗날, 이 땅에 선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자부심을 느끼게 할 만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요. 제가 일희일비하고 세상을 좁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라 거꾸로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승만과는 다른 의미로 굉장한 배짱의 소유자였지요. 

참여정부 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통과합니다. 그리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탄생하지요. 그 목적을 보면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국가 기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요. 저는 진화위의 탄생을 높이 평가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한이 풀어질 수 있는 실마리가 진화위의 설립으로 생겨납니다. 과거사법이 통과되는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회 앞에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정말 아이처럼 엉엉 울었지요. 그 속에는 저희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진화위는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사정리법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들 중 많은 이들에게 기대를 품게 만들었던 문구들이 역시나 문구로 끝나게 되었지요. 과거사정리법 제 40조에 보면 아래와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정부는 위령 사업 및 사료관 운영·관리 등을 수행할 과거사연구재단을 설립하기 위하여 기금을 출연할 수 있다.>

문구가 애매하지요. 해야한다가 아니고 할 수 있다, 입니다. 알다시피 과거사정리법이란 게 어렵게 통과한 탓에 누더기가 된 법입니다. 이 법이 제대로 통과되면 대한민국 기득권 중에 많은 이들이 아주 곤란한 일에 직면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런 애매한 문구도 많고 법에 아주 틈새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제대로 진상규명을 받고 억울함을 푼 사람은 전체의 1%, 2%가 될까 말까입니다. 어릴 때 부모가 죽고 제대로 공부도 못한 유족들이 무얼 알겠습니까. 뒤늦게 이 법을 알아서 시기를 놓치는가 하면 과거에 정부가 진실규명을 해 준다고 해서 철썩 같이 믿었다가 되려 잡아가 고문만 시키는 탓에 이제는 눈치만 보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와 진화위의 명맥이 끊겨 기회를 잃은 경우도 있습니다. 애초에 국민보도연맹사건 자체가 좌익들을 교화한다며 국가에서 잘 봐주겠다고 불러다 모조리 잡아 죽인 사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신뢰가 있을 수 없겠지요.    

바로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법에도 반인륜적인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지 않습니까? 이제는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은 이 분들 가는 길,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가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 오래된 일이라고 무조건 덮는다면 그게 능사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보수들이 주장하는 국가안보는 바로 국가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유족회는 그런 한을 풀기 위해,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1960년, 4.19의 바람을 타고 유족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부지, 어무니의 억울한 죽음,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아야겠다, 왜 아무 죄도 없는 우리 아부지 어무니를 죽였는지 알아야겠다, 그걸 알기 위해서 모인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박정희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고 잡아 가두었지요. 유족들이 겨우 찾아 놓은 부모들의 유골을 포크레인으로 엎어 버리고 비석은 철로에 내다버렸습니다. 

그 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를 청산하지 않았으니, 그런 폭력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니 광주학살이 일어나고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김진숙이 크레인 위에 올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쌓이고 또 쌓이는 것입니다. 국가폭력이 자본폭력이 되고 이 폭력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들을 지배합니다. 

계속해서 놔두면 그냥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반복될 뿐입니다. 기득권들은 좀 지나면 괜찮으니까 좀 지나면 잠잠해 지니까 좀 지나면 다들 잊으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아는 겁니다. 저는 자존심이 상합니다.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10월 16일은 부마항쟁 32주기입니다.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 82주기지요. 10월 16일,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이들의 한을 풀고자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이 부산 중앙동 40계단에서 출발하여 11월 3일 김대중 컨벤션센터까지 320킬로미터의 대장정에 도전합니다. 

함께 걷자고 말하고 싶은데 밥 한끼 사드릴 예산도 확보하기 힘든 처지라 말을 꺼내기가 힘듭니다. 다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런 일이 있었던 대한민국의 비극과 원인에 대해 한번쯤 유심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외침들이 모여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 조그마한 한걸음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딴지일보 기획취재부 팀장이자 아시아인권행동 대표로서 첫 행사를 준비하는 돌고래의 재미없는 글이었습니다. 재미없는 글을 썼다고 편집장님이 혼내기 전에 저는 부산으로 내려가 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의 김동구씨(58)는 한쪽 다리 무릎 아래가 없는 장애인입니다. 그는 클러치를 짚고 320킬로미터의 완주에 도전합니다. 트위터(@kmsan53)로 나마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 부탁 드립니다.

행사에 관련된 문의나 궁금증은 KIMCHANGKYU1201@GMAIL.COM 또는 아래의 트위터로 연락바랍니다. 





죽지않는돌고래 (트위터@KIMCHA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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