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현나영의 편지 – 진흙탕 싸움터 제주시 갑에 떨어진 폭탄(현경대vs강창일)

2012. 04. 06. 금요일
기획취재부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1. 현나영의 편지

 

4월 5일, 이용(필명 아외로워) 기자가 제주도에서 이루어진 선거법 위반 관련 전화를 받았고 이후, 딴지일보로 팩스가 도착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시 노형동에 살고 있는, 현나영이라고 합니다.

이제 갓 20세가 된 제주대학교 2학년 꿈많은 소녀(?)예예~~

오빠!! 나라 지키느라 고생이 넘 많지요? ㅠ.ㅠ

휴가 나온 우리고, 어떤 오빠가 군시절 제일 답답한 것은 군대 생활이 아니라, 전역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저는 군에 계신 것만도 힘들텐데 ‘제대하면 더 마음고생도 심하겠구나.’라는 생각에 군인 오빠들은 말못할 고민거리도 많겠구나! ‘내가 좋은 글로 위로해 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그래서 찾아보고 읽은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내용 중에, 오빠에게 조금이라도 힘이되는 말이 있어서 들려드립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지금 몇 시쯤을 살고 있는 것 같은가?”

24살에 전역한다면 하루 중 몇시에 해당하는X? 한국인의 수명이 80세 쯤 된다치면, 80세중 24세는 스물네시간의 몇시? 아침 7시 12분입니다. 생각보다 엄청 이른시간!!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시각이다. 군대를 벗어나 사회에 나오는 스물넷은 고작 아침 7시 12분입니다~

오빠~~♥

군 생활 파이팅하시구! 늘 응원할게여 ^^* 제 편지가 오빠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_< 혹시 나영이에게 생각에 공감하시구 계속 연락하시려면, 이멜이나 회신 보내주삼! 나영이 이멜 주소는여~ !! XXXXX-1990@hanmail.net

 

P.S – 그런데 오빠!!! 뭐 하나 부탁해두 될까여~?

우리지역(제주시-갑)새누리당 후보로 나오는 현 경 대 아저씨가

제 큰삼촌이예여!! 기호 1번 꾹 눌러주삼!! ^^

 

-현나영 올림-

 


 

편지는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물론 추신 부분이 포인트다. 편집부 전원이 크게 웃었다.   

 

 

2. 패러디로 가자

 

본 건에 관한 패러디 기사를 맡게 된 관계로 전화를 받은 이용 기자에게 제보자 신원을 확인했다. 군인 사병이라고 한다. 그 상대가 군인이니 괘씸죄가 더해진다. 고된 군생활에 지친 한 남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어내려가다 마지막에 느꼈을 허탈감은, 당사자로선 웃기 힘들겠지만 패러디 기사로는 더욱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외로움의 극에 서 있는 상황이라면 자필로 꾹꾹 눌러 쓴 성의를 봐서라도 기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보에 관한 내용을 다른 언론을 통해 재확인한 결과, 그런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드물 거라고 판단했다.

 

<사진출처 : 제주일보>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19대 총선 선거대책위원회는 4월 4일 오전 10시, 이 편지와 관련하여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 내용은 ‘새누리당 현경대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불법 서신의 공개’다.

벌써 몇몇 언론이 이를 기사화 했고 그 내용과 사진을 비교해 본 결과, 현나영이 쓴 편지, 즉, 본지로 온 팩스는 자필이 아니라 처음부터 복사본이었다. 외로운 사병 신분에 갓 20세의 여대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할 지라도 A4용지에 흑백으로 인쇄된 복사본이라면 기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확인 후, 총수님에게 급히 전할 물건이 있어 오후 3시 5분 경에 사옥을 나섰다.

 

 

3. 현나영의 편지는 정말 현경대 후보 측에서 유포한 것인가

 

다음 날은 사옥 이사 문제로 새벽 6시 30분 출근이다. 조급했다. <홍석동 납치 사건> 과 관련해 오늘 중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틈틈이 패러디 요소를 메모했다. 제목은 ‘현나영, 공개청혼’이나‘사귀자, 현나영’ 정도, 내용은 ‘이 편지를 단순한 선거법 위반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민주통합당에게 인간의 마음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내게는 큰 삼촌을 생각하는 그 가련한 마음이야말로 그녀가 현모양처 유망주라는 확신으로 다가온다’던가 이 편지가 카피본이라는 것에 실망하는 남자는 로맨티스트의 자격이 없다. 그녀는 시험하고 있으며 또한 찾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척에 헌신하는, 자기 희생의 가치를 올곧이 이해하는 진짜 남자를’ 따위를 메모했다.

그리고 용무를 끝내고 다시 집으로 향하며 편지를 세 번 정독했다. 세 번째 읽을 때 의문이 들었다.
 

<현경대 / 사진 출처 : 뉴시스>

이 편지는 정말 새누리당 현경대 후보 측에서 유포한 것일까.

 

 

4. 엇갈리는 주장

 

나는 집으로 돌아와 민주통합당 제주도당과 새누리당 제주도당에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측에는 이 편지를 최초로 입수한 경로에 대해 물었다. 처음 제보를 한 사람은 서울에서 거주하며 경기도의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다. 제주시 갑 선거구의 부재자 투표 용지가 든 봉투와 함께 이 편지를 발견하고 제보했다고 한다. 그 외 여러 곳에서 계속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며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가 민주통합당의 기자회견에 대한 건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전했다.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측은 제주시 갑 부재자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상당수에게 이 편지가 갔을 거라고 추정했다.

 

새누리당 제주도당 측은 논평으로 밝힌 것 외에 따로 코멘트가 없다고 한다. 현나영이라는 인물이 실존하는 것은 맞는 지에 대해 묻자 그와 관계해선 자신들도 아는 바가 없으니 현경대 후보 사무소 측에 직접 확인을 해보라고 한다.

 

 

새누리당 제주도당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성명, 논평, 보도자료’ 카테고리를 확인해 보니 이에 관련한 논평은 없었다. 다만 새누리당 현경대 후보의 블로그 중 ‘현경대 이야기’라는 카테고리에 뉴시스의 <’지지호소 괴편지 누가’…”지지율 급락 술수?”>라는 제목의 기사가 스크랩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기사의 내용 중 본인의 주장에 해당하는 부분이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뉴시스의 보도에 따르면 현경대 후보측은 "민주통합당의 주장은 어제(3일) 발표된 언론6사 여론조사 결과, 강창일 후보의 지지율 급락으로 초조한 나머지 선거판을 진흙탕으로 변질시켜서 국면을 전환하려는 무책임하고도 구태의연한 술수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4월 3일의 여론조사 결과는 두 사람의 선거판에서는 피를 말리겠지만 본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모든 근거는 편지가 전달되기 이전 시점에 나와야 한다. 

 

이 기사에 의하면 현 후보에게는 편지 속에 등장한 조카가 없다고 한다.

 

 

5. 카피본이 있다면 원본도 있을 것이다

 

제보를 받은 이용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보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했던 말에 대한 추정을 뺀 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시간 순서대로 기억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꼼꼼히 메모를 해 놓은 덕분에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확인 결과, 상대방은 정확한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위문 편지 형식으로 현경대를 뽑아달라는 편지가 ‘제보됐다’라는 표현을 썼으며 이는 선거법 위반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국민일보에도 자신이 말한 내용이 실렸으니 이를 참고해서 관련기사를 쓰면 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용 기자는 그 편지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고 그것이 본사로 날아온 편지의 카피본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의 소속이 어디든, 누구든 그를 강창일 후보의 지지자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 곧 팩스까지 보내주었다. 준비된 사람이다.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고 '제보됐다'라는 표현도 걸린다. 성급한 추측은 금물이다. 열성적인 지지자가 언론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이 미는 후보에게 유리한 정보를 흘리는 것은 선거 기간에 일상다반사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라 가정할지라도 이번에 벌어진 편지 사건은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제주시 갑에서는 축복이다. 상대방의 악수를 제대로 되받아치지 못하는 것 또한 치열한 전장에서는 미덕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나는 궁금했다.
 

카피본이 있다면 분명 어딘가에 원본도 있을 것이다.

 

 

6. 누가 원본을 가지고 있나

 

자료를 찾던 중, ‘시사제주’의 <”우리 삼촌 찍어주세요” 편지 서울서도 발견>이라는 단독보도가 눈에 띄었다. ‘군대 위문편지를 가장해서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괴편지가 후보 이름만 바뀐 채 제주에 이어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됐다라는 내용이다.

 

 

왼쪽 사진은 본지에 보낸 것과 같은 것이고 오른쪽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괴편지다. 오후 7시 22분, 나는 이 기사를 낸 시사제주에 전화를 걸었고 기사를 쓴 고OO 기자를 바꿔 달라고 했다. 고OO 기자가 자리에 없는 관계로 그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나는 다시 고OO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질문과 함께 ‘단독보도에 인용된 사진을 봤다. 오른쪽 원본 사진의 입수경로와 제보자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고OO 기자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7. 제주도가 미는 유일한 당은, 궨당이다

 

제주도 토박이로 20년을 살았던 친구에게 편지에 관한 내용 및 제주도 사정을 물었다.

 

그는 소문의 편지를 받은 적도 없고 이미 주소지를 옮긴 상태였기에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개인적인 호기심에 ‘너네 집안은 누구를 미냐’라고 물었다. 그는 뜬금없이 두 후보의 고향과 출신학교를 되물었다.

 

내가 왜 그런 걸 묻냐고 하자 그 질문 자체가 내가 제주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증거라고 했다. 제주도는 당을 보지 않고 사람만 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의 됨됨이나 정책이 아닌, ‘궨당’인지 아닌지로 승부가 갈린다고 한다. 궨당은 제주도 사투리로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제주도라는 지형적 특성 상 세 번만 건너 띄면 대부분 아는 사람이란다. 젊은 사람들은 소신투표를 하겠지만 나이가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아는 사람’과 연계된 사람, 즉 ‘궨당’을 뽑는다고 말했다.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 했더니 육지 쪽 사람들은 제주도의 특성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만약에 네 친한 친구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 누굴 뽑겠냐’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없고 오직 궨당만 있다고 말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 아닐까 생각해 ‘궨당’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정치부 기자부터 대학 교수까지 마치 친구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같은 말을 했다. ‘궨당문화’라는 말도 나왔다.

 

현경대 후보의 고향을 찾아보니 노형동이었다. 편지를 다시 보니 현경대 후보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현나영 역시 제주시 노형동에 살고 있다고 썼다. 제주도 특유의 궨당문화를 바탕으로 역대 제주도의 선거 득표율을 볼 때, 자신의 고향에서 타 후보와 월등한 차이를 내지 못하면 패배한다. 편지가 치밀한 계산 하에 쓰여진 것이라면 동단위의 거주지 언급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시 노형동'이라는 문구는 궨당문화을 의식한 지나친 솔직함 내지 상대방을 확신범으로 만드는 지나친 노림수라고 판단할 수 있다. 각자의 고향에서 타 후보와 어느 정도 차이를 내고 있는지를 알면 단서가 선명해질지 모른다.

 

4월 3일 제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두 후보는 각자의 고향에서 똑같이 3% 정도의 차이로 가까스로 선두를 유지할 뿐이다. 3월 13일 제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두 후보의 고향에서 모두 강창일이 큰 폭으로 이기고 있지만 현경대가 여론조사를 거듭할 때마다 역시 큰 폭으로 따라 붙는 추세다. 느려지는 도망자와 빨라지는 추격자. 심리적 부담감만으로 본다면 강창일 후보측이 위일 것이다. 하지만 역대 선거에서 강창일 후보에게 두번이나 진 현경대 후보의 설욕 의지도 얕볼 수 없다.    

 

나는 후보의 이름만 바꿔 같은 내용과 같은 필체로 적었다는 편지의 원본에 또 다른 단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시사제주의 단독보도 기사로 들어가 보았다.

 

 

8. 바뀐 기사

 

기사를 본 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지도 않고 데스크 승인이 떨어진 시간대로 일치했지만 처음 본 기사와 느낌이 달랐다. 기사 본문 맨 앞에는 ‘기사 수정’이라고 괄호를 친 굵은 글씨가 추가되어 있지만 두 번, 세 번 읽어봐도 처음 본 내용과는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나는 보통 사람의 눈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그 점을 떠올리니 다르다는 느낌의 정체가 ‘사진의 색깔’임을 알았다. 고OO 기자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오른쪽이 칼라 사진이었다. 지금은 흑백으로 바뀌었고 사진에 딸린 캡션 또한 미묘하게 바뀌었다.

 

 

내가 원본의 입수경로와 제보자가 누군지 고OO 기자에게 물은 것은 처음 기사를 읽었을 때의 캡션엔, 왼쪽은 흑백사진에 ‘제주에서 발견된 괴편지 복사본’, 오른쪽은 칼라사진에 그냥 ‘서울에서 발견된 괴편지’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른쪽도 복사본이라면 왼쪽의 사진처럼 복사본이라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원본의 입수경로와 제보자에 대해 물은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고OO기자는 그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는 오른쪽 사진이 흑백으로 바뀌었고 ‘괴편지’ 뒤에 ‘사본’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져 있다. 이미 기사는 수정되었고 넷상에도 사본이 남아 있지 않기에 내가 착각을 한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난 취재를 위해 자료를 검토할 때는 신중하게 확인한다. 정확하게 자료를 읽지 않으면 엉뚱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에 기사를 봤을 때와 두 번째 기사를 봤을 때의 시간차가 크지 않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스스로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확신한다.

 

사진의 전체 크기도 줄었다. 오늘 손에 입은 작은 화상 탓에 나는 컵에 찬물을 붓고 엄지 손가락을 담그길 반복하며 평소와는 조금 다른 자세를 유지했다. 평소와는 다른 자세이기에 모니터와 내 눈의 간격을 기억한다. 처음 기사를 봤을 때는 오른쪽 사진이 모니터로 굳이 다가가지 않아도 선명하게 읽힐 수준이었으나 두 번째 기사를 봤을 때는 애써 모니터로 다가가야 했다. 이 부분은 내 머리가 아닌, 내 몸이 기억하는 부분이기에 또한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부분들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고OO기자와 전화를 하고 일정 시간 후에 사진과 캡션의 특정부분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현재 이 기사는 시사제주의 단독보도인 만큼 줄곧 조회수 1위를 달리고 있다.

 

불필요한 의혹은 피하고 싶다. 나의 질문들에 친절하게 대답해주었으며 단독보도라는 좋은 기사를 쓴 고OO기자에게 괜한 의혹을 제기하여 피해를 입힐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실수를 고쳤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추신 : 방금 전 시사제주 고 기자님과 통화했습니다. 고 기자님이 오른쪽에 올린 사진은 제보를 받은 것으로 저와 통화를 한 이후,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수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시사제주가 마치 원본을 가지고 있는 듯한 불필요한 오해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9. 범인은 잡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수사의 결과가 4월 11일 이전에 나올 가능성은 없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히 낮다고 생각한다. 전문 선거 브로커가 개입해 작정하고 판을 흔들었다고 가정하면 경찰 수사전담팀 수십 명이 달라 붙어도 해결하기 힘들다. 또한 누가 제주도 갑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즉, 권력의 키를 누가 쥐느냐에 따라 영원히 덮일 수 있다.

 

감에 의한 추측이 아니다. 2009년, 제주도에는 정치부 기자들조차 쉬이 알 수 없는 정보력으로 특정후보들을 비방하고 특정후보를 띄우는 ‘영등할망 괴편지’라는 사건이 있었고 이 편지를 유포한 인물은 지문은 물론 면장갑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경찰은 의문의 용의자가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이 사건이 기획된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우표 구입 루트, 인쇄소, 복사소를 찾는 것도 별 성과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로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초보 선거 브로커도 쉬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전문 브로커가 개입됐다라고 가정한다면, 자필로 쓴 원본은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그나마 증거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곳은 CCTV 쪽일 것이다.

 

 

10. 용의자 또는 부재자신고인명부를 가진 사람들

 

SBS의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편지 원본을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넘겨 받은 뒤 지문과 필적 감식 등을 벌이고, 편지가 발송된 인천지역 우체국 주변 CCTV도 확보해 분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친필 원본은 있는 것일까.

<민주통합당 제주도당에 문의해 오늘 아침 전달 받은 사진.
제보자가 휴대폰으로 찍어 보냈다고 한다.>

 

제주도선관위에 문의해 확인한 결과, 보도에 나온 ‘원본’은 ‘친필 원본’이 아닌 ‘진짜같이 칼라 복사를 한 복사본’임을 확인했다. 결국 지금으로선 아무도 친필 원본의 행방을 모르는 것이다.

 

‘현나영 편지’가 전문 선거 브로커들에 의해 뿌려져 추적이 불가능하다 해도 분명 그 일을 지시한 사람은 있다. 편지가 뿌려진 주소는 모두 부재자 투표가 가능한 사람들이니 그 일을 지시한 사람은 부재자신고인명부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선관위와 제주도의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제주시갑의 부재자신고인명부를 가질 수 있는 쪽은 제주시갑의 후보들뿐이다. 후보 4명 중 무소속으로 출마한 두 명은 명부를 요청하지 않았다.

 

결국, 후보 중, 부재자신고인명부를 가지고 있는 측은 강창일, 현경대 후보뿐이다.

 

 

11. 많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룻밤은 모든 것을 확인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그 사이에 내가 올 수 있는 곳은 여기 까지다. 기사에 쓰지 않은, 아직은 70% 정도만 확신이 가능한 몇몇 불충분한 증거와 추측, 그리고 위의 사실들을 섬처럼 연결하면 그럴 듯한 시나리오들이 나온다. 그 시나리오로 독자와 유권자를 흥분시키고 싶은 욕망,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위의 사실들로 인해 좁혀진 무대와 이 사건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이를 정밀히 계산하면 충분히 독자들이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선거의 승자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의 행방을 지켜보면 더욱 명확히 보이는 부분이기에, 그냥, 맡기고 싶다.

 

다만 이것은 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뿌리를 알기 위해선 과거를 더듬어 보면 된다고.

 

 

12. 현경대와 강창일, 끊을 수 없는 인연

 

제주시 갑은 전국에서 최고로 꼽는 격전지다. 강창일이 치면 현경대도 친다. 현경대가 베면 강창일도 벤다. 여론조사도 초박빙이다. 때문에 난전의 연속이며 진흙탕 싸움은 더욱 심해진다. 상대방의 선거법 위반 주장은 기본, 공약 베끼기 논쟁, 비방전, 4.3유족 의혹, 눈물의 기자 회견, 결국 현나영 편지까지 왔다. 어떤 기자는 창과 방패에 비유하기도 한다.

 

전쟁에 비유되는 선거판이지만 원수가 아닌 다음에야 이찌 이리 처절하게 싸우는가 의문이 들 정도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 동일한 지역구에서 현경대 후보는 11대, 12대, 14대, 15대, 16대 국회의원을, 강창일 후보는 17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번 선거는 3번째 맞붙게 되는 판으로 현재까지는 강창일의 2승 무패다. 그동안 누구보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두 사람은 동향이다.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를 나왔고 강창일 후보는 정치적으로 현경대 후보와 갈라지기 전, 그의 보좌관이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정말로 뼛 속 깊이.

제주시 갑이 전국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 된 이유다. 
 

오늘은 여기까지. 

 


 

 

기획취재부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twitter: @kimcha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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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어리님의

    기사를 보고 놀란점은 위문편지를 가장한 한나라당을 찍어주세요는
    제가 있던 부대에서는 보편적 선거문화였습니다 (어이없게도..)
    17대 총선 당시 내무반에 밀려들던 수많은 편지들
    엄청난 수가 왔었습니다.
    한개 중대에 대략 50-60통?정도는 됐을겁니다.
    그런데 새삼 이런기사라니 언젠가는 터질일이긴했지만
    와 놀랍다 이런반응은 좀…

  2. 에클라이크샤님의

    부재자투표와 비례대표 개표방식이 어쩌면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생각하는 1-_-인.

  3. lifeislife님의

    감이 올듯 말듯 하면서도 뭔가 헷갈리는… 다시 정독해야지.

  4. 진보꼴통을 위한 국민위원회님의

    문득 홍반장이 쥐고 흔들었던 편지가 생각나는건 나뿐은 아니겠지..
    공작과 역공작.. 하지만 진실탐구보다 8년전
    한 해직언론인되지(?)의 욕에 폭주하는 기회주의 언론을 보니 가망 없네..
    만만한 되지만 패는 짓은 우리도 한다~

  5. Crocodile님의

    오로지 가카만을 생각합니다.

    앉으나 서나 가카 생각~~~ 앉으나 서나 가카 생각~~~

    그거시 뽀인뜨!!!

  6. 벽수님의

    칼라 복사기는 복사기마다 성문이 다른.. 뭔가가 있다던데…. (위조화폐 만든 놈 찾아 내려고) 고걸… 감식해 보믄 안될까여???

  7. 빙하님의

    추리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이네요.

  8. 제주는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채 아름다운 환경과 순박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고 있는 섬이다.
    이 대통령이 한라산 정상에 휘발유를 뿌리고 제주도를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발원본색하라는 그 말은 실제 워딩일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제주도민이라면 한번이상 들어봤을 문구다.

    그렇다.. 우리는 철저하게 정부에 의해서 외면받아오던 .. 그래서 우리끼리 별 일 없이 살아오던 제주도민이다.
    80년대 90년대 관광바람 관광광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육지자본이 제주도 토지 및 부동산을 잠식하기 시작하며 상업적인 용도로 제주의 땅이 신음을 하게 되면서 ..
    제주특별자치도로 승격하여 특별법을 만들기에 이른다.

    난 정치 경제에 관심없는 순수한 제주도민이기에 … 학교다니고 집에와서 밥잘먹고 여름이면 친구들과 바다에 뛰어들며 , 겨울이면 상품화 되지 못한 귤을 서로서로 나눠먹으며 손가락이 누렇게 되는 흔한 제주도민 중 하나다.

    누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면 우리집에선 000후보가 아빠 아는 사람의 사촌이라니까..
    내지는.. 000후보가 엄마쪽 친척이니까..
    000후보가 고등학교 선배니까…
    000후보가 안면있으니까…

    거의 궨당문화라고 일컫는 지연,학연,혈연 등으로만 철저하게 이어져왔다.

    예전에 삼성이라는 큰 배경을 지고 모 후보가 도지사 후보로 나왔을때도…
    그 후보의 고향에서 몰표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 그 후보는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제주도에서 나오지 않았었고
    또, 어릴때 육지로 가서는 그 이후 고향을 찾지 않았으며
    흔한 돈 몇푼이라도 고향을 위해서 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상대후보는 고향에서 살았고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앞서 도지사를 지냈던 인물이었다.

    그 결과 삼성이 지고 말았다. ^^;;

    믿거나 말거나

    제주에선 투표용지에 궨당이 있으면 승리한다. ㅋㅋㅋ

  9. 모르쿠당님의

    뭐랜 고람신고게
    영 나올 사람이 어시난 맨날 같은 사람만 나왐서

  10. 아기사재밋당님의

    궨당문화. 첨알았다. 스릴있다 기사. 보좌관에 뼛속까지 아는 사이의 접전이라니. 영화나오겠군

  11. 중요한건님의

    갓 20살인데 대학교 2학년이라

    2012년 현재
    갓 20살인 대학교 1학년은 현재 92년 생이야
    생일이 빠르다고 해도 93년 생이여야 하는거지

    근데 이메일 주소를 보면

    nyhyun-1990@hanmail.net 이렇지!

    1990이 태어난 년도를 뜻하는 것이라면, 나영이는 현재 22살이여야 해 만으로 21살이지.

    그렇다면,

    1. 이메일에 나오는 1990은 나영이가 태어난 년도가 아니다! 그냥 1990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자신이 쓰는 이메일 주소에 사용했다.
    2. 나영이는 사실….자신의 나이를 잘 모른다. 여전히 자신이 20살인줄 아는거다.
    나영이가 비록 90년 생이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스무살인거다…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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