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마음을 붙이면 물도 새지 않을 거라고 믿던 친구들과 부닥칠 일이 생겼다. 천성이 급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했던 나는, 아직 천박한 성질을 버리지 못한 탓에 어린아이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불만 있으면 한번 붙자.’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 중의 하나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왜 이것이 제일 더러운고 하니 뜨거운 기운이 목을 넘어가면 제 은인의 멱살조차 쉬이 잡아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만큼 더러운 천성이 어디 있으랴. 다행히도 마음공부를 덜한 나에 비해 친구들은 침착했다.

 

‘나는 너처럼 시원스레 주먹질을 해댄다고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협한 생각 중의 하나는 친구라면 으레 한번은 치고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한번은 미움의 바닥을 쳐야 정말로 서로를 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 나만의 방식일 뿐이었다. 내가 세차게 누군가의 가슴팍을 친다고 해서 그의 마음에 내 주먹이 닿을 리는 없다. 아니, 누군가는 닿았을 테지만, 누군가는 고통스러울 뿐이다.

 

나는 그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억울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친구들이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내 진심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십 분의 일도 몰라주는 그들에게 화가 났고 금세라도 무언가를 때려 부술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것을 질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들을 무시했고, 나는 내 갈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친구들이 내 손을 놓았던 이유였다. 오만과 자만.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구석구석을 오염시킨다. 누군가는 드러내지 않아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그 더러운 냄새는 주위 사람들을 질식시킨다. 내 친구들은 그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자신이 타인보다 높은 곳에 서 있다는 생각. 그것은 스스로 알아채기가 힘들거니와 스스로 완벽하게 숨긴다고 해도 절대 그럴 수 없다. 내 짧은 경험상, 세상에는 평범한 얼굴을 한 채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가 한두 명이 아니다. 그것은 모르는 자에게는 자신감으로 비춰 지지만, 아는 자에게는 심각한 악취를 풍길 뿐이다.

 

몇 년 동안 그것을 버리려고 발악하다 보니 그동안 우습게 보였던 주위 사람들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초라한 내가. 자신만의 세상 속에 갇혀 있던 내가. 얼마나 볼품이 없었던지, 얼마나 불쌍해 보이던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를 좋아했던 이들은 내 오만과 자만을 자신감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나를 사랑했던 이들은 내 오만과 자만을 당당함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태어나는 한두 가지의 매력. 나의 경우, 그 매력이 세상모르고 까불어 대는 철없음과 어울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과정이 남들보다 비정상적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그 결과, 사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한 나약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꼭 가져야 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더욱 놀랍고도 불행한 것은 스스로도 그러한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 주위의 몇몇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깊은 마음의 어른스러움에 반해 나를 사랑했다고 믿었던 그녀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 아니, 철없음이 귀여워 내 옆에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였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전신의 혈관에 얼음물을 흘려보내듯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깨달음의 뒤에는 반드시 악마가 숨어 있다. 마지막 관문을 넘었다고 생각한 순간, 진짜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마지막 길목에 서 있는 악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며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몸짓으로 내 등을 쓸어 올린다. 그리고 내가 흐물흐물 해질 즈음, 내 귀에 가볍게 입술을 대고는 머리가 멍해질 정도의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느냐, 아니면 버리지 않느냐?’

 

그 악마는 결국 나 자신.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그 결정은 쉽지 않다. 나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괴롭히며 자신 속으로 파고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인간들 중 몇 명이 그 선을 넘어갔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굉장히 힘든 질문이 될 것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여기서 다시 되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 나는 필연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요, 지금까지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매력이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밝혔기에. 그들이 반한 나라는 허상이 무너졌기에. 가장 무서운 것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껍질을 가진 채로 살아가느냐, 껍질을 깨고 그 안의 것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의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상을 깨부숴야 한다. 반대로 내가 그것을 알면서도 숨긴다면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것들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같은 부류의 사람만을 만날 것이요, 평생 나 자신의 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조금 더 알게 된 자신을, 조금 더 쉽게 자신을 속이는 데 쓴 분량. 딱 그만큼, 딱 그만큼 나는 허영과 진실을 맞바꾸는 것이다. 내 속의 내가 진실을 가지고 가라앉은 만큼, 내 밖의 내가 허영을 가지고 떠버리는 것이다.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도르래처럼.

 

나는 내 속의 나와 내 밖의 나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나는 나를 제어할 수 없기에.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혼자 우는 시간이 많아지기에.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나는 나 자신을 경멸해야 하기에.

 

맞춰야 한다. 드러내야 한다. 섹스보다 더한 매력, 마약보다 더한 중독, 오만과 자만이라는 괴물이 낳은 허영을 드러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그것이 얼마나 남아, 내 몸 구석구석에서 나를 썩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덜어내고 덜어내도 또 어디선가 나오는 그것. 괴롭고, 힘들고, 아프다.

 

그러나 우주의 법칙은 정확하다. 남들에게 보여 줄 것이 준만큼, 내게 보이는 것이 늘어갔다. 가슴 졸일 일이 줄어갔고, 답답한 일이 줄어갔다. 본래의 초라한 자신을 직시한 만큼, 마음은 점점 편안해 져 갔다. 그것은 거짓된 자신감을 넘어 진실 된 자신감으로 가는 과정, 진실 된 자신감을 넘어 평정심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억울하고 답답할 때,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부쩍 혼자 우는 일이 많아질 때, 그럼에도 남들이 더는 내 눈물을 믿어 주지 않을 때, 이해받으려고 이해받으려고, 인정받으려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해도 그 모든 것이 점점 거꾸로만 돌아갈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오만과 자만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허영 위에 위태위태하게 서 있지는 않은지. 그 모든 것 중, 단 하나도 놓으려 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머리를 밟고 서서는 울면서 나를 이해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은 자존심 이외에 모든 것을 버렸는데 왜 사랑을 얻을 수 없는지 고민하고 있는 인간과 마찬가지다.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것이다.

 

너무 느리게 어른이 되어가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고민하고 있을 동료를 위하여 그 마음에 슬며시 이 말을 놓아두고 싶다.

 

‘보이기 위한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 보아야 할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밤은 내 곁에 남아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야겠다.

 

by 죽지 않는 돌고래 / 0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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