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3. 24. 월요일

부편집장 죽지않는 돌고래







1

 

며칠간 화자된 글이다. SNS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 잡지에 실린 글이라 하는데 정확한 출처는 찾지 못했다.  

 

 

누군가는 믿을 수 없다며 악의적으로 만든 글이라 한다. 누군가는 그리 말하는 사람이 시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라 한다. 대부분의 반응은 무개념 시어머니, 인간성을 잃어버린 시어머니, 소시오패스 시어머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 이 글을 읽어 드렸다. 마지막 대목에서 어머니, 웃는다. 나도, 웃는다.

 

 

어머니는 평생 학교 무용 선생으로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몸을 쓰는 직업이라 퇴근하면 녹초될 터인데 그렇게 방에 들어가 겨우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에게, 할머니는 말했다.

 

 

'애비 밥은?'




2

 

어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그리 말하면 미워하는 게 가장 편했을 텐데, 라고.

 

'할머니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거든.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시대가, 할머니가, 오래 함께 살다보니 이해되더라. 나도 말했지.

 

<아니, 어머니! 나도 일하고 왔는데 며느리 피곤한 건 생각 안 합니까!>하고. 웃으며 농담하듯 말하면 할머니가 머쓱해하면서 "그렇제?" 하고 미안해 한다.(웃음)

 

그 시대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 여러가지가 녹아있어서 참 설명하기 복잡한데 그냥 미워하는 건 참 쉽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가 또 미안해하고, 근데 또 하고(웃음).  

 

여튼 이해하게 되버리면 미워할 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할머니와 어머니는 장난도 잘 치고 잘 삐지기도 한다. 열에 아홉, 삐지는 건 할머니 쪽이다. 


충돌로 치면 할머니와 아버지 쪽이 많다. 그럴 때 어머니는 '나이든 사람 쉽게 안 바뀐다. 하물며 자기는 아들인데 먼저 이해하고 맞춰가려 해야지 왜 자기는 안 바꾸고 어머니를 바꾸려 하느냐'고 한다. 아버지도 자존심 있으니 금방 미안하다고 하진 않으나 대부분,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장난치며 미안함을 대신하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마무리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3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끔 할머니에게 화를 낸 건 '밥' 때문이었다. 반찬 투정이 아니다. 저녁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몇 번이고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밥은?'

 

한번 물으면 될 것을 두 번 세 번 묻는다. 할아버지는 대개 허허 웃으며 넘기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땐 짜증을 냈다. 나밖에 없을 땐, 할머니는, 내게 그랬다.

 

'밥은?'




4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딸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먹물에다 사업에도 재능이 있는지라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허나 시대에 거스르려 했던 탓에 평생 고문과 후유증에 시달렸고 그 짐은 가족이 함께 져야 했다. 당시로선 고등교육까지 받았던 그녀, 열손톱 빠질 때까지 온갖 궂은 일 마다않고 생계 이끌었으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랜 시간, 아주 오랜 시간, 자식새끼 밥 챙겨주지 못했음이 한이었을까. 어느 순간, 자신이 가족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밥밖에 없다 생각해, 사랑 받을 수 있는 길이, 존재감을 채울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 그리  밥에 집착했을까. 하여 남편 위해, 자식 위해, 살아온 자신의 존재를 '밥은?' 이라는 질문 속에 우겨 넣은 것일까.

 

할머니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 알아서 밥 못 먹는 사람 없을진데 왜 그리 밥밥 하냐고. 할머니는 말없이 머쓱해했기에 그 마음, 지금도 알 수 없다.




5

 

모두가 가난했기에 밥 먹었냐가 인사가 될 만큼 밥이 소중한 나라. 그 나라엔 아직도 뿌리를 쉬이 확인할 수 있는, 더 없이 무참했던 남아선호의 세상이 있었다. 아들을, 장남을, 누구보다 극진히 대접해야 자신도 사랑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여자가 제 배로 낳은 여자를 하대하고 무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오직 아들을 귀히 여겨야 자신이 살 수 있었던 가혹한 운명을 가진 여자들의 시대가 있었다.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시대의 피해자가 이젠 의심 없이 가해자가 되어 미움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온갖 희생과 비틀린 애정을 강요받았던 그녀들이 무심코 내뱉는 '애비 밥은?'이라는 질문은,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

 

세상 문제 모두 그러하듯, 글 속의 시어머니를 비난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면 되는, 너무나 편한 지름길이 내 앞에 있기에, '애비 밥은?'이라는 질문은, 참, 어렵다.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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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여행

    2014.03.24 17:07

    이해하게 되버리면 미워할 수 없게 된다..

    후아~ ..
    이성만으로 함부로 판단해버리기 힘든 일들이 너무도 많죠. 세상엔.. .. 

    혹은.. 타인을 위한다고 했던 배려가 그 사람에겐 도리어 비수가 되어 박혀버리는 일도..
    이럴 땐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_ _)

    PS
    아, 혹시 1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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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고드는발톱

    2014.03.24 18:15

    며느리 건강보다 자신의 아들 끼니가 걱정스러운건 어쩔 수 없는 무조건반사다.
    좀 서운하고 마는거지. 장모가 부인 걱정 먼저 하는 것과 같다 생각한다.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 같을 순 없는게 순리.
    솔직히 내부모 내자식은 아니지 않는가.
    많이 바라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는게 차라리 속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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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sunday

    2014.03.24 20:03

    청년, 청소년 두 녀석들이 밖에서 돌아오면 무의식으로 젤 먼전 묻습니다, 밥은??

    의식적으로 질문을 바꿔봐얄꺼 같아요^^

    어머님 말씀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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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사는남극곰

    2014.03.24 20:10

    잘 보았습니다... 밥이라 밥... 저도 이 '밥먹어라'는 소리때문에 꽤나 고생하고 있는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해볼 기회가 되는것 같네요.
    아무튼 진짜 '참 어렵다'라는 말이 진하게 들려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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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고그런

    2014.03.24 21:21

    입에 말버릇으로 붙어버린...밥! ㅎㅎㅎ 하긴 가수 이미자씨도 명절증후군을 이해못하겠다고 하셨다니깐..
    시대적으로 그렇게 살아오는게 당연하다고 여기셨던거 같기도 하고.
    근데요, 우리나라만 가난에 시달렸던 역사가 있는것도 아니고 전 세계사적으로 기근에 시달렸던 나라가
    없었던 국가가 몇이나 될까요? 굶은 역사는 어느나라에서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밥에 대한 집착이, 그것도 여성에게 밥을 유별나게 원하는 걸까요? 
    장자를 중요하게 여긴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도 몇 국가 있는거 같은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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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배고파

    2014.04.09 14:12

    정말 우리나라만 유독 그런건가요? 
    따지자는게 아니라.몰라서 물어보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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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랑운동회

    2014.03.24 23:38

    그럼 소~는 누가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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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hatmamauri

    2014.03.25 00:19

    '시어미 욕하면서 닮는 현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건 되풀이 될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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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관적지향

    2014.03.25 01:30

    죽돌기자님의 이런 글, 참 반갑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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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쿠니

    2014.03.25 06:30

    유방암 수술하러 나서는 며느리에게 "애비 밥은?" 이라고 묻는 것과
    내 아들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에게 "니가 알아서 해라. 우리 애 앞길 막지 말고 꺼져" 라고 하는 것과
    영어 유치원에 월 200에 가까운 돈을 쳐들여가며 교육 시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모성애"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모성애"란 꼭 그렇게 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무슨 시대적 배경과 한계 들먹일 필요 없다.

    내 장담하는데 1000년이 지나 인간이 성간 운행을 하게 되더라도
    본질적으로 저것과 똑같은 현상이 그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데에 500원 건다.

    성스러운 면도 분명히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개인의 자기애 + 확장된 자기애 + 편협한 자기애에 따른 다른 개체에 대한 인지 부족 + 이기심의 집합체이기도 하니까

    김여사의 운전 실력의 근간에는 정황과 맥락을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이 있다.
    모성애란 그 편협함이 확장된 이기적 자기애에 따라 한 방향으로 쏠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고

    김여사도 여자고 모성애도 여자를 지칭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대개 위의 막장 사례들은 며느리나 아들의 여자 친구를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인간은 대개 그러하다. 여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동등한 인간으로 봤다면 그런 학살을 저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저 현상을 시대적 배경으로 돌리는 데 반대한다.
    저건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인간종이 가진 본질적 특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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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얼

    2014.03.25 10:15

    죽돌 부편짱의 이전 기사에 썼던 댓글을 취소하고 사과하고 싶은 이번 글.

    죽돌, 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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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짐승

    2014.03.25 13:49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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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펑크

    2014.03.25 13:58

    밥으로 보는 여성의 이중성같은건가..근데 여자와 엄마는 같은 존재가 아닌거 같은데.. 
    마치 초사이언으로 각성하기 이전과 이후의 손오공같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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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zez

    2014.03.26 11:45

    살면서 밥 보다 중요한건 없다. 
    문제는 밥은 지들이 알아서 먹어야 한다.
    하는 넘 먹는 넘이 따로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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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라클포스

    2014.04.02 12:40

    이건 시어머니라기보다는 사람의 인성 문제가 아닐까요? 얼마전 집사람이 운동을 배우다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는 중인데 장모님이 전화와서 와이프 걱정보다는 저랑 애들 밥이나 머 이런 문제를 먼저 걱정하셨다고 하더군요 여튼 돌고래님 말처럼 먹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장모님 입장에서야 본인 딸 팔 부러진게 더 큰문제일 수 있을텐데.... 여튼 사람의 인성인 듯 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 그래서 전 처가댁 양가 어른들을 상당히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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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언니

    2014.04.03 07:50

    우리엄마랑 이모가 나한테 맨날 밥머그라고 그래서
    아 좀!! 내가 나이가 며쌀인데!! 신경좀 그만써!! 알아서머그께!!
    하고 막 개..지랄떤게..생각나서 눈물이 날것같다.
    불효자는 운다.

    엄마들에게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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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21

    2014.04.04 11:09

    기사 보고 펑펑 울기는 또 오랜만입니다. 밥은? 이란 말에 항상 짜증만 냈던 모습, 반성해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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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0%

    2014.04.07 14:26

    또 다른 글을 본 거 같아 좋음.. 저 며느리 위험하다. 똑같은 말을 하면서 늙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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