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파크 북디비 용병으로 인터뷰한 8번째 인물, 강준만 교수님으로부터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주로 백업용으로 쓰는 블로그인지라 추후 인터뷰도 옮길 예정인데 성격 급하신 분은 이 링크(http://www.ddanzi.com/ddanziNews/19891789)를 참고하시길. 



 

 

 

 

 



1. 강준만 교수에게 책이란?

나에게 책은 저널리즘이다. 하루살이 신문보다는 수명이 긴 저널리즘이긴 하지만, 기본 시각은 그렇다. 책을 진지하고 심각한 매체로 대하는 저자들은 자신의 책을 ‘작품’으로 간주해 책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나는 격월간지를 내듯 매년 6권 이상의 책을 양산해내기 때문이다. 할 말이 많기도 하고, 책 써대는 일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들은 즐거워하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가 그거 어리석은 방법 아니냐고 물었지만, 내 답은 늘 이랬다. “베스트셀러 되는 걸 포기하면 훨씬 자유로워지고, 그런 자유로움이 내겐 더 소중하다.” 남의 책을 읽는 것도 저널리즘 대하듯이 하느라 책을 많이 사대고 다독·속독을 한다. 저널리즘이라고 해서 묵은 책을 내다버리진 않는다. 악착같이 다 보관한다. 공간 문제 때문에 결국 포기하긴 했지만, 한땐 구독하던 종이신문마저 다 보관했을 정도로 아날로그 집착이 강한 편이다. 평소 책을 읽을 때에 밑줄 찍찍 긋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 코멘트하고 나름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용 키워드들을 뽑아 책 뒷장에 써놓는 등 지저분하게 읽는 스타일이지만, 그 장점은 보관을 위한 비용(별도의 사무실 임대료 등)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크다. 책을 다시 읽을 때에 그곳에서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의 효용을 믿진 않지만, 독서도 주로 TV 앞에서 한다. 직업이 신방과 교수인지라 대중문화의 흐름을 알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변명해대지만, 시간 절약이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책 중독자인지도 모른다. 성인 남성의 반 이상이 스마트폰 중독자라는데, 내겐 책이 스마트폰인 셈이다.



2. 강준만 교수의 추천도서

(1) 사울 D. 알린스키(Saul D. Alinsky), 박순성·박지우 옮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아르케, 1971/2008).

이 책은 세상을 바꾸려는 자들이 갖기 쉬운 도그마에 대한 최상의 비판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직시하지 않는 운동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준엄한 경고다. “우리가 버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환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사물의 양면성을 분리시켜 파악하는 인습적 사고방식이다.”는 알린스키의 지적은 한국 진보진영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타협’을 더럽게 생각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는 “조직가에게 타협은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라고 단언한다. “당신이 무에서 출발한다면, 100%를 요구하고 그 뒤에 30% 선에서 타협을 하라. 당신은 30%를 번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헐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일단 타협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 타협은 갈등, 타협,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는 갈등과 타협의 연속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권력의 통제는 의회에서의 타협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사이에서의 타협에 바탕을 두고 있다. 타협이 전혀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




(2) 조노선 하이트(Jonathan Haidt), 왕수민 옮김,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웅진지식하우스, 2012/2014).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라면 절감하겠지만, 인간의 도덕은 하나가 아니다. 문화권마다 각기 다른 도덕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내에선 이 간단한 원리를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일 도덕 체계에 대한 절대적 신봉을 근거로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 책은 그런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타협의 정서를 갖게 해줄 수 있는 책이다. 하이트는 “세상에는 하나 이상의 도덕적 진실이 있다”며 “다른 사람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보는 ‘공감’이야말로 서로 자신만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라고 말한다. 진보주의자의 도덕성은 희생자들의 피해와 고통, 공평성 여부에 가치를 두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이 중시하는 도덕적 가치는 충성심, 권위 같은 것들이다. 후자의 도덕적 가치를 열등하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이런 주장에 수긍할 수 없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3)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J. Sternberg) & 카린 스턴버그(Karin Sternberg), 김정희 옮김, [우리는 어쩌다 적이 되었을까?](21세기북스, 1998/2010).

이념이 당파를 만드는가, 아니면 당파가 이념을 만드는가? 처음엔 이념이 당파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소한 차이점에 대한 과도한 집착(narcissism of minor differences)’으로 인해 오히려 당파가 이념을 만드는 우위에 서게 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사소한 차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걸까? ‘이익 투쟁’ 때문이다. 물질적이거나 상징적인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과 투쟁은 서로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유산 분배, 승진, 권력 장악은 가족, 같은 조직, 민족 내부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이익 투쟁’에 따라붙는 것이 바로 ‘증오의 배설’과 ‘자아 존중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대개 나와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이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최대한 부풀린다. 그 차이점이 증오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또한 자아 존중감이 위협받을 때, 사소한 차이점을 과장하여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려는 성향이 높아진다.” 특정집단에 대한 증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증오가 의분이나 공분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게 과연 꼭 그렇기만 한 건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성찰에 큰 도움을 준다.





(4) 카스 R. 선스타인(Cass R. Sunstein), 박지우&송호창 옮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후마니타스, 2003/2009).

다니엘 솔로브(Daniel J. Solove)는 [인터넷세상과 평판의 미래]에서 “집단이 하나의 이슈에 집중하면 의견이 대립하는 경향을 띠며 결국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며 “네티즌은 마치 독벌떼처럼 민첩하게 움직인다. 때로 그들은 폭도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한국의 디지털 세상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선스타인은 이런 현상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일반적으로 토론을 통해 양측은 본래 입장보다 오히려 더 극단적인 주장을 펴게 되며, 집단이 개인보다 더 과격한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과잉이 이른바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에 의한 ‘정보와 평판의 쏠림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견해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서로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서로 간에만 대화를 나눌 것이고, 이는 더욱 심한 극단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망정 이 책을 차분하게 읽으면서 우리의 그런 성향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외에


(5) 로버트 프랭크(Robert H. Frank) & 필립 쿡(Philip J. Cook), 권영경, 김양미 옮김, [이긴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CM비지니스, 1995/1997).


(6) 비키 쿤켈(Vicki Kunkel), 박혜원 옮김, [본능의 경제학: 본능 속에 숨겨진 인간행동과 경제학의 비밀](사이, 2009).

(7)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 안진환 옮김,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리더스북, 2008/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