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 본성, 인간 성격의 근원 같은 문제는 개인적으로 꽤 오랜 화두인데 호르몬 변화에 따른 성격 변화, 좋고 싫은 인간 유형의 변화 등에 관심이 많아 관련 부분을 정리하다 흥미로워서 올려본다. 위의 책은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로 한국판 제목이 도발적이라 그저 그런 진화심리학 책으로 오해할 수 있다. 허나 실제론 매우 탁월하다.   




2.

'진짜 나' 라는 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가 하는 건 오랜 생각이다. 남성에게 여성 호르몬을 투입했을 때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었다든지 여성에게 남성 호르몬을 투입했을 때 사춘기 남성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었다든지 하는 사례를 보면 묘한 기분이다.


여성의 경우에 나타나는 피임약의 부작용, 남성의 경우에 나타나는 전립선약의 부작용, 또는 남녀 모두 나타날 수 있는 우울증약의 부작용 같은 건 호르몬에 관계된 것인데 서서히, 또는 소소히 변화가 진행되는 사람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마음의 변화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여성은 '진짜 나'가 싫어하는 남성을 좋아할 수 있고 '진짜 나'가 좋아하는 남성이 싫어질 수 있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호르몬 교란이 일어나면 소위 '진짜 나'가 좋아하는 여성을 착각할 수 있고 '어느 순간', 서서히 싫어질 수 있다.




3. 

'어느 순간' 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성전환 수술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피임약, 전립선약, 우울증약 등의 호르몬 부작용이란 약을 먹은 직후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3개월 뒤에 나타날 수 있고 6개월 뒤에 나타날 수 있으며 1년 뒤에도 나타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의외로 잘 눈치채지 못하는 동물이라 제법 여러가지 불행의 가능성이 있는 듯하다.  


남성의 경우, 우울증, 전립선약 등을 먹고(여드름 개선을 위해 피임약을 먹는 사람도 있으니 피임약도 포함해야할 듯하다)드문 확률로 호르몬 교란에 의해 부작용이 생겼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할 경우, 결혼하거나 사귀던 이성에게, 더 이상 나를 가슴 뛰게 하지 못하는구나, 난 더 이상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왜 이 여자는 이렇게 성욕이 강한 걸까, 라고 착각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임약을 먹고 드문 확률로 호르몬 교란에 의한 부작용이 있을 경우, 성욕감퇴, 우울증, 관계시 통증 등의 부작용을 마음의 변화라고 착각해 사랑이 식은 게 아닐까, 예전만큼 관계가 좋지 않다, 딴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라고 착각할 수 있다.  


나 또한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의사의 말, 환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부작용은 3개월, 6개월, 혹은 1년 뒤에 갑자기 나타날 수도, 서서히 나타날 수도 있으니 민감하지 않은 사람은 호르몬 교란에 의한 마음의 착각을 실제 변화라고 착각하고 또 그 착각을 믿고 평생을 오해하고 살아갈 수도 있을 듯하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자신이 왜 불행해졌는지 평생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부작용을 뒤늦게 눈치 챈 남자의 말(여자 쪽 말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남녀 모두 나타나는 현상은 비슷해 보인다)을 들어보면 성욕이 거의 생기지 않거나 성기 쪽에 통증이 생기거나 흥분이 되지 않아 성관계를 점점 피하게 된다. 또한 감정의 폭이 좁아져 자신은 물론 상대방 또한 서로의 마음이 줄어들고 있다는 착각을 주게 한다 한다. 약을 끊고 몸이 회복된 후, 심신이 모두 건강한 상태가 되고 나서도 한동안 눈치채지 못하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았다 하니 자신에게 부작용이 일어나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둔한 사람의 경우는 확실히 불행해지는 사례가 많은 듯하다.      


로맨틱하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은 것 같아 뭔가 으으으으음한 기분이지만 인간의 본질이나 본능에 대한 부분 같은 건 여러모로 관점을 넓혀두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법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기 힘든 법이지만 의외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기 힘든 법이다.


잡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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