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국에 있는 지인에게 특별 부탁해 공수한 체스판이다. 무게감이 좋고 체스말 아래가 동글동글해 게임 외적인 잔재미가 상당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날아와 동생과(어릴 때 알던 사진 찍는 동생이 집에 잠시 와 있다) 두었는데 져주니까(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디게 좋아한다. 

이기고 나면 기고만장해진달까, 보기 드물게 싸가지가 없어지는 탓에 창문 밖으로 밀어버리고 싶다. 그러면 100% 죽어버리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망설인다. 동생 같은 건 돈이 없어도 어디서든 원하는 만큼 주워올 수 있지만 좋은 체스판은 돈을 주고 특별히 부탁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소중하다. 

여튼 좋은 체스판이 생겨서 좋다.
  

... 라고 개인 SNS에 몰래 적었는데 동생이 봐버려서 성가시게 되어 버렸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아이라 이런 건 잘 모르겠지, 하고 촌놈 취급했는데 의외다. 덕분에 개인적인 잡담을 하려는 용도의 글에선 몰래 동생 욕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 이제는 그냥 할 셈이다.


2.

집에 들어가면 동생은 별 할 얘기도 없는 주제에 어설픈 한국어로 계속 시비를 건다든가(물론 일반적인 의미의 한국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인성이 워낙 좋지 않아 바른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느낌이다)퇴근해서 혼자 좀 쉬려면 계속 툭툭 건드리거나 미드를 볼 때 옆에 앉아 계속 쫑알대며 방해하는데 아무래도 같이 지내다 보니 내가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


그래도 마음을 받아주긴 힘들다. 얘라면 앞으로 굉장히 말이 잘 통한다는 발전이 있거나 엄청난 노력을 해주지 않는 이상 힘들다. 동생의 얼굴이나 몸매가 나쁜 건 아니지만 나로서는 그런 걸 별 고려하지 않는 성격이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도 무리일 것 같다. 애초에 얘는 너무 남자같이 생겨서 싫다. 실제 남자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남자같이 생겨서 싫다.


여튼 지난 글을 본 동생이 우와, 우와, 호들갑을 떨며 실제로 민 거 아냐, 아니, 이미 창문에서 밀은 건데 내가 모르는 거 아냐, 하며 메신저로 엄청 쏘아대는데 모기같이 앵앵대서 정말 모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면 홈매트로 잡을 수 있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말을 하자면, 아침에 동생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 지나가는 척 하면서 밟았는데 꿈틀 꿈틀대는 게 조금 재밌어서 1번 더 밟았다. 조금은 눈치를 챈 것 같아 내가 길눈이 어두워서 그렇다고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이 밟는다는데 모른 척 밟혀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남자가 너무 민감해도 매력이 없는 법이다.


3.

요즘 여러모로 동생이 버릇이 없는 거 같긴 하다. 설거지도 안 하고(내가 쌓아놓은 거긴 하지만)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은 작업간다고 집에 없으니까 조금 허전하긴 하다. 쉼 없이 쫑알대는 애들은 옆에 있으면 짜증 나는데 없으면 조금 빈자리가 느껴진다.





<동생이 찍은 사진 중 하나. 짜증나지만 사진은 느낌 있게 찍는다. 강준만 교수 인터뷰 사진도 얘가 찍었다>





추신 : 어느 정도의 빈자리냐고 물으면 앵앵대던 모기가 없어진 정도다. 홈매트를 써서 없어지면 좋은데 그냥 없어지면 내 통제력 범위를 벗어난 느낌이라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있으나 없으나 짜증 나는 스타일이다. 물리적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2015.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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