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촌과 잠시 함께 산 적이 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집안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재판하던 때로 기억한다(국가범죄의 경우, 피고가 대한민국이 됩니다).

삼촌과 새벽에 잡담하다 나온 말이 남는다.

'조용히 살았더라면...'

2.
삼촌은 '부자'의 경험이 없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진, 있다. 해서 어릴 때 자주 들은 말 중 하나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로 기억한다. 한으로 추측한다. '자기 것'을 잃어버린. 아니, 빼앗긴.

삼촌은 막내였기에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처참했다.

가난, 멸시, 고통, 두려움. 

3.
거부였던 독립운동가 증조부가 이승만의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살해당해 한 번 망했다. 사업가의 재능이 있던 조부가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박정희 정권 하에 빨갱이로 몰려 다시 망했다. 부친이 조부와 함께 평생 대한민국을 상대로 재판, 박근혜 정권 하에 반 세기만에 승소, 다시 일으켜 세우는 중, 정도로, 집안의 역사는 요약된다.

나는 옆에서 보았을 뿐. 윗대가 일궈놓은 열매만을 먹고 살아왔다 생각한다.

4.
인간의 처참함이랄까, 인간의 바닥이랄까, 혹은 가난이랄까. 특히 어미가 자식과 함께 자살을 결심할 정도의 가난을 경험해 본 적 없어 그 마음은 추정이 불가능하다(내 알기로 할머니는 4번, 어린 아버지와 함께 자살하려 했다. 물론 나로선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떠돌이 생활하고 커야했다면.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 범죄자의 자식처럼 살아야 했다면. 가족들 모두 뿔뿔이 흩어져 하고 싶은 거 하나, 먹고 싶은 거 하나 못 먹고살아야 했다면. 나는 알 수 없다.

삼촌은 그랬다.

5.
당시 삼촌은 꽤 고생하고 있었다. 그 말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만약 (윗대가)조용히 살았더라면...'

증조부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부가 정권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삼촌은 아주 다른 젊은 날을 살았을지 모른다.

화목한 가정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유학도 갔을 지 모를 일이다. 가능성이긴 하지만 높은 가능성일 것이다. 물론 더 엉망진창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일은 알 수 없다.

6.
오래전, 백범일지를 보며 적어놓은 문장 중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이라도 팔아 좋은 음식이나 늘 하여다 주면 좋겠다 하는 더러운 생각이 난다"

김구 선생이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배 고플 때 그런 생각이 났다 한다. 깡 하나는 타고난 김구 선생이 그랬다. 하물며 범인은. 하물며 삼촌은. 하물며 나는.

7.
주말을 맞아 문득 청소를 하다, 삼촌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의 약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따위가 강해질 리 없으니 조금은 더 스스로 노력이란 걸 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일단은 바닥 청소를 마무리했다. 

 

 

 

2016.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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