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혼을 한다, 라고 친구에게 전화했다. 얼굴 안 본 지 10년쯤 됐으나 고등학생 때 워낙 붙어 지내던 친구라 어제 만난 듯 편하다.

근황을 물어보니 '너 처럼은 살지말아야지'하고 친구들이랑 얘기하며 살고 있단다. 과연, 하고 잠깐 수긍했다가, 으응?, 그건 내가 할 대사인데.

청첩장을 보낸다니 '진정한 직장인은 시키지 않는 짓은 하지 않는다' 라는 이유로 안 시킨 거니까 보내지 말란다. 그래서 안 보내기로 합의했다.

어쨌든.

2.
이혼했다고 한다. 이혼, 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서로 박장대소했다. 부인이 이혼해달라고 했단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이 친구가 의외로 거절을 못하는 스타일이라 바로 했을 것 같긴 하다.

친구는

'난 언제나 너보다 앞서나가지' 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승부욕이 꽤 있는 친구였는데 매번 져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이번에도 역시 그렇다.

아이도 있는데, 이혼쯤 되는 일이면 엄청 괴로웠을 텐데, 그나마 내 일이 아니라 덜 괴롭다, 라고 생각만 하려 했는데 친구니까 그냥 말해버렸다.

굳이 남이면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말을 해버릴 수 있는 점이 친구의 좋은 점이 아닐까(라는 건 저만의 생각이니 따라하지 마시길).

3.
어릴 적부터 제법 묘한 제안을 해도 받아주는 친구들이 좋았다. 의외성이랄까,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이 친구도 그런 편이다.

사실 친구들과 주고받는 묘한 제안, 이라고 해봤자 별 건 없다. 학교 가는 대신 목욕탕을 간다거나 학교 가는 대신 흙파기 놀이를 한다든가 하는 것이다(참고로 나는, 목욕에 관해선 프로라는 느낌인데 때미는 걸 굉장히 잘한다. 개구리도 잘 잡고 흙으로 단단한 공 만들기도 잘한다. 자부심 치고는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잘한다. 흠.) 고등학생이나 되서 이런 걸 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좋다. 놀이터에서 계속 흙을 파다가 진짜로 100원이 나오면 기쁘다. 아주 기쁘다.

4.
아래 사진은 위에서 말한 친구와 함께 만들던 게임북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든 건데 그때도 유치했고 지금도 유치하다.

 

5.
조금 묘한 책을 만들거나(우리끼리 보는 소설이나 만화책)조금 묘한 게임을 만들거나(말도 안되는 법칙의 보드게임 혹은 카드게임)조금 묘한 연극을 만들거나(손으로 레고나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짓을 함께해주는 친구들이 좋았다. 이쪽의 억지를 받아주는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 

... ...

... ...

지금 생각해보면 걔네들도 딱히 무슨 생각이 있어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생각없는 친구들과 놀았던 걸 수도 있겠다. 


2017. 01. 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