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가 임신했다. 외양으로 판단하면 내가 한 것이지만 초음파로 판단하면 아내가 했다. 과연 현대문명. 아니,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2.
아내가 얼마 전부터 매일의 식사와 짤막한 소감을 적는다. 읽어 보았다(허락을 받고 올려봅니다. 그냥 올리면 더 재밌었을 텐데 앞으로 안 볼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무렇게나 적어 글이 엉망이라 부끄럽다는데 과연 엉망이다(으음?).
다만 사람이든 문장이든 기교 없이 마음을 일직선으로 엿차, 하고 끄집어내면 묘하게 상쾌한 기분이 든다.
3.
고운이(아내의 이름입니다. 이름과 어울리게 생겼는가는 별개의 문제니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아 주세요)도 나도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인상 깊게 읽을 때 생긴 아이다. 해서, 하라리에서 글자를 떼와 "하리"라 지으려 했...... 으나 주위의 AI 전공자가 제법 비판적인 말을 해 왠지 모르게 찜찜해져 배제했다(하라리 님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론 감탄했으니 기분 나빠하지 말아 주세요).
해서 25년 이상 꾸준히 좋아해 안전한(?)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글자를 떼와 "하루"라 지었다. 하루는 봄에 태어날 아이란 뜻도 있다. 하루키의 "하루"도 봄 춘 자를 쓰니 뭐, 대충 잘됐다.
4.
나는 감정이 격하지 않다. 물론 누가 다짜고짜 때리면 조금 기분 나빠질 순 있지만 마구 격하진 않다. 증거를 대라면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여러 친구와 얼마나 잘 지내는지 실명으로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지만, 그러면 전쟁이 벌어질 게 분명하니, 으음, 어쩐다, 여튼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첫 심장박동 소리를 들은 날, 택시 안에서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 줄줄줄. 으으음.
아내가 놀린다. 왜 그리 흐르는지 나도 알 수 없다. 벅차다. 벅참의 근원은 역시나 알 수 없다. 나의 부모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물론 부모님도 제가 태어날 줄은 몰랐겠지요. 딱히 제가 사과를 해야 할 일인지 어떤지는 책임관계가 조금 애매하지만)
아무쪼록 아내가 입덧이 있는 관계로 하루에게
‘조금 덜 나대는 편이 너의 장래를 위해서 좋을 텐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한국어를 깨치지 못한 관계로 무리다. 말이 통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 안 통하는 상대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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