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가 되기 전에 일단 사람이 되어야겠군, 하고 아내의 출산 예정 백일 전부터 가급적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을 먹고 있다(특히 마늘은 뱀파이어를 막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

......

는 물론 거짓말이다.

아마도 단군 할아버지가 걔들을 만났을 때는(아, 걔들이라고 하면 예의가 아닐 수도 있지만) 마늘이 아직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 전부터라고는 확신 가지 않지만 고고학적인 증거로 보면 대략 기원전 9세기, 혹은 8세기 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존속했다. 이때 마늘이 전해진 것으로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온 것이 기원전 2세기니 한국으로 들어오려면 적어도 그 이후가 돼야 한다.

해서 학계에서는 마늘이 아니라 달래 혹은 무릇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나로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이럴 땐 쑥과 달래, 무릇을 동시에 먹는 게 최고다. 제법 건강에도 좋은 느낌이다.

......

라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다. 

그런 걸 100일이나 먹고살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뭘 먹는 것으로 무엇이 된다면 난 이미 코코아 열매 요정이나 당뇨의 수호성인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믿을 수 없다.

......

과연 없다.

그래서, 

이건 포기. 

 

2.

하루는 어떤 아이 되면 좋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무엇이 아니다. 나의 부모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을 테니 말이다(세상 이치라는 게 그런 것이지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해도, 아빠니까 뭐라도 해주고 싶기는 해서 매일 하루 위에 손 올리고(직접적으론 올릴 수 없으니 아내의 배에 올리고 있습니다) 시를 읽어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 다른 사람과 같이 올리는 건 아닙니다. 이건 마사지 교육 때 사진.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인간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법이니까요.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만큼은 제법 고민했는데(지금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흠입니다만) 아무래도 인내와 무욕의 가치에 조금 도움을 받았다. 

부정확한 기억으론 15살 때부터 삶의 근본을 인내로 잡았다. 당시 읽었던 책에 인내의 가치가 매우 멋있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단순합니다. 죄송합니다). 해서,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는 점을 15살에 디폴트 값으로 하고(그렇다고 딱히 고통스러운 삶을 산 건 아닙니다만) 대략 20대 언젠가에 ‘욕심부려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군,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무욕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그렇다고 딱히 무욕의 인간인 건, 역시 아닙니다만).

나의 철학과 비스비스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나 해서 대략 한 달 동안 미야자와 켄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를 세 번씩 읽어주고 있다(일본 문학사 전공입니다. 아시다시피 전공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아내의 반응도 딱히 나쁘지 않다. 다만 하루가 초반 10일엔 세차게 반응하는데 20일쯤 넘어가니 '아아, 또 그 시야? 그런 건 이미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같은 느낌이 다소, 있다. 초반엔 반응이 읏샤읏샤 온다면 요즘은 '뉘에~ 뉘에~ 됐으니까 후딱 해' 같은 태동이랄까. 한데 또 며칠 반복되면 '오호! 좋은 시로군!' 하는 느낌이다.

의외로 건방진 녀석이 아닐까. 하루는 기억력이 형편없을지도 모르겠다. 뭐, 아직 어리니까(정확히 말하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어른인 내가 이해해야지, 하고 화는 내지 않고 있다.

3.

매일 밤 3번씩 읽어주니 10일쯤 되었을 때, 외워버렸다.

덕분에 시 한 편 외웠으니 이래저래 건방진 데다 기억력도 형편없을 것 같은 녀석이지만 나름 나와 죽은 맞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걸어보는 중이다. 

아래는 매일 읽어준 "비에도 지지 않고"의 전문이다. 번역은 조금 제멋대로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길.

雨にもまけず

비에도 지지 않고 

風にもまけず

바람에도 지지 않고 

雪にも夏の暑さにもまけぬ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丈夫なからだをもち

튼튼한 몸으로 

欲はなく

욕심은 없이 

決して怒らず

결코 화내지 않으며 

いつもしずかにわらっている

늘 조용히 웃는다

一日に玄米四合と

하루에 현미 네 홉과

味噌と少しの野菜をたべ

된장과 조금의 야채를 먹고 

あらゆることを

모든 일에

じぶんをかんじょうに入れずに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よくみききしわかり

잘 보고 듣고 알고 

そしてわすれず

그리고 잊지 않고

野原の松の林の蔭の

들판 소나무 숲 그늘 

小さな萓ぶきの小屋にいて

작은 초가집에 살고 

東に病気のこどもあれば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行って看病してやり

가서 돌보아 주고 

西につかれた母あれば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行ってその稲の束を負い

가서 그 볏단 날라주고 

南に死にそうな人あれば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行ってこわがらなくてもいいといい

가서 두려워 말라 말해주고 

北にけんかやそしょうがあれば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 있으면 

つまらないからやめろといい

별 거 아니니 그만두라 말하고

ひでりのときはなみだをながし

가뭄일 땐 눈물 흘리고

さむさのなつはオロオロあるき

냉해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みんなにデクノボーとよばれ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며

ほめられもせず

칭찬도 받지 않고 

くにもされず

미움도 받지 않는

そういうものに

그러한 사람이

わたしはなりたい

나는 되고 싶다

201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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