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산과정엔 여러 선택지가 있다. 

1) 병원분만->산후조리원->산후관리사, 코스도 있고 

2) 조산원->산후조리원->부모님 찬스, 코스도 있으며 

3) 가정분만->산후관리사, 코스도 있을 수 있고  

4) 늑대->양치기 파우스툴루스

같은 코스도 있다. 

… …

4번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그의 쌍둥이 동생 레무스의 사례다. 망한 나라의 건국 신화까지 다루는 건 곤란하니 자세한 건 로마 신화를 참고하시길(여행 가이드에게 들어 기억하는 건 이게 다이기 때문이지요).

아내와 나는 ‘조산원(수중분만:새벽의 육아잡담록 6편을 참고해주세요)->7박 8일 모자동실-> 산후관리사’, 라는 그림을 그렸다.

 

2.

국가부도엔 IMF라는 속성코스가 있고 군대엔 유격훈련이라는 속성코스가 있다. 10대에 IMF, 20대에 유격훈련을 지나왔으나 그 의미와 의미 뒤에 숨은 그림을, 아직도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다만 세 가지는 몸으로 알고 있다. 

첫째, 살면서 처음 겪는다는 것. 

둘째, 고통스럽다는 것. 

셋째, 두 번째에 있는 걸 아무리 말해도 겪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알아처먹, 아, 죄송, 알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30대에 알아버리고 말았다.  

육아계엔 모자동실이라는 속성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3. 아내는 왜 모자동실을 택했는가 

모자동실이란 출산 후, 엄마와 아이가 한 방에서 지내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아내와 나, 하루가 7박 8일을 함께 지낸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다. 

나로선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라는 경우 외엔(정말 먹고 싶은 디저트 선택 등) 대충 납득할 정도만 되면 따르는 편이지만 수중분만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으음, 할 수밖에 없었다. 

출산, 하면 산후조리원 아니던가. 신생아실에서 잘 케어해줄 텐데 굳이 왜 고생을 사서 하려는지(게다가 우린 부모로서도 젊은 나이가 아닌데! - 의학적으론 노산이래요, 젠장) 나로선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임신과 출산에 대해 국가의 케어를 크게 체감할 수 없고(최근엔 제도개선이 조금 이루어지는 흐름이라 다행입니다. 휴우) 대가족의 강점 중 하나인 온 가족 육아도 기대할 수 없는 시대다(게다가 저희는 양가 부모님 모두 다른 도시에 계시지요). 

지구 상에서 꽤 잘 나간다는 나라 축에 드는 건 분명하지만 ‘니 복지는 니가 벌어 니가 해라’, 라는 ‘자가 복지’의 묘한 특수성이 제법 강한 국가인 것 또한 사실이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공공기관이 못하면 민간이 그 일을 하듯, 그나마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 산후조리원이라는 시스템이 있는 게 천만다행인데(안타깝게도 돈을 내야 합니다만) 이걸 이용하지 않는다? 한 줄기 빛마저 거부할 셈인가, 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내의 생각은, 

‘아이와 산모만 건강하다면 태어나서 부모랑 같이 있는 게 정서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어. 보통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에서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순간이라잖아. 아직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없고 당신은 회사 가고, 주위에 사람도 없는데 잠도 못 자면 엄청 힘들 거 아냐. 

모자동실은 처음엔 좀 힘들지만 나중엔 큰 도움이 될 거야. 물론 모자동실에 있다가 몸이 안 좋거나 힘들면 산후조리원에 가야지. 헌데 나는 그 돈을 아껴서 나중에 산후관리사님을 길게 고용하는 게 더 현명할 것 같아.’ 

이 말은 후에 사실로 증명되지만, 정밀히 말하면 어떤 한 부분은 ‘축소된 사실’이다. 

‘처음엔 좀 힘들지만’ 이 아니라 ‘처음엔 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올라 힘들다’ 정도로 적어야 그나마 사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4.

아내와 나는 하루가 태어난 방에서, 태어난 그 순간부터 7박 8일을 함께 지냈다. 육아 관련 전문서적에 따르면 신생아는 보편적으로 18-22시간을 잔다. 전문서적이란 건 자세히 읽지 않으면 큰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데 특히 육아 관련 서적이 그러하다. 

예를 보자. 

어떤 마을의 지하에 육중한 무쇠 알람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마을 전체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주는 힘의 근원이지만 알람이 일정 시간 이상 울면 지진과 해일 혹은 타노스(그런 외계인이 있습니다. 특징: 못생김)의 공격을 가져와 마을에 큰 재앙을 가져오는 마법이 걸려있다. 당신은 마을의 시계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3평 남짓 되는 방에 시계와 함께 있다. 

이 마법의 시계는 에너지 소비효율등급이 118등급쯤 되는데(아시다시피 1등급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절약됩니다. 참고로 우리집 냉장고는 1등급. 에헴), 등급이 낮아도 너무 낮아서 1~2시간에 한 번은 전력을 다해 태엽을 감아줘야 알람이 울지 않고, 놀랍게도 똥을 자주 싼다! 언제 쌀진 모르지만 똥을 안 치워줘도 운다!(마법의 시계니까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시계가 똥을 싸다니, 하고 시비는 걸지 말아 주세요. 멀쩡한 볼펜도 똥 싸는데 뭐)

1~2시간에 한 번, 태엽을 감아주는 것과 똥을 치워주는 건 그렇다 쳐도 문제는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이 랜덤으로 울기도 한다는 점이 이 시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당신은 관리인인 관계로 마을을 망하지 않게 하려면 시계를 계속 관찰하며 알람이 울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의 마을마다 마법의 시계가 하나씩 있기에 기본적인 교육은 받았지만 똑같은 시계가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라면 또 문제지만 말이다. 

당신은 문득, 당신을 관리인으로 임명한 마을 촌장의 대사를 떠올린다. 

'별 거 없어. 24시간 중에 18~22시간은 안 우니까 나머지 시간에 너 할 거 해'

며칠 일해보고 당신은 다음과 같이 그 말을 해석한다. 

'촌장 개새..' 

아, 아니, 

'24시간 중에 2~6시간은 반드시 울어. 몰아서 우는 건 아니고 30분 있다가 1분 울 수도 있고 1시간 있다가 3분 울 수도 있고 뭐 그런 1분이나 3분을 긁어모으면 한 2~6시간쯤 울 거야.' 

알다시피 이 마법의 육중한 무쇠 알람시계는 당신의 아이다. 

 

5.

인간은 잠을 자지 못하면 기억력이 감퇴하고 판단력이 떨어지며 신체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뇌와 내장기관은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보장하지 못하면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신생아와 함께하는 최초의 육아는 마치 질 나쁜 헤로인을 계속하는 것처럼 뇌와 몸이 서서히  파손되는 느낌이다(마약떡볶이와 마약김밥 같은 합법적 방법 외에 불법적으로 마약을 구입한 경험은 없으니 오해는 말아주시길).

재미있는 건, 객관적으로 신체와 정신이 몇 배 힘든 건 엄마인데(뭐, 당연한 일이지요) 주관적으로는 아빠가 더 힘들다. 엄마는 회음부를 꿰맨 상태라 고통이 지속되고 몸 안의 오로(분만 후에 나타나는 질 분비물)가 지속적으로 나오기에 산모패드(성인용 기저귀를 상상해주시길)를 차고 있다. 찜찜한 데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모유수유 혹은 유축을 해야 하므로 안 그래도 모자란 수면시간이 더욱 짧아진다.

예를 보자. 

신생아인 아기는 위장이 호두만 하므로 1시간, 길어봤자 2시간만 되면 배고파 운다. 엄마가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40분. 당연 이 시간에 남편은 잘 수 있지만 엄마는 잘 수 없으므로 아이가 1시간 자면 20~40분씩, 운이 좋으면 1시간 정도만 쪽잠을 잘 수 있다. 물론 인간이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으므로 유축해 놓은 모유를 놔뒀다가 아빠나 간호사가 먹이기도 하지만 근간이 되는 고생은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응? 수유를 안 하면 안 되냐고? 아쉽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하기 싫다고 건너뛸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닌 게 2, 3시간마다 젖이 차 가슴이 엄청 아프므로 젖이 많든 적든 숙명 같은 일인 게다.  

호모 사피엔스가 묘하게 진화한 것이 이렇게 극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엄마에겐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이 뿜 뿜 분비되므로 이 기운으로 버틸 수 있지만(뇌내에서 마약을 주는 거라 상상하시길) 안타깝게도 아빠는 그런 게 엄마처럼 막 나오진 않는다.

뇌내 마약이 뿜 뿜 나오는 사람과 안 나오는 사람의 차이. 

이것이 모자동실에서 객관적으론 엄마가 몇 배나 힘들지만 주관적으론 아빠가 더 힘들 수 있는 이유다. 

 

6.

물론 아내의 임신 단계, 무엇보다 자신의 아기가 생기면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적어지고 남자를 아빠로 만드는 호르몬의 양도 늘어나지만 남자의 경우, 적어도 육아에 한해선 본능보다는 행동 혹은 학습에 의한 변화가 더 크다(지가 안 낳으니까!). 호르몬 단계에서 남자를 아빠 모드로 강제 전환시키려면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내가 이런 호르몬 계통까지 공부하고 나를 포획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부성애 따위라곤 1밀리그램도 없어 보이는 남자와 결혼했다면 모자동실에서 같이 지내는 편이, 과학적으로도 좋은 방법이긴 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못된 남자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자상하게 변하는 건 실제로 신체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유가 부족해 분유를 보충하는 아내의 뒷모습. 조산원 모자동실이란 이런 느낌입니다.

추신: 모자동실의 강점과 약점의 정리는 다음편에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더 길면 안 읽을 거잖아요(물론 저도 그런 스타일이긴 합니다).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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