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 길, 멀다. 

본 코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육아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말이다. 

지난 글(모자동실이란 무엇인가 1 : 지옥의 육아속성코스)의 약속대로(약속하면 지키는 남자, 그게 바로 저입니다만, 에헴, ...... , 나대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모자동실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빠르게 정리한다.   

7박 8일간 아내, 아이와 함께 모자동실에서 먹고 잔 경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 강점

1)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24시간 함께 있는다. 꼬물꼬물 무척 작아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아이와 함께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 시기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보고 싶을 때, 안고 싶을 때, 언제든 그럴 수 있다(아, 물론 안 보고 싶을 때, 안 안고 싶을 때도 그래야 한...).

뭐 이렇게 작아!!

2) 1만 8천 개쯤 있는 아이의 우는 이유를 다 알기란 어떤 인간도 불가능하다(저도 가끔 제가 우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졸려서인지, 잠이 오는 건지, 소화가 안돼서 인지, 기본적인 대처능력을 재빨리 습득할 수 있다.  

3) 남편은 속싸개 스킬,  트림시키기, 잠재우기, 등을 자연스레 익힌다. 이 속성 코스가 끝나면 웬만큼 신생아에 관련된 스킬은 씹어 먹는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힘이 더 세기에 아내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며, 특히 속싸개는 퇴실할 때쯤 칼각을 잡는다. 퇴실 후, 적절하고 다양하고 폭넓게 남편을 사용할 수 있다.

4) 과학적인 관점에서 부성애에 관련된 남편의 호르몬을 아빠 모드로 강제 전환시킬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남자는 아이와의 많은 접촉을 통해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난다.

5) 부모님이 오셔서 아이를 충분히 보고 갈 수 있다. 병원 분만이나 산후조리원의 경우, 대부분 정해진 시간 혹은 잠깐만 유리창 밖에서 보고 갈 수 있다.

6) 24시간 상주하는 3교대 간호사가 있다. 24시간 언제라도 아기가 울면 일단, 모자동실로 온다. 물론 콜버튼을 눌러도, 온다. 심리적 안정감이 크고 지속적으로 신생아에 관련된 스킬을 가르쳐 준다.

    

3. 약점

1) 진짜, 하아, 졸라, 하아, 진짜, 힘들다. 

… … 

2) 진짜, 하아, 정말, 후아, 1번을 다시 읽는다. 

… …  

죄송합니다. 2박 3일 정도까진 어떻게 하겠는데 7박 8일은 좀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좀 더 풀어쓰자면,

3) 수유 과정이 무척 힘들다. 산후 조리원에 있으면 잘 수 있는 시간을 '안전'하게 보장해 주지만 모자동실은 그런 거 없다. 왜? 애는 내 옆에 있으니까. 물론 아이가 울면 간호사가 와서 바른 자세, 편한 자세로 모유수유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모유수유의 적절한 방법을 빨리 터득하는 건 강점이나 안 그래도 회음부가 아파 죽겠는데(자연주의 출산을 해도 회음부는 찢어지기에 출산 후에 이 부분을 꿰맵니다. 아내의 경험에 따르면 출산은 한 번 더 해도 이게 너무 아파 두 번 하기 싫을 정도) 2, 30분씩 앉아 젖을 먹인다는 건 큰 고통이다.

4) 해서 엄마의 수면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대략 3시간 이상은 연속으로 잘 수 없다 생각하면 된다(아빠와 간호사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5) 이런 순간에 옆에서 남편이 자고 있으면 때리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헌데 코까지 골면 더 때리고 싶다(라는 것은 아내의 경험에 근거해 적었습니다).

 

생후 4일 된 하루. 이렇게 엄마가 자는 동안 아빠가 재빨리 재울 수도 있다! 에헴.

 

6) 만약 추위를 잘 타는 엄마라면(제 아내의 경우입니다) 안 그래도 막 출산한 임산부라 방을 따뜻하게 했는데 아이는 태열이 올라갈 수 있다. 해서 온도를 내리면 아내는 꽁꽁 싸매고 아이는 벗겨 놓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초봄 출산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4.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상적인 남자가 이상적인 아빠가 될 확률은 있을까. 나로선 알 수 없다. 

마초인 남자와 결혼한 사람이 있고 이 남자와 함께 출산이란 경험을 하게 된다 가정할 때, 모자동실을 적절히 이용한다면(무척 힘들겠습니다만) 야성과 자상함이 적절히 융합된 이상적인 아빠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은 확실히, 느껴진다.

물론 '나만 고생할 수 없지. 너도 한 번 고생해봐라'라는 의미로, 전우애를 다지기 위해서도 모자동실은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추신 :

'주조된 자유'가 엄청 많으면(그러니까 돈이 엄청 많으면) 모자동실도 막 길게 가고 산후조리원도 막 길게 가고 산후관리사도 막 길게 고용하는 선택도 있긴 하겠지요. 헌데 세상에 그렇게 돈이 넉넉한 사람이 있을 리 없지! (만약 있다면 없는 척하시길. 부럽잖아...)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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