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혼하고 얼마 후의 일이다. 뒤늦게 아내와 결혼 사진을 보는데 정중앙에 묘한 얼굴이 보인다.

당시 기념사진을 찍는데 해로운 필진 두 명이 자꾸 드러누워 행사진행을 방해한 탓에 눈치채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저 새는 해로운 새다’ 하면 참새가 없어지지만 제가 ‘저 필진은 해로운 필진이다’ 하면 그런 필진이 늘어납니다)

결혼식 사진집을 뒤늦게 다시 본 어느날, 어라, 이거 봐라, 하면서 퍼즐이 맞춰진다.

2.
정중앙에 묘한 얼굴로 서있던 사람과는 집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꼬마비 작가(개성이 확실하고 깊이 있는 작품을 내는 작가입니다)와 함께 왔는데 둘 다 쓸데없이 키가 크고 신체가 건장해 매복작전이나 침투에는 크게 도움이 안될 유형이었다(저는 크게 도움이 될 유형입니다. 제 입으로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모르는 사람이라 ‘생면부지 남의 집에 룰루랄라 그냥 가서 앉아 있다가 아무 것도 안하고 집에 다시 가는 거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집에서 사라진 물건은 없었다(마 모 필진이 가구나 에어컨 등을 자기 물건처럼 가져가는 걸 뒤늦게 눈치챈 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

잊고 있었다.

3.
어느날, JTBC를 켰는데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떼로 앉혀놓고 혼자 말하고 있다. 입 터는대로, 같은 느낌의 제목이었는데 정확한 방송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손님들은 찬 바닥에 앉아 불편해 보인다. 눈물 흘리는 사람이 나올 정도인데 자기만 따시자고 서서 말한다. 전형적으로 글러먹은 타입이다.

굳이 백종원 선생의 조언을 받지 않아도 손님대접을 보면 인성이 보이기 마련 아닐까.

그리고

...

잊고 있었다(무엇이든 잘 잊는 성격입니다).

4.
언젠가 그가 업무(?)관련차 찾아온다 했다. 모르는 사람집에 스윽 오는 데다 손님 대접도 엉망이라는 판단이 서있던 지라 묘하게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인간인지 해부해주마’ 라는 심정이었다.

잡담이 끝난 후, 으으으으으음.

정신이 분열되지도, 자아가 피폭되지도 않았다. 마치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처럼 정신이 건강해 기분이 파죽, 하고 상해버렸다(정관수술을 받은 사람이 정신이 건강한지는 사실 잘 모르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게 묘해서 실상은 좋은 사람이라도 이미 나쁜 사람으로 몰고간 이상(혼자 마음속으로 정해버린 것이긴 합니다만), 그 믿음에 부응할 조각을 하나라도 건져야 ‘거봐, 거봐, 그럴 줄 알았다!’ 라며 잘근잘근 밟아대며 우월감을 느끼는 게 팍팍한 인생의 소소한 재미인데 나댈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재미 느낀 지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 제길!

... ...

정말, 기분이 파죽, 하고 상해버렸다.

그리고

......

잊고 있었다(무엇이든 잘 잊는 성격입니다. 대범한 타입).

...

결혼식 사진을 세 번째로 다시 보기 전까진.

5.
세 번째로 볼 때, 어라, 이 사람? 이물감이 없다?, 는 느낌이 뒤통수를 쳐 과거의 파편들이 온전한 그림을 이룬다. 그림은 아름답지 않았으나 자연스럽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오는 걸 싫어하는데 싫지 않다. 친하지 않은데 잡담을 오래해도 편하다. 죽마고우가 서 있어야할 결혼식 사진 정중앙에 있는데 어색치 않다.

어라. 어라. 어라라라라라라.

소꿉친구도 아니고 빵동기도 아닌데, 어느 순간, 읏차, 여기 내자리죠?, 라고 말하면 아, 그런가부다, 라고 만드는 능력... 아, 설마...

... ...

... ...

글타. 사륜안이다.

(뭔지 모르는 분들은 진화심리학 공부를 하시길. 기초부터 설명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6.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사륜안을 남용해 누구나 가지는 거리감을 무시하고 스윽, 들어와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인간들은 여간해선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돈도 안주고 빵을 사오라고 하는데다 거스름돈도 받는다.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도와주는 건 그렇다 쳐도 단순한 산수도 못하면 복장이 터지는데 나 정도 되는 인간이니까 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인간을 수도 없이 봐온 나도 오랜 기간 눈치채지 못 했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어디까지나 웹툰 작가의 취재입니다만' 하는 말에 깜빡 속아 우리집 방 귀퉁이에서 하루랑 같이 똥을 싸고 있어도 내가 치울 뻔했으니 소름끼치는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7.
작가라 불리는 사람 대부분이 좀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한, 나로선 생생정보통에 버금가는 자극적인 경험담이다.

 

작가에 대한 편협한 사고방식을 심어줄 수 있어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 ... 

 

작품명은 닥터 프로스트지만 중요한 건 아니고, 어쨌든 자기만의 세계 속에 꿍하고 앉아 음험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간은 조심해야 한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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