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식과 함께 살면(안타깝게도 하루가 아직 독립을 안한 관계로) 개인시간은 극적으로 줄어드나 이색적인 재미가 하나 있다. 나의 책과 하루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는 점이다.

 

2.

<평화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는(굳이 책 이름을 쓴 것에 대해선 눈치껏 행동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 또한 깊이 있는 공부가 되었다. 안목이 뛰어난 다독가에게 ‘쉬이 쓴 게 아니군요.’ 라는 말을 들어 내심 기쁘다(그 전에도 쉬이 쓰진 않았는데. 으음).

 

세계적인 위상에 비해 한국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 정세나 역사를 밟아 나가기에 <범인은 이 안에 없다>보다 덜 팔릴 것 같지만 때가 되면 좋은 선례가 될 거라 생각한다(이번에도 굳이 책 이름을 쓴 것에 대해선 눈치껏 행동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적어도 한국에선 키나 쇼키치 제 1 전문가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소박한 즐거움을 느낀다.

 

3.

무언가를 쓰거나 정리하면 책을 제법 읽기 마련이고 이래저래 뻗어가다 보면 별 관계없는 책까지 손 대버린다. 읽는 재미가 한 없이 커지면 난감하다. 탁월한 책과 저자는 나의 생에 비하면 무한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의 수확 중 가장 큰 것은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와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다.

 

앞의 책은 저자의 첫 책이라는 것에 놀라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들고 뒤의 책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이가 자기 분야에 깊이를 가지면 이 정도구나, 하고 반강제적으로 겸손해진다.

 

여기서 한 번 더 뻗어가보니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지리학에 흥미를 느껴 여러 지도를 모으고 관련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재미가 좋다.

 

<지리의 힘>과 <왜 지금 지리학인가>를 추천한다.

 

4.

하루가 잠든 후엔 이런 나만의 재미가 있다면 퇴근 후와 주말엔 하루와의 재미가 있다.

 

하루는 문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똥멍청이 주제에(실제로 똥을 많이 쌉니다)책을 보는 것만큼은 좋아하는 묘한 녀석이다. 책장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무릎에 턱 앉는데 최근 선물한 <자동차 박물관>에 큰 흥미를 느껴 뿌듯함이 남다르다.

 

나로선 30대 초반까지 BMW와 벤츠의 엠블럼을 헷갈리고 지금도 그랜저와 아반떼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모를 정도로 차에 무지하다. 하루 덕분에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제 컨버터블이 무엇이고 SUV가 무엇인지 안다.

 

큰 이득이다.

 

5.

별개로 유아를 독자로 삼는 책을 접하며 평소에 쉬이 접하지 못하는 감정을 느낀다. <나는 개구리다>를 보며 개구리가 될 녀석이 저 개구리만 아니면 돼, 라는 장면에서 왠지 울컥하다, 최근 <괜찮아, 방법이 있어>를 보고, 오호, 저 친구가 나랑 안 놀면 다른 친구랑 놀면 되는군, 하고, 젠장, 그걸 몰랐으니 내가 이 모양이군, 하고 반성한다.

 

유아용 책에서도 과연, 배울 점이 그득하다.

 

6.

어린 자식을 오직 한 쌍의 부부가 케어한다는 건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는 일이나 접하지 못했을 지식과 감성을 획득하는 건 이점이 크지 않나 한다.

 

학창 시절, 할아버지는 이따금 나의 책장에서 책을 고르고 나는 할아버지의 책장에서 책을 골랐다. 훗날 하루와 그런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 ... 

 

오늘도, 이래도 저래도 좋을 잡담이었습니다.

 

추신 :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와 <공익제보 하지마세요>가 책장에 없는 사람들은 가다가 괜히 한 번 넘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잡담이기도 합니다.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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