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40년 뒤의 불특정 날짜 요일을 맞추는 아이가 등장하는 방송을 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걸 왜 TV에서 하지?’ 가 시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3살 때의 일이다.

 

나의 경우, 2, 300년 앞 뒤는 생각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바로 튀어나오는데 오래 나를 안 필진들은 요일 맞추기나 만 단위 이상의 곱셈을 이따금 물어보며 신기해 한다. 때때로 불쾌한 경우도 있지만 이젠 아무렇지 않다.

 

1년 전까진.

 

2.

요즘은 친구나 아내가 물어보면 오차가 발생한다.

 

사람마다 이를 계산하는 법이 다르겠으나 나의 경우 지구 궤도의 이심률이나 자전축의 기울기 등(흔히 밀란코비치 주기라 부릅니다)을 기준삼아 바로 요일이 떠오르는 편이다(물론 어릴 때는 이렇게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이후에 우연히 책에서 본 계산이 더 재밌어서 이런 방식을 사용합니다. 어쨌든 걸리는 시간은 같으니).

 

오차가 있다는 건, 400년간에 97년이 발생하는 윤년에서 실수가 있다는 증거고 아마도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게다가 육아는 인간의 노화 속도를 가속시킵니다!).

 

해서 그런지 요즘은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도 때때로 벅차다.

 

...

 

... ...

 

는 물론 거짓말이다... 라고 언제나처럼 말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실제 나는 13살 때부터 2, 300년 전후의 요일과 천 단위 이상의 곱셈을 하니까. 요즘 때때로 오차가 발생하는 것도 맞으니까.

 

물론, 애초에 처음 대답이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으니 두 번째 대답도 오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안타깝긴 하다.

 

3.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는 것만큼은 사실인데 이 중 두 권은 이미 읽었던 책을 혼자만의 취미로 발췌하는 것이다.

 

왜 세 권이냐면 한 권은 실제 처음 읽는 책이고 한 권은 회사에서 짬이날 때, 한 권은 집에서 짬이날 때 홀로 정리한다(독수리 타법이라 느립니다. 젠장!).

 

최근 읽은 책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므로 그중 지금의 대륙이 형성되던 시기 중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대한 얘기를 발췌하고 있는데 갑자기

 

‘헌데 시간을 갑자기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생길지도 모를 일인데(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지구의 자전까지 멈추어버리면 어떻게 되지?’

 

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고 더 놀랍게도 대답까지 한 사람이 있다!(역시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문제는 역시나 나는 답만 낸다는 거... 틀린 답... 시무룩...)

 

아. 더더욱 놀러운 것은 그 질문을 한 사람과 답을 한 사람은 같은 사람이고 책까지 냈다는 거다.

 

4.

나사에서 로봇공학자로 일했고 현재는 코믹웹툰의 작가로 활동하는 랜들먼로가 블로그에 그 질문과 답을 똬아아아악, 하고 적어 놓았다.

 

이런 건 누가 웹에서 번역한 걸 보는 게 예의가 아니겠지?, 책으로도 엮어서 나왔다니 책을 사면 인의예지신을 다하는 거겠지?, 이야, 이거 이거 모처럼 또 재밌는 사람을 알게 됐구만... 하고 알라딘에서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 버튼을 누른다.

 

으음.

 

으으으음?

 

5.

한 권은 2016년에 샀고 한 권은 2017년에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라딘은 이미 산 책을 또 구매하려하면 ‘이 멍청한 녀석아! 도대체 기억력이란 게 있기는 한 거냐!’ 정도로 알려주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매번 돈 낭비를 막아준 알라딘에 감사함과 동시에 3년 전 샀던 책 한 권과 2년 전 샀던 책 1권을 찾느라 방금 30분을 소비해버렸다.

 

으음.

 

아마, 나는 3년 뒤에 또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까.

 

‘이야, 이거 이거 모처럼 또 재밌는 저자를 알게 됐구만! 오호, 번역된 책도 있군! 좋아, 알라딘이다! ... 응? 6년 전에 산 책이라고?’

 

그로부터 3년 뒤.

 

‘이야, 이거 이거 모처럼 또 재밌는 저자를 알게 됐구만! 오호, 번역된 책도 있군! 좋아, 알라딘이다! ... 응? 9년 전에 산 책이라고?’

 

으음.

 

과연, 머리가 나쁘면 돈이 많아야 한다.

 

사람들이 돈을 열심히 버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뭐, 오늘도 이래도 저래도 좋을 잡담이었습니다.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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