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책을 무척 더럽게 보는 습관이 있는데 당시 <한국사 이야기>를 그리 보고 있었다.

 

‘권력자나 지배집단만으로는 역사를 온전히 알 수 없다. 역사는 영웅이나 지배집단만의 것이 아니다. 민중의 삶 자체다’

 

정도의 구절에 끌림을 느껴 책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웅이 아닌 민초. 그런 관점이 크게 다가왔다.

 

2.

할아버지와 나는 이따금 서로의 책장에 재미있는 책이 있나, 살펴보곤 했는데(물론 수준 차이가 현격해 내가 할아버지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형광펜으로 찍찍 그어져 더러워진 <한국사 이야기>가 눈에 띄었나 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는 그 책을 이이화 선생에게 가져가

 

‘내 손자가 선생 책을 이렇게 줄 그어가며 읽고 있소’

 

하며 뿌듯해 했다 한다. 이후, 저자 싸인본의 <한국사 이야기>가 생겼다.

 

이이화 선생과 할아버지, 그러니까 역사학자와 전국유족협의회 대표가 꽤나 막역한 사이란 걸 알았다. 선생이 학력, 파벌, 인맥을 능가하는, 오롯이 실력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 선 전설적인 역사학자일 뿐만 아니라, 국가범죄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발로 뛰는, 행동하는 역사학자란 것도 그때 알았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의 모습은 보도연맹 유족모임의 어느 식사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선 여러가지 농담을 주고 받는 일도, 평소엔 들을 수 없는 센 이야기도 많은 법이다.

 

이런 모임은 자신의 부모나 가족, 자식을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잃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있기에 다툼도 많으나 함께 한 시간이 긴만큼 끈끈함도 남다르다.

 

모두 연배가 상당한 어르신이다. 어떤 모임에서든 가장 어린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다. 다들 얼큰해지고 어르신들끼리 짓궃은 농담이 오고 갈 때 즈음, 이이화 선생이 앞에 있는 나를 눈치채곤 한마디 한다.

 

‘어허. 이런 농담은 젊은 사람이 보기에는 안 좋은데. 나이 든 사람들이 주책이지,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하네’

 

이이화 선생은 달변가이기도 하다. 술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 와중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어리고 어린 새파란 대학생에게 굳이 사과하는 모습은 지금도 인상 깊다.

 

나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4.

이이화 선생은 독보적인 역사학자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자 힘쓴 역사학자로 더 기억된다.

 

독립운동가였음에도 억울하게 살해당한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후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진 비참한 내 집안의 가족사를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언론과 본인의 책에 꾸준히 기록을 남겨주었다. 그것은 피해자에겐 큰 힘이 된다. 특히 아버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아버지는 국가를 상대로 선대의 억울함과 무죄를 증명해야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쓰러져 정신을 잃고 긴 세월 보낼 때는 과거사법이 통과됐다고, 할아버지가 다시 정신을 찾을 수 있도록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힘을 주려 애쓰고, 전국유족장으로 치뤄진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선 채의진 선생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아주었다.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아들인 아버지의 여러 사회적인 활동에 조언과 챙김을 마다 않고 손자인 나의 결혼식에는 주례를 맡아 주었다.

 

3대가 신세를 진 셈이다.

 

5.

오롯이 실력 하나만으로 역사학계에 커다란 획을 그은 전설적인 역사학자이기도 하지만 억울한 이들을 위해 평생 행동으로 힘쓴 역사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나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피부로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이 선생의 가장 훌륭한 점이라 생각한다.

 

본인이 책에 쓴 것처럼, 삶도 그랬다.

 

 

추신: 사진은 선생의 자택에 놀러갔을 때 찍은 서재 사진이다. 내가 제대로 이해할 것 같은 책이 하나도 없는 것이 인상깊어 찍었더랬다.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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