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이 오픈월드형 게임(자유도가 높고 플레이의 제약이 거의 없는 게임)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사람 역시 게임 캐릭터와 비슷한 면이 있다. 누구나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한 나의 능력은 다음과 같다.

 

2.

첫째, 신흥종교에 섭외되는 능력(밖에도 잘 안 나가는데 10년 내내 잡힘. 외국에서도 잡힘. 나의 영성,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둘째, 중고사기를 부르는 능력(웬만해선 중고거래를 안 하는데 희안하게 잘 걸림. 다행히 포획 레벨이 높아 상대도 법의 심판을 잘 받음. 합의는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보이스피싱을 부르는 능력(호구 유망주로 보이는 탓인지 전화가 자주 옴. 20번 이상 받았지만 무패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능력에 관한 이야기.

 

3.

사람마다 보이스피싱 대처법이 다르지만 나로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승부의 감각을 즐기는 편이다.

 

2시간 10분까지 통화를 해보았는데 일과 육아가 동시에 진행되는 생활이 시작되며, 한가함이 불가능이 되었으므로 승부를 보는 방식도, 감각도 달라졌다.

 

요즘은 100미터 단거리 승부랄까, 게임 체인저 형식으로 일기토 감각을 즐긴다.

 

요령은 아래와 같다.

 

4.

사례1>

 

“동부지검 xxx입니다. 최근 명의도용을 당했는데 김묘준이란 분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례2>

 

“안심하시고 저희가 지금 조사하고 있는데...”

 

“수사관님. 제가 1년 전에 친구가 급한 일이 있어 통장을 딱 한 번만 쓴다고 빌려줬는데 저는 그런 일에 쓰일 줄 몰랐습니다. 지금 수사관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당당하게 자수하겠습니다.”

 

“...?!?”

 

사례3>

“조사에 성실히 응해주셔야 하며...”

 

“제가 사기 전과가 많아서 이러시는 모양인데... 하아...”

 

“....?!?”

 

“제가 만나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전과자라고 매번 이런 취급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5.

간단히 말해 누구를 아냐 물으면 안다 하고 명의도용한 적 있냐 물으면 한 적 있다 하고 범죄를 저질렀냐 그러면 저질렀다 한다. 모든 것을 다정하고 친절하게 자백하면 된다.

 

이러면 보통 전화를 빨리 끊거나(갑자기 끊는다), 잠시 버벅거리다 어느 정도 지나면 어떻게든 빨리 끊으려 상대방이 노력한다.

 

최근 6개월 사이, 4건을 이렇게 진행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다.

 

6.

어쩌면 나는 보이스 피싱계에 넘어야 할 큰 산으로 메이저 업계의 내로라하는 랭커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방어전을 치르고 있는 게 아닐까.

 

22전 22승 0무 0패 5 K.O

 

오늘도 무패행진은 계속됩니다.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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