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화 일직선, 키나쇼키치를 만나다”는 도입부가 기대한 내용과 달라 충격이라는 의견을 종종 듣는다. 나로선 참혹한 이야기를 빨리 끝내려 도입부를 22번 고쳐썼는데, 더 이상 줄일 수 없어 거기서 그만두었다.

 

애초에 지옥을 보지 않은 사람이 그토록 평화를 갈구할리 없다.

 

 

2.

보도연맹사건 유족이라는 집안의 역사 때문에 키나 쇼키치와 통한 부분이 있다. 전쟁으로 겪는 참혹함, 위정자의 잔인함은 조부가 어릴 적 해준 이야기와 맞닿아, 국적과 나이를 떠나 마음을 이어지게 한다.

 

아래는 언젠가 메모해 둔 내용이다.

 

3.

“얀바루 산속, 즉석에서 만든 허름한 피난 오두막에서 울고 있는 한 살배기 아이를 죽이라는 말을 들은 어머니가 하다못해 마지막으로 맛있는 과일을 먹이겠다고 소귀나무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따려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빈손으로 내려왔다. 왜 죽이지 않았으냐는 주위 사람들의 힐문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이런 데서 밥도 안 먹이고 죽일 수는 없지. 그래서 데리고 돌아왔어." 어머니가 열매를 따러 올라간 소귀나무에는 반시뱀이 있었다.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뱀을 본 어머니는 아이를 죽이지 않고 데리고 돌아왔다. 왜일까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반시뱀을 보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걸까? 거기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머니는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4.

이 증언은 기시 마사히코의 <2015년도 류코쿠대학 사회조사 실습 보고서>에 실려있다. 당시, 부모의 손에 의해 죽을 뻔했던 갓난아이의 남동생(1931년생)이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5.

오키나와 전쟁이 한창일 때, 주민들은 가마라 불리는 동굴로 피난했다. 이때, 어린아이나 갓난아기가 울면 적에게 들킨다. 일본군 병사가 명령하면 부모는 자식을 제 손으로 죽여야했다. 내 자식만한 나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오키나와 사람보다 아래 계급에 위치해 있었던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들이 어떤 삶을 살며 전쟁을 버텼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6.

어릴 때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일이라 재미있기만 했던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나이 들고 자식 생기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제 시대, 한국 전쟁 이후의 풍경, 징병 탈출,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의 도시 풍경, 자식이 배고파 울 때 깨진 신념 등은 지금 생각하면, 직접 체험한 사람에게 듣는다는 것 자체가 고급정보다.

 

당시에 면밀히 매모해 놓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동시에 나의 이 얕은 경험으로 다음 세대인 자식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되는 요즘이다.

 

추신: 눈치없는 사람이 있을까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이 글은 강매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 점을 알지 못한다면 가히 문맹이라 놀림받아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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