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는 민주당의 대표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그리고 조부가 다진 장기 집권체제를  54년만에 엎어 버린 하토야마 유키오가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는 1776년 독립선언 이후, 미합중국 역사상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들과 노무현이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궁합이 잘 맞았을까.



모든 나라의 수장들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근래에 아닌 경우를 좀 많이 봅니다만)하여 정치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나라의 정당에는 이념이라는 것이 있고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도 다르며 수장 개인의 성향이 큰틀을 좌우할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확실히 부시가 대통령이었던 미국과  아소나 고이즈미가 총리였던 일본보다는 지금의 국제 정세가 노무현과는 더 잘 어울릴 듯합니다. 









일단 가장 큰 공통점은 복지에 관한 관심입니다. 오바마는 대선 때부터 갖은 수모를 겪어가며 의료개혁(참고 : 오바마도 노무현처럼...?)에 열중하고 있고 하토야마는 우리가 황당하다고 생각했던 허경영의 공약을 뛰어넘는 복지 정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참고 : 일본, 한 아이당 무조건 7천만원 - 허경영의 공약이 현실이 되는 일본



이러한 정책들이 성공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정치인과 당의 생명을 담보로 정책을 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건드려 봤자 자신을 지지하는 층들에게까지 오해가 불거져 나오기 쉽상인, 사회 기득권층의 집중공격이 너무나 빤히 예상되는, 세월이 지나지 않으면 표시가 나지 않는, 바로 정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에 올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민들이나 언론은 항상 백년대계를 생각지 않고 인기성 공약만 뿌려대는 정치인들을 한심하게 보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변명할 거리는 있습니다. 백년대계를 세워봤자 국민이 인정해 주지 않는 데다가, 부작용이 심각하게 우려되지만 금방 눈에 보이는 결과만이 표로 연결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은 그나라 유권자의 수준과 같다는 말이 있는 것일 겁니다.



노무현이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복지에만 매진한 대통령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좌파 대통령이라고도 말할 수 없지요. 그의 국방정책이나 경제 정책을 보면 상식적인 우파이자 보수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우파가 존재할 자리를 과거 친일, 친미파(라고 하면 말이 너무 부드럽군요. 민족 반역자 정도가 좋을까요?)들이 메꾸고 있는 희한한 한국 정치의 풍토상에서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좌파라고 불리었지만, 뭐, 어쨌든 그렇습니다. 



  





노무현 개인이 가진 성향과 국제적인 정책의 틀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지금의 국제 정세에서 그가 더 큰 힘을 발휘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때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을 거라는 게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만약 부시가 미사일 방어전략에 한국을 참여 시키려고 안달이 났을 때, 미국에 '예스'밖에 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 한국에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장 큰 무역대상인 중국과의 외교에서 큰 마찰이 있었을 겁니다. 미국 대통령과는 웃으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국가에 미친 경제적 손해는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미국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진 모르지만 부시도 노무현의 논리에 납득을 했고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었지요. 



또한 부시가 북한을 궁지로 몰아가는 정책을 폈을 때, 미국에 '예스'밖에 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 한국에 앉아 있었다면 북한과 한국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갔을 겁니다. 물론 전쟁은 나지 않았겠지만 대통령 개인과 국내 특정 정당의 인기를 올려 주는 대신 남북관계의 냉전에 따른 사회 전반의 위축효과와 국제적인 투자감소에 따른 손해는 모두 국민이 물어야 했겠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그대로 말입니다.



일본의 고이즈미나 아소내각 시절, 그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자극하는 망언을 했을 때, 한국이 단지 그들과 친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렵게 세운 과거사위원회등을 지금처럼 폐지하고 접으려 한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친일파들은 완전하게 면죄부를 획득하게 됐을 것이고 보도연맹만해도 100만에 달한다는 유족들은 평생의 한을 품고 저세상으로 갔을 것입니다.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본인이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자자손손 손가락질 당해야 했겠지요. 그 뿐일까요? 당시의 분위기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대통령이 있었다면 지금의 뉴라이트 교과서보다 훨씬 심한 역사책을 우리 눈으로 봐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의 국제 정세를 놓고 볼때, 노무현이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시대 중 꼭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역시 2008년보다는 2003년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불리한 국제적 정세에, 미국의 힘과 일본의 자본에 밀리지 않고 파워게임을 벌일 수 있는 대통령은 당분간 한국에서 보기 힘들 겁니다. 그것도 '논리'라는 무기로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의 업적 이상으로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은 그가 외교에서 보여준, 언론이 보여주지 않았던 무수한 선방들이 아니었을까요?  



그때도 노무현이 정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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