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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를 따라가서 문제를 풀면 삼겹살 1인분의 영광이 그대와 함께한다. +_+b 딴지 정신에 입각하여 무단전재 및 재배포 당빠 환영이다!



[정치] 제 11회 딴지 시사능력 검정시험 - 3.1절 특별판


2010.03.02.화요일

죽지않는돌고래

 

 


1.

 

우선 제 10회 딴지 시사능력 검정시험을 치르느라 다들 수고가 많았다. 성실히 문제에 응시한 딴지스가 대부분이었으나 꼭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불만이 많듯 스크롤의 압박이 크다는 지적도 있었다문제 만드는 것도 빡신데 불만 있음 니가 위원장 하던가...... 가 아니라 여기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2대 출제위원장인 본인, 독수리 타법이다. 그에 비해 1대 출제위원장인 신짱은 너덜너덜한 마우스만 이용해서 청와대 전산망을 해킹할 정도다. 사실 국민상녀(國民爽女-국민을 대표하는 성품 밝은 여자)기사도 그렇게 자료를 빼낸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 해보자. 보도국장이라고는 하지만 일개 언론인인 그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세 쌍아니, 상녀(爽女)의 데이터 베이스를 그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딴지스들이 이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자체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증거다. 참고로 현재 국민시발남(國民施撥男-국민을 대표하는 '베풀며 다스릴 줄 아는 진짜 남자')의 자료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과거의 시험처럼 장르마다 화면이 넘어가거나 몇 퍼센트가 이 답을 선택했는지 탁탁 튀어나오게 만드는 그런 거, 본인은 못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런 기대는 접으시고 그냥 문제 함보고 옆에 연필 들고 필기해 뒀다가 답 맞춰 보시라.

 

아마존의 눈물 보니까 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의 비결이더라. 우린 너무 편한 거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야…… 신짱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거야…… 이거 다 엎어야 돼……

 


 

 

2.

 

문제 나가기 전에 지난 시험 결과를 공개한다. 뽀나스를 포함한 총 13문제를 모두 맞춘 사람은 없으며 12문제를 맞춘 2명이 1등이다. 영예의 수상자는 물뚝심송님과 조삭. 2등은 돌콩님과 CheapDick님으로 총 11문제를 맞추었다. 3등부터는 바빠서 2문제 이상 틀렸다 싶으면 채점 안 했다. 내가 연아 봐야 되서리. 이것도 다 연아 보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흠흠.

 

영예로운 10회 수석 합격자와의 짤막한 서면인터뷰 감상하시고 문제 들어가겠다. 왜 똑같은 1등인데 물뚝심송님만 인터뷰하는지는 지난 기사의 조삭님 댓글을 참고하시라. 앞으로 딴지스들과의 보다 원활한 쌍방향 소통 및 참여하는 인류공동체 (주)딴지그룹을 목표로 하는 바, 매회 깔짝 인터뷰 나갈 예정이니 이것도 알아두시고.

 

1등과 2등은 언제든지 너부리 편집장에게 삼겹살을 사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단 전화번호는 알아서 따는 조건이고 쪽지 이용 무효다. 

 


 

이번 주는 3.1절을 맞이하여 준비한 독립운동 및 한일관계 특집이니 이 기회를 삼아서 공부 함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싫음 뉴라이트 하던가. 이상!
  

 

3.

 

<제 10회 딴지 시사능력 검정시럼 수석합격자와의 인터뷰> 

 

: 내공이 심상치 않다. 뭐하는 사람인가? 얼굴에 자신 있음 사진을 달라. 기사에도 올리겠다.

: 사진은 됐고~ 68년산 남자임. 노사모나 서프 사람들은 물뚝심송 아이디를 기억할 텐데.. 특히 서프에서는 물뚝심송이라면 치를 떨듯. ‘황우석의 난시절에 악질 황까로 유명했을 거임. 황우석 문제만 아니었다면 서프 편집장 할 뻔도 했던 기억이 남.

 

서프는 뭐 그 전부터 좀 헬렐레 했지만, 황우석 이후로 완전히 망가진 걸로 간주하고 있음. 딴지총수도 황우석에 대해서 헛발질 했던 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 물리학 전공했고, IT쪽 일을 많이 했지만 완전히 학을 떼고 그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생각임. 그냥 재미있는 글 읽기를 좋아하는데, 요즘 진짜 읽을거리가 없어서 환장하는 중.

: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과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 한명씩만 말해달라. 이유도 함께. 꼭 현직에 있는 사람 아니라도 상관 없다.

: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 좋아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그나마 제일 강렬했던 사람은 다들 노무현 아님? 노사모에다가는 파병과 FTA, 특히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을 이유로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공언을 해두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노무현 아자씨하고 마눌님, 아이까지 다 같이 찍은 사진도 있삼. 부엉이 바위 앞에서..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은.. 싫어한다기 보다는 무슨 징그러운 벌레 보듯이 혐오하는 전여옥이라는 여자가 있는데 그 사람은 정치인도 아닌 거 같고.. 우리동네 지역구의원인 안상수가 동네에서 어떤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지 다 아는데 머리에 기름 바르고 무게 잡는 꼴이 제일 보기 싫음.

: 딴지일보는 향후 10년 안에 언론사 통폐합의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냥 우리가 독점하는 거지.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

: 로또를 한 삼십 번 연속으로 맞춰야 될 듯
.

딴지를 대상으로 두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전부터 이런 게 있으면 어떨까 싶었던 것은 인터넷 곳곳에 짱 박혀 있는 쓸만한 글쟁이들을 발굴해서, 그들이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용돈이라도 좀 주고 그 글들을 모아 내면, 뭔가 좀 볼만한 게 탄생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있삼. 머 비슷한 걸로 오마이도 있긴 하지만, 필자들에게 독자가 내키면 돈좀 쏴주는 제도 같은 거 재미있을 듯. 아니면 미국 무브온 같은 사이트랑 딴지의 색깔이 결합되면 뭐 좀 나올 것 같기도 한데
..

: 인생이란 무엇인가
?

: 쓰바..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지 뭐.. 나이 사십이 넘어가니까 이젠 그런 얘기 들으면 하품부터 나옴.


 

            합성아니다. 파리 퐁피듀센터 가면 실제 작품 감상할 수 있다.

                                      1927년 Jules Pascin 作


: 물뚝심송이라는 아이디의 뜻은 뭔가.


: 전에는 그 그림파일도 가지고 있었는데.. 신영우 작가가 쓴 "키드갱"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캐릭터가 참 맘에 들었고, 그 주인공이 악당과 싸우는 장면에서 "난 중국의 고대비술을 알고 있지" 하면서 무술 동작을 하면서 입으로 "용형호제~ 사학비권~" 뭐 이런걸 외치니까, 악당이 그건 영화제목이 아니냐고 쫑코를 주자, 주인공이 "물뚝심송~ 꿀먹모도~" 라고 다시 외치고, 악당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네 음절이구나~ 뭐 이런 재미있는 장면이 있삼.

거기서 따온 것으로, 아무 의미 없는 네 음절 되겠삼. 사실, 그럴싸한 아이디로 폼 좀 잡고 싶은데, 허세가 뽀록나기는 싫고, 남들이 알아 듣는 것도 싫어서 이런 걸로 아이디를 정하고, 궁금한 사람들이 물어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네 음절입니다" 한마디 해주면, 태반은 ".. 그거 멋진걸.. " 이런 반응을 보이기 마련
.

결국, 아이디로 허세 부리는 짓거리를 우습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한 차원 높은 허세를 부리는 허세 아이디
.

 

 

인터뷰 감사하다. 11회도 화이팅하기 바란다. 너부리 편집장한테 꼭 전화하고.

 

 

4.

 

<문제>

 

 

1번에서 10번까지는 OX문제다.

 

 


1. 김구와 안중근은 사돈 관계다. (  )

 

 

 

2. 3.1운동은 당시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에 의한 범민족적인 증오와 울분이 크게 작용했다. 한일 양국의 학계에서도 고종이 독살된 것이 진실에 가깝다는 주장이 많다. (  )

 

 

3.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 지원등의 친일전력 때문에 여론을 생각하여 건국훈장을 거부했다. 대신 자신의 부하들에게 훈장을 남발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

 

 

4. 유관순의 아버지는 일본군 헌병의 총탄에 맞아 빈사 상태에 빠져 집으로 옮겼으나 3일 후에 사망하였다. 유관순의 어머니 또한 일본군 헌병에 의해 참살되었다. (  )

 


 

5. 재일 한국인으로 처음 도쿄 대학 교수가 된 강상중은 대학 시절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까지 쓰고 있던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이름을 쓰게 되었다. (  )

 


 

6.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에 대해 이승만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

 

 

7.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알려진 아쿠타가와상, 한국인도 받은 적이 있다. (  )

 

 

8.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인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은 사람은 소다 가이치다.

소다 부부는 1921~45년 사이 1000여 명의 한국인 고아를 자식처럼 돌보았다. 일제 패망 직후 귀국한 소다는 조국 일본의 회개를 외치고 다녔다. (  )

 


 

9. 백범 김구는 대단한 경마 애호가였다. 조선마사회(현 KRA 한국마사회)에서는 김구의 이름을 따서 ‘김구상’이 걸린 특별경주를 예정에 없이 편성하기도 했다. (  )

 

 

10. 일제 당시 호적등록을 거부한 독립운동가들은 아직도 상당수 무국적인 채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이 탄생하면서 일제가 만든 호적을 그대로 받아 대한민국 국적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정부의 불성실한 대책으로 아직도 많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선조의 국적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  )

 

 

11.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9분 19초라는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는 마의 벽이라고 불린 2시간 30분대를 깬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당시 동아일보는 메달 시상식 사진을 게재하며 그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웠다. 독립의 기운이나 반일감정이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한 조선 총독부는 이에 분노하여 동아일보에 무기 정간을 명하고 민족의 영웅이 된 손기정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결국 서울에서 예정되어 있던 축하회는 중지되고 손기정 선수는 외출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급기야 1940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강제로 고국을 떠나 메이지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일본은 손기정으로 하여금 어떤 조건을 강요했는데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1)일장기가 그려진 체육복을 입어야 한다.

2)평생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

3)일본인과 결혼해야 한다.

4)평생 마라톤을 해선 안된다.

5)일본을 위해서만 뛰어야 한다.

 

 

12. 언론의 자유가 통제된 일제시대에 자신의 신념을 지켜 재일 한국인의 인권을 옹호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3.1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 후, 재판에 처해진 9명의 조선인 학생 변호를 무료로 맡았다. 그리고 "조선인 학생의 독립운동은 정당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관동 대지진 때는 일본인에게 쫓겨 도망치는 조선인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그 후에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항의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이러한 행동으로 당국으로 부터 감시를 받아야 했고 결국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는 것도 모자라 투옥까지 되었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2004년 12월,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아래 사진 중 그는 누구일까?

 

1)

 

 

 

2)

 


3)

 

 

4)

 

5)


 

 

13. 다음은 누구에 대한 설명일까? <주관식>

 


 

1>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방사선을 쏘이게 되는 것)되었다. 피폭자에게 발부되는 원폭 수첩을 가지고 있으면서 프로 야구 선수가 된 사람은 그 외에 단 한명 뿐이다.

 

2>4살 되던 해에 오른 손에 큰 화상을 입었고 상처가 매우 심해서 세개의 손가락이 문드러질 정도였다. 그래서 야구를 시작할 때 원래는 오른손잡이지만 왼손타자로서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3>전설적인 야구 기록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차별이 심했던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한국인임을 숨기지 않았다. 한복을 입은 어머니를 여러 차례 시합에 초대하는 등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고 민족 멸시에 맞섰다.  

 

 

 

14. 다음은 과거 시사IN의 기사 중 일부다. 괄호 안에 들어갈 내용으로 알맞게 짝지어진 것은?

 

 

2008년 8월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는 223명, 유족은 6283명이다. 이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무려 60%를 넘고, 고정 수입이 있는 봉급생활자는 ㄱ(   )%를 조금 웃돈다. 유족 가운데는 직업이 일정치 않아 수시로 바뀌고, 그나마 봉급생활자 중에도 특히 경비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1919년 서울 4대문 사건의 주동자로 옥고를 치렀던 이원근 열사의 손자 이승봉씨는 경비 일을 한다. 조선 총독 암살 계획을 세워 옥고를 치른 방한민 열사의 손자 방병건씨도 최근까지 경비원으로 일했다.


유족 가운데 중병을 앓는 사람이 두 집에 한 집꼴이었고, 중졸 이하 학력이 55%를 넘었다. 가난은 의료와 교육의 공백을 낳고, 다시 가난으로 대물림됐다. ㄴ‘(                     )’는 공식은 철저히 들어맞았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후손은 선대의 부와 명예를 고스란히 이어받았고, 독립유공자 자손은 선대의 가난과 피해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사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1)50%, 독립운동은 사치다.

2)40%, 친일을 한자가 살아남는다. 

3)30%, 친일을 반공으로 위장해야 한다.

4)20%,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하면 거지된다.  

5)10%,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15. 아래 보기에서 설명하는 사람은? <주관식>

 

1>일제의 밀정에 의해 맏아들이 독살당했다.

2>부인은 광복된 고국을 밟지 못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죽었다.

3>사촌동생 경근은 4.19혁명 후 민주 정치를 위해 나섰다가 516군사정권에 의해 7년간 투옥되었다.

4>조카 민생은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하다 516군사정권에 의해 10년간 투옥되었다.

5>조카 진생은 전두환 정권 때 강제 해직당한 충격을 받고 쓰러져 8년간 투병하다 숨졌다.

6>그의 일가 중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무려 40명이 넘지만 고국의 푸대접 속에서 유족들은 해외로 뿔뿔이 흩어졌다.

 

 

 

 

딴지시사능력검정위원회위원장 죽지않는돌고래 (tokyo1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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