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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출동] 서울의 봄


 

2010.06.03 목요일

죽지않는 돌고래

 

 


오후 5시18분, 서초 4동 제 5투표소. 투표를 마치고 나왔다. 길게 늘어선 줄이 기분 좋았다. 계단까지 줄지어선 사람의 반이 20대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많게는 20%이상까지 벌어졌던 지금까지의 여론조사로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의 성전(?)'이라는 서초에서 한표를 보태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가망이 없는 곳이라고 불려졌던 서울인지라 포기가 빨랐는지도 모르겠다

 

투표도 했겠다 심심하던 차에 파토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정보가 들어왔다. 서울 초박빙. 역전 가능하다."

 

 

어디서 어떻게 입수한 정보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파토형이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서울이 박빙, 아니 초박빙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파토형이 딴 곳과 착각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형, 방금 전에 말한 거 서울 맞아요? 한명숙, 오세훈?"

 

"어. 진짜라니까. 역전 가능해."

  

확인 전화 후 시계를 보자 남은 시간은 4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알고 봤더니 이미 한참 전부터 파토형 트위터에는 '초긴급'이라는 꼭지를 달고 수천개의 리트윗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선거법 때문에 대놓고 말할 순 없었지만 그 자세한 면면을 살펴보면 정말 역전의 확신을 가진 트위터 대작전인 셈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제일 아래 등록되어 있는 'ㅎ'자 부터 미친듯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일단 서울에 사는 부산 친구들이 주요 포인트. 아래와 같은 식이다. (돌고래는 부산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사투리에 말투가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는 점을 감안해 주시길.)

  

돌 : '내다. 투표했나.'

 

친 : '서울은 텄다 아이가. 시간도 음꼬 투표 안할끼다. 짐 투표 할라믄 쳐달리야 된다'

 

돌 : '마. 포기하지 마라. 막판 치대믄 된다'

 

친 : '믄 개소리고. 여론조사 안봤나. 토론도 개 털리따 아이가'

 

돌 : '우리 형한테 들었는데 정보 샜따아이가. 공개적으로 말 몬하는데 짐 박빙이다. 막판 치대믄 엎을 수 이따.'

 

친 : '어디서 약을 파노. 니 약국하나. ㅋㅋㅋㅋ'

 

돌 : '이 새끼가 조낸 되도 안한 유머치고 있노.ㅋㅋㅋㅋㅋ 일단  약 쳐무꼬 말해라. 부작용 책임진다.'

 

친 : '아, 지금부터 갈라믄 존나 달리야 되는데;;;'

 

돌 : '쳐달리라. 잘하믄 어게인 2002다.'

 

친 : '아, 존나 구찮쿠로. 짐부터 동생데꼬 뛴다. 출구조사 나왔는데 개구라믄 옥수수 다 털리따 생각해라. 알았나.'

 

돌 : '씨부릴 시간에 닥치고 띠라. 새끼야.' 

   

 

그렇게 한참 전화를 걸다가 집에 도착했다. 출구조사는 거짓말같이 정말로 '초박빙'이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대혼전.

  

게다가 출구조사 대부분이 기존 여론조사와는 판이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세종시 여론조사 조작'건을 추적하면서 여론조사의 허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 허(虛)가 너무 컸다.

  

개인적인 바람은 수도권의 시장과 지사, 교육감을 모두 진보 쪽에서 선점하면서 이땅의 마지막 희망인 '교육'만큼은 진보벨트로 지켜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얼마나 용감한 것인지는 익히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수도권에서 100% 당선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경기도 교육감 후보 '김상곤' 한명 뿐이었기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혼자서 그 길을 헤쳐나가면 피투성이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파토형과 함께 놀러갔던 곽노현 캠프. 지지자인 권해효씨가 인터뷰 중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개표방송은 나에게 꿈을 꾸게 했다. 곽노현 후보도 느낌이 좋았고 한명숙 후보도 조금씩 오세훈 후보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표차를 줄여나가기를 3시간 째. 마침내 밤 9시를 넘어 그녀는, 아니 우리는 드라마를 썼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역전극이 일어난 것이다.

  

밤 10시, 11시. 표차는 점점 벌어졌고 느낌이 왔다.

  

'이.긴.다.'

  

트위터와 방송을 번갈아 보고 있던 나는 들뜨기 시작했다. 서울광장에 한명숙 후보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취재를 갈까 말까 망설였다. 트위터에서 쏟아지는 의견들.

  

'가셔야죠! 가시면 제가 천안 호두과자 보내드릴께요!'

 

'언능 가봐라. 맘껏 만끽해!'

 

'가는 게 안가는 거보다 편할 걸?'

 

'죄송하지만 나가 주세요. 못 나가는 제가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딴지가 안가면 누가 갑니까'

 

'가시면 저도 갑니다'

 

 

파토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 : 형, 지금 뭐해요? 혹시 또 달리는 중?

 

파 : 아니, 오늘은 그냥 집에서 조용히 보고 있어. 집에서 개표보면서 라면 먹는 중.

 

돌 : 트위터 반응 보니까 취재가야 겠는데요. 한명숙 후보 서울광장에 온대요.

 

파 : 그래? 확인 함 해바바.


   

곧바로 한명숙 캠프에 전화를 걸었다.

 

 

 

캠 : 한명숙 후보 선거사무소입니다.

 

돌 : 딴지일보 정치부 돌고램다. 한명숙 후보가 12시에 서울광장 온다고 했는데 맞슴까?

 

캠 :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쏙닥 쏙닥)

 

캠 : 캠프에 들렀다가 가실텐데요. 개표가 조금 늦어져서 아마 늦게 도착하실 듯 합니다.

 

돌 : 그럼 12시 넘어서...

 

캠 : 예, 정확히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좀 늦어 질 듯합니다.

 

돌 : 캄사함다.


 

 

결국 파토형과 12시에 서울광장에서 조인하기로 약속 후, 택시를 타고 달렸다. 돌고래가 도착한 것은 11시 43분.  

 

 

 

 광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트위터에서 유명인사인 몇몇 사람들도 이곳에서 번개를 하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오래만에 맞는 경찰 없는 광장이 조금 어색했다.   

 

 


한명숙 후보의 승리에 확신을 가진 듯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향해 있는 곳은 바로 한명숙 후보의 유세차.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방송과 개표방송이 번갈아 가며 나왔다. 그리고 한명숙 후보를 기다리는 사람들.

 

 

 

 


 개표방송을 보면서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간간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2시 1분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방송이 나오던 도중 화면에 이재오가 잡혔을 때의 반응이다.

  

여기 저기서'빌어먹을 놈, 나쁜 놈'등의 욕이 쏟아지며 야유가 터졌다. 국민장 취재 때 화면에 이명박이 잡히자 꼭 이런 반응이었다. 재보궐 선거에 나올 후보로 점쳐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그리 좋은 반응은 아닌 듯하다.

  

 

 

촛불도 늘어나고 사람들도 늘어난다. 한명숙 후보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방송사 기자들도 뒤늦게 여기 저기 삼각대설치한다.

 

 

 

 

한명숙 후보가 조금씩 더 표차를 벌리자 시민들이 환호한다.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후보였던 이가 연단에 서서 한명숙 후보의 선전에 감사인사를 한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이런 장면을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이어지는 시인, 시민, 연극인들의 시낭송과 연설. '아, 씨발 존나 바보같은 우리 대통령 노무현'등 서울광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직설적이고 울분에 찬 목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서울시장 선거에 누구보다 많은 힘을 쏟아 부었던 사람 중의 한명인 이해찬의 등장. 현재의 4만표 리드가 종내는 15만표 차까지 벌어져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열렬한 환호와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등장한 한명숙 후보. 서울광장이 오랜만에 축제 분위기로 물들었다.  

 

 


 

 

 

 

 

 

하지만 한명숙 후보는 그 광장에서 침착했던 유일한 한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개표도 많이 남았고 확정된 것이 아니니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정말 확정이 된다면 다시 와서 감사인사를 드리겠다는 말을 남겼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저 침착함과 겸손함이 그녀가 가진 최고의 무기인 듯하다. 


 


 

그렇게 다시 찾아 온 서울의 봄을 만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4만표였던 표차는 새벽 3시 30분 경에 4천표가 되었고 결국 오후 4시 15분, 강남 3구의 집중 사격에 서울의 봄은 멀어져 갔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이런 들뜬 기분의 현장취재도, 이런 묘한 기분으로 현장 상황을 복기하며 쓰는 기사도 오랜만이다.

  

그래도 이 날 새벽, 광장에서 느꼈던 서울의 봄이 그리 멀지만은 않은 듯하다.  왠지 2012년 쯤엔 마음대로 잔디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렇다.

 

 

영양가 없고 잡담 쩌는 트위터 : kimcha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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