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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100만 학살을 기억하라. - 전쟁의 뒤편(3)


2010. 08. 30. 월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전쟁의 뒤편(1) - 아군을 죽인 아군

전쟁의 뒤편(2) - 그런 것도 못하는 국가가 무슨 놈의 국가입니까

 

 

0.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사건에 관한 토론회는 저녁무렵이 되서야 마무리되었다. 물론 전국에서 모인 유가족들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이런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릴 수 있고 이를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소수나마 존재한다는 것은 큰 다행이다.

 

한국전쟁발발 60년 특집으로 기획된 이번 연재기사는 전국유족회 김광호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1.

 

사진은 작년 12월 14일, 한국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관련 과거청산 및 명예 회복을 위한 기자회견' 현장이다. 아래 사진이 사회를 맡고 있는 현 김광호 상임대표(당시 집행위원장)의 모습이다.

 

본지의 정치부는 고도의 풍자와 심층 분석을 '주'로 한다. 그래서 속보성 기사를 써야하는 기자회견장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날은 타 언론사를 감시하기 위해 출동했다. 정부와의 관계가 껄끄러운 탓인지 언론에서 한국전쟁기 학살에 대한 기사를 잘 싣지 않거나 축소보도하는 경향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도 이점에 대한 섭섭함을 기자들에게 호소했다.

 

하여,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언론사와 출입 기자를 꼼꼼히 관찰했다. 단 하나의 언론사라도 이 기자회견을 왜곡보도하거나 데스크에서 누락시켰을 경우, 철저하게 응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기자회견은 정상적으로 보도됐고 출입한 기자 모두가 비중있게 기사를 다뤘다. 본지가 굳이 기사로 써 올리지 않은 사안이라 할지라도 서슬퍼런 감시를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 점 강조하며, 진짜 인터뷰 들어간다.

 

 

2.

 

돌 : 한국전쟁 전국유족회는 어떤 단체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 : 1960년 10 20일에 처음으로 ‘전국유족회’(회장: 노현섭, 사정위원장: 이원식, 총무간사: 김영욱 등)가 결성되었습니다. 6.25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 학살당한 민간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조직되었지요. 정확한 명칭은 ‘6.25 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진상규명 전국유족회이고 약칭은 전국유족회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밝히고자 당시의 정신을 이어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돌 : 행사 직전에 한 아주머니가 난입하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하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고함쳤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지요?

 

 

 


 

김 :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우리 단체의 경우, 빨갱이라고 욕하며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제로는 친북용공단체가 아닌, 국가관과 애국심이 투철한 곳인데 말이지요. 역사인식이나 철학이 부재한 극우 보수세력과 그 추종자들에게는 그렇게(빨갱이) 비춰지나 봅니다.

 

 

돌 : 김광호님은 어떠한 연유로 상임대표가 되셨는지요?

 

김 : 1950 6.25전쟁 발발 후, 독립운동가로 진영(경남)에 거주하고 계시던 조부 김정태 옹(건국훈장 수혜)’께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셨던지 당시 이승만 정권과 그 추종자들에게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습니다. 여러 극우 세력들의 옳지 못한 행실을 꾸짖었던 탓에 결국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들에게 끌려가 학살당했지요.

 
그 후, 전쟁과 혼란기를 거쳐 1960년대 당시 재력가셨던 선친(김영욱 : 전국유족회 상임대표, 2005 12 1일 작고)께서 금창지역 장의 위원장을 맡아 피학살자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어 드렸습니다. 1961 5.16 군사 쿠데타가 터지자 이 유골 중 빨갱이 유골도 일부 있었다라는 억지 주장으로 선친을 불법 구속하여 2 7개월의 옥고를 치르게 했지요.

 

 

 

 5.16 직후 수감 중인 사회운동가 고 김영욱(왼)

이승만 정권하에서 학살당한 독립운동가 고 김정태(오)

 

 

그것도 모자라 그 후 10년 동안 걸핏하면 끌고가 고문하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선친께서는 이에 굴하지 않고 힘 없고 돈 없고 배우지 못한 유족들을 위해 살아라고 했지요. 그 소신을 따라 아버님 생전 집행위원장을 거쳐 2009년부터 공동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돌 : 전쟁기에 일어난 군경이나 인민군, 미군에 의한 학살사건이 6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 : 1960년대 장면 정부 시절부터 진상규명에 관한 활동이 있었으나 여전히 학살의 주범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지요. 이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자신의 용공 전력(과거 남로당)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불식시키고자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라는 혁명공약을 내걸고 모든 유족회 사건을 깡그리 말살시키는 '역사적 우'를 범하였습니다.

 

당시는 의식주가 궁핍했던 시절이라 이에 대한 진상규명은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어 반공사상과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지요.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역시 군사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등한시 하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시절에 와서야 이에 대한 진실규명의 서광이 비춰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군경(아군), 인민군(북한), 미군에 의한 학살사건입니다. 전쟁 중 발생한 어쩔 수 없는, 단순히 취급되어져야 할 문제가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미, 친북의 단순 논리로서 불가피한 사안으로 몰고 가며 진실 화해 위원회’의 활동을 연장하지 않는 현정부는 진실규명의 의지가 결여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돌 : 아무래도 본인이 유족이시고 전쟁 유족회의 상임대표인 만큼 보도연맹에 관해 가장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어떻게 이루어 졌으며 왜 이승만 하야 이후에도 이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는지 알기 쉽게 역사의 흐름을 말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 : 우선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 통제 수단으로 결성한 좌익 전향자 단체로 전국 각 시, , , , , 동 단위에 이르기까지 지부가 결성된 전국적인 대규모 조직입니다. ‘보호하여 지도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좌익 성향자를 사전에 파악하여 통제하려 했지요.

 

이때 6.25전쟁이 발발하고 이들이 북한에 동조할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100만에 이르는 민간인을 법적 절차도 없이 학살했습니다. 총살하여 광산에 파묻거나 수장시키거나 야산과 계곡 등에 방치하여 버렸습니다.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천인공노할 민족 대학살이었습니다. 그 주체가 이승만 대통령과 장관, 군인과 경찰, 극우세력 등... 내 나라, 내 동포였다는 게 경악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학살당한 자들 중 대부분이 선량한 민간인이었습니다. 보도연맹과는 전혀 상관 없는 자들이었으며 독립운동가, 목사, 교사 등을 비롯한 사회저명인사는 물론, 돌 지난 갓난 아기로부터 초, , 고등학생까지 포함되었으니 그 잔인무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이승만 하야 후, 집권한 박정희 역시 앞서 밝힌 바(남로당 전력)대로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진상규명을 철저히 봉쇄했습니다. 오히려 전국유족회 간부를 구속하여 고문하고 피학살자의 무덤까지 파헤쳐 부관참시하다시피 하였습니다. 더 이상 진실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그 이후의 정권 역시 이들의 연장선상이었으니 달리 어떤 조치가 없었던 건 자명한 사실이었죠.

 

진짜 친미를 하려면 미국에 이런 묵시적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게 옳은 일이지요. 그런데 이를 밝히는 것이 한미우호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니 역사인식의 부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돌 : 대표를 하시면서 본인 이외에도 억울하고 한 많은 사연을 많이 접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경기도 고양의 집단학살이나 충북 공주의 집단학살 등은 전쟁 직후 전선과 가까웠던 탓인지 순식간에 무차별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대전, 대구, 마산 형무소 재소자들은 아예 적으로 간주하고 학살한 다음 우물에 쳐 넣거나 야산에 버렸습니다.

 

전남 갈매기섬 학살이나 부산 등지의 학살은 수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일본 대마도후쿠오카 등에서 그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경주 기계천, 충북 노근리, 전북 이리역 등의 미군기 폭격학살은 아예 사격 연습 수준이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놀이를 즐기듯 공간에 몰아 넣고 나오면 쏴 죽이는... 참 인간으로 보기 힘든 짓이지요.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의 유골들을 보면 아무런 법적인 조치도 없이 그냥 죽이고 버렸고 경남 진주의 유골들은 질서 정연하게 묶어 총살시켰더군요.   

 

 

돌 : 빨갱이로 몰려 죽거나 미군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의 보상이나 명예 회복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 지고 있습니까?

 

김 :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을 받은 각 지역 및 개인들부터 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이에 대한 배, 보상은 요원한 상태입니다. 겨우 호적정리표지석 설치, 위령제 보조금 지급 등이 있습니다만 아직은 수박 겉핡기 수준입니다.

  

 

 

 

돌 :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들의 자손은 연좌제가 적용되어 공무원, 취직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명예회복이나 보상이 이루어 졌는지요? 

 

김 : 1980년대 들어 연좌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모두가 그 이전에 이루어진 것들인지라 1950년대 학살당한 유가족들은 참담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보도연맹원의 자녀들은 공무원은 고사하고 취업조차 제한되었지요. 유족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또 피해를 받을까봐 사실을 쉬쉬하고 있어서 명예회복과 보상은 이제서야 그 논의가 거론되고 있는 극히 미비한 실정입니다.   

 

 

돌 : 아무래도 유족회와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듯합니다. 참여정부 때 출범한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4년이라는 기간을 끝으로 지난 6월 활동을 끝냈습니다.

 

일반인들은 아직도 진실화해위원회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는지 잘 모릅니다. 출범할 당시에도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과거사를 묻어 놓지 왜 나라를 시끄럽게 하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대표님께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짤막하게 정리해 주시고 개인적인 평가를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 : ‘과거사 청산역사의 정리이며 진일보된 사회로 도약하는 단계입니다. 제 나라 역사가 선택이 되어버린 나라이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니 올바른 역사가 살아 숨쉴 수 없고 진실이 땅에 묻히는 것도 모자라 위선이 판을 치는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설립은 분명 역사적 산물로 칭송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그 기한이 극히 짧아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른 역사의 아픔으로 기억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진상규명 된 사건이 빙산의 일각에 불구함에도 서둘러 위원회를 폐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치적 소신을 떠나 역사인식과 철학의 빈곤으로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잠재된 국민들의 또 다른 저항에 직면할 것이 확실시 되기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 를 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 : 전쟁 유족회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준 정치인이 있다면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반대로 이 활동에 대해 방해를 한 정치인들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 : 한국의 석학이신 역사학자 이이화선생님과 전 제주시장 김영훈선생님 같으신 분들은 저희 단체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은인입니다. 우리 유가족들이 결초보은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강창일 의원을 비롯하여 천정배, 김영진, 홍재형 국회부의장님 등이 적극적인 도움을 주신 정치인이고 이례적으로 김덕룡 의원의 경우, 다른 정당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단적으로 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경우는 매우 소극적인 반면 민주당, 민노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의 경우 선별된 국회의원들만이 적극적이고 자유선진당의 경우는 중도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정치인이 자신의 소신에 의하지 않고 눈치를 보며 미적거리는 것입니다.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되더군요

 

 

돌 : 현재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문제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 : ‘전국유족회’, ‘범국민위원회’, ‘제노사이드등의 단체들이 연대하여 진실규명과 피해 배.보상, 기념재단 설립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세미나와 심포지움, 연석회의 등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국가가 잘못한 것은 국가가 책임지는지도자의 결단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됩니다.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슬픔을 달래주는 지도자의 확고부동한 철학이 민심을 사로잡고 천심을 얻는 것이지요.

 

"과거 일이니 덮어 두자"는 것은 봇물을 종이봉투에 가두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짓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돌 : 귀한 시간 내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본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한국전쟁발발 60년 특집 연재기사인 '전쟁의 뒤편'을 끝낸다. 

 

허나 본지, 100만 민간인학살의 억울함과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을 생각이다.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고 추앙하는 한심한 현실이 바로 잡힐 때까지 쓰고 또 써 내려 갈 생각이다. 60년이 지나서 까지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정치인을 모조리 역사에 남길 생각이다. 

 

반세기 넘게 '한'을 가지고 살아 왔을 그들을 생각하자면, 이 정도는 해야 기자 나부랭이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 듯 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추신 : 전국유족회의 홈페이지 주소는 COREAWAR.OR.KR 이며 대표전화 02-2273-1950이다. 여러분이 남기는 응원글 하나와 격려전화 한통이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트위터 : kimchangkyu

편집국정치부국회담당 죽지않는돌고래 (tokyo1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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