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 원본 : http://www.ddanzi.com/news/56774.html

딴지 정신에 입각하여 무단전재 및 재배포 환영! 단, 상업적 사용은 상업적 루트를 이용하시라!   




 

[현장출동] 서울구치소 16호 접견실에서


2011. 02. 09. 수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1.

 


2
8일 화요일, 11 7분에 서울구치소에 도착하여 예약접견원임을 확인하고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교도관이 건네 준 종이에는 수용자의 이름과 번호, 나의 간단한 신상과 함께 접견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다.

 

접견시간은 10분이다. 녹음도 녹취도 금지되어 있다.

 

 

2.

 

 

<구치소의 요청으로 사진을 모두 내립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11
15분쯤 되었을까. 12회차 접견을 준비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대기실을 나와 5 발자국만 걸어가면 접견을 위한 건물이 서 있고 젊은 교도관이 접견신청서와 신분증을 확인한다. 그는 신분증을 내게 돌려주고 신청서를 옆의 교도관에게 건넨다. 은색 머리칼을 겹겹이 수놓은 탓에 더욱 노련해 보이는 고참 교도관은 신청서를 컴퓨터와 대조하는 일을 한다.

 

양 옆으로 뻗은 긴 복도에는 스텐 재질의 느낌이 나는 문이 수 미터 간격으로 박혀 있다. 조그마한 창문이 달려 있어 언제나 안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며 문 옆에는 호실을 가리키는 번호판이 붙어 있다. 접견을 신청한 이들은 각각의 호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벨이 울리면 안 쪽으로 들어간다.

 

나는 호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교도관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나의 신청서만이 따로 놓여 있다.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이진영씨가 병원에 가서 지금은 접견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언제 접견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다시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언제 올지 확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계속 기다릴지 아니면 다음에 올지를 결정해야 한다. 구치소까지 온 것도 오늘로서 3번째다. 편집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하니 오늘은 기다려 보자고 한다.

 

 

3.  

 

세븐일레븐 서울구치소점이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떼운 후 언제 올지 모를 그를 기다렸다. 대기실에는 교도소에서 발행하는 듯한 새길이라는 잡지가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었다.

 


부모가 당신들의 죽음과 맞바꾸어 자신의 탈북을 도왔지만 결국 죄를 지어 부모님을 뵐 낯이 없다는 죄수의 이야기, 아버지가 국정원의 고위간부였기에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한 순간에 야반도주하는 신세가 되어 끝내 죄수가 된 이의 이야기 등이 인상 깊었다.

 

12시쯤에 다시 교도관을 찾아 갔더니 이진영씨가 돌아왔고 다시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21회차 16호실, 12 50분에 접견예약이 떨어졌다. 

 

 

4.

 

접견실 창문 안을 넘어, 아크릴 판(재질은 장담할 수 없다)을 넘어, 그리고 또 다른 문의 창문을 넘어 수용자들이 줄지어서 자신의 접견실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서울구치소 접견실은 종로경찰서 유치장의 1/2 크기로 마이크가 마주 보고 설치되어 있는 구조는 동일하다. 서로를 막고 있는 아크릴 판에는 유치장과는 달리 전혀 구멍이 뚫려있지 않았다. 나는 손목시계를 풀어 앞에 놓았다

 


<구치소의 요청으로 사진을 모두 내립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왼쪽 가슴팍에 자신의 수용번호를 단 황토색 죄수복의 이진영씨가 들어온다. 황토색 죄수복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을 의미한다. 듬성듬성 난 수염이 눈에 띈다.

 

그는 접견실로 들어와 좌우를 두리번 거리더니 다시 나가려고 한다.

 

 

(아래의 이 본인이고 가 이진영씨다. 접견실에서는 녹음, 녹취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아래의 기록은 100% 본인의 기억에 의존한 것임을 밝힌다. 순서는 틀릴 수 있다. )

 

: 벨 울렸어요. 앉으면 돼요.

 

그는 약간은 다급한 듯한 목소리로 첫 마디를 내뱉는다.

 

: 사건 얘기하면 안됩니다. 다 녹음하고 다 녹취하고 있어요.

 

접견실마다 카메라가 달려 있고 접견 내용은 모두 녹화된다. 하지만 왜 사건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들어오자 마자 왜 그 말을 강조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어 검사가 경고했는지, 아니면 내가 쓴소리를 할까봐 미리 방어를 하는 것인지, 원래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 말을 두 번 반복한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질문을 던졌다.

 

: 세 번 만에 겨우 만나네요. 밖에서 어떻게 됐는지 알고 계세요?

 

그가 구치소로 들어간 다음, 자백을 했다는 기사가 뜨자 밖의 모든 상황은 그것으로 종료되는 분위기였다. 조선일보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여전했다. 나는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 ? 전혀밖은 어떤가요?

 

: 조선일보 기사 뜨자마자 이진영씨는 천하의 사기꾼에 나쁜 놈이 됐구요.(간단하게 기사 내용을 말해 주었다.)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 없는 얘기도 나왔는데 뭐 나한텐 중요하지 않았지만 사람 죽이기엔 딱 좋은 부분도 있고. 하하.

 

그는 한숨을 쉬고 아래를 내다 보았다.

 

: 아닙니다 아니구요

 

나는 풀어 둔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 말을 이었다.

 

: 우리 시간 없어요. 내가 뭐 닦달할라고 온 것도 아니고 죄를 지었으면 그냥 거기서 받으면 되는 거고. 난 내 눈으로 확인해야 되는 성격이라 꼭 한번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왔어요.  

 

그는 계속 한숨을 쉰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질문을 던졌다.

 

: 하나만 물어 봅시다. 우리한테 거짓말 했어요?

 

다시 한숨을 쉰다.

 

: 죄송합니다. 제가 사건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 죄송하다는 말은 거짓말을 했다는 얘깁니다. 

 

: 제가 어쨌든 이 안에 들어와서 무릎을 꿇었지 않았습니까.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눈을 똑바로 쳐다 보고 물었다.

 

: 저한테 죄송할 건 없구요. ‘어쨌든이라는 말의 뉘앙스를 확실히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도 나의 눈을 쳐다 보고 말한다.

 

: 기자님. 제가 여기서 사건 얘기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만 말씀을 드릴게요. 들어오면요.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니게 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정말 아무 중요한 게 아닌 게 됩니다.

 

: 하하. 확실히 해주셔야 되는데요.

 

: 들어오면요, 여기 들어오면 진실은 아무 중요한 게 아닌 게 됩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거 하나입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접견을 하는 동안 최소 3번이상 그에게 진실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단도직입적으로 '정말 전자렌지에 넣고 돌렸습니까'라는 질문도 던졌다. 하지만 그는 내 질문을 모두 위와 같은 방법으로 회피 했다.  

 

그가 정말 억울해서 위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억울하게 보이기 위해 말을 돌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내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몇몇 일들을, 기사에서는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인 어떤 일을 말하며 울기 시작했다. 가족, 부인, 지인, 도와주기로 약속한 사람들

 

돌 : 뭘 울고 그럽니까. 죄를 지었으면 당당하게 거기서 죗값 치르면 되는 거고 아니면 아니다 말하면 되는 거지요.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무슨 염치가 있어서 부탁을 하겠냐고 대답했다. 그리고 벨이 울렸다. 마이크가 끊기고 아크릴판 넘어로 눈물을 훔치던 그가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린다.

 

그가 저쪽 편 문을 넘어 밖으로 나간다. 나는 큰소리로 건강하라고 했다.

 

 

5.

 

죄수복을 입은 20대 후반의 청년이 코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태생적으로 마음이 약한 인간이라 눈물을 보면 쉬이 흔들린다. 하지만 눈물을 보았다고 모든 것을 덮어도 되는 직업은 아니기에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로선 그가 흘린 눈물이 억울한 자가 흘리는 눈물인지, 끝까지 거짓말을 하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눈물인지, 아니면 단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눈물인지, 단순한 연기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구치소의 요청으로 사진을 모두 내립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일전에 유치장으로 면회를 갔을 때, 거짓말을 했으면 했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데 거짓으로 자백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면 그때는 아무도 당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가 자백했다는 기사가 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사법부는 그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것이며 누구든 그 판단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미결수의 신분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그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는 않을 듯하다. 그 눈물을 보고 있으니 인간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장님에게 보고를 드리고 문 밖을 나서다가 되돌아와 영치금 3만원을 넣었다. 특별히 어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벌써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고 있는 이 사건에서 본지가 독자 여러분께 전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이 정도인 듯하다. 다시 소식을 전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 모든 일들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기획취재부팀장 죽지않는돌고래 (tokyo119@naver.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