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지일보 창간 14주년 기념, 본격 서스펜스 액션 대하 역사극 내맘대로 비망록 ~ 딴지일보와 나! 두둥~ 이라고 큰 소리로 외친 다음에 읽으시면 글의 맛이 더욱 살아납니다. 공공장소에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큰소리로 말해주셔야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5.

총수형의 몇가지 습관 중, 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를 언급하자면 월급을 줄 때 '미분'을 한다는 것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강남에 심은 귤이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라는 말이 있다. 이에 비추어 '인생은 자기 선택의 적분'이라는 형의 말을 딴지일보에 와서 심으면 '월급은 자기 선택의 미분'이라는 말로 바뀔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만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무엇이든 미분해버리는 것(MB, 정치인, 연예인등 보이는 건 모두 미분)은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니 이해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월급! 월급! 월급!' 이라는 나만의 라임이 살아 숨쉬는 랩을 구사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총수형은 언제나 '니가 벌어와, 이 새끼야'라는 고전적 플로우로 응수한다. 그런 반응이 좋았다. 나의 경우, 그렇게 해도 좋을 만큼까지만 밀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선배들처럼 밀린 월급으로 지중해 근처의 자그마한 섬 하나를 살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딴지일보 7대 괴담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신입일 때, 선배들로부터 들은 괴담이다. 

어느 날이다. 당시 막내였던 OO양이 국제 기사를 준비하면서 각국의 GNP를 조사하고 있었다. 각국의 약자는 KOR, JPN, USA등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막내가 조사한 자료뭉치를 한장 한장 뒤져가며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었다. 막내 OO양은 NBL이라는 약자가 적힌 문서를 보고 옆의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NBL이 어느 나라 약자죠? GNP를 보니까 좀 못사는 나라 쪽인 것 같은데...'

선배가 사색이 되어 아무 말도 못하자 건너편의 너부리 편집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NBL이면.... 그거 내 밀린 월급 명세선데...'

혹자는 이 괴담에 대해 과장된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성기가 아닐 때임에도 불구하고 자회사와 인적자원등을 모두 제외하고 순수하게 사이트만으로 천억에 가까운 인수 제의를 받은 딴지일보다.

 

(개인적으로 언론에 알려진 이 액수는 당시의 가치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액수라고 생각한다. 미국이였다면 총수가 말한 '8조'에 가까운 돈을 낼 기업이 정말로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달렸겠지만. -경영능력이 타고난 CEO가 인수했다면 8조를 내고도 그 수십 배에 달하는 이득을 남겼을 거라 생각한다- ) 

 

이런 곳에서 암묵적인 공채 수석 타이틀을 달고 최장기간 편집장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의 연봉에 대해서는 그리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편집장이 입사할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기업에 들어간 지인들이 그에게 '니가 가장 취업을 잘했다.'라고 시샘했음을 증언했다. 은행 지점장이 딴지일보에 입사하기 위해 퇴사를 한 것이 당시의 시대현실. 그렇다면 너부리 편집장의 각종 보너스와 상여금을 합하여 십수년을 복리이자로 계산한다면...

딴지일보의 연봉은 갓 입사한 신입조차 대기업의 고위급 임원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다만, 주지 않을 뿐이다.

 



6.

총수형에 대해서는 애증을 가진 사람이 많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 보이지만(사실은 정말 대부분 아무 일도 안하고 있지만)십 몇년간 이런 특수한 조직의 대표로 있다 보면 팬도, 적도 많이 생기는 법이다. 개중에는 꽤 심각할 정도로 형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도 어떤 면을 중심으로 보느냐가 관건일 듯하다. 나는 총수형의 장점 중에서 순수한 면을 제일로 친다. 개구쟁이 같은 면, 특히 4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악의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눈을 좋아한다. 월급을 주었으면 더 좋게 보였을 텐데 여튼 그렇다.

철이 없다거나 어린이 같다고 하면 좀 이상하다. 아니, 그렇게 말해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은데 이 정도로 월급이 밀려 있는데 싫은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은(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천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엉성한 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가 인생의 쓴맛 단맛을 풍부하게 느꼈기에 인간적인 깊이를 가진 좋은 인터뷰어가 됐다기 보다는, 사람을 사심이나 편견 없이 대해서, 그러니까 누군가를 볼 때 다른 사람보다는 더, 자신이라는 망에 거르지 않고 투과시키므로 좋은 인터뷰어가 됐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그냥 받아 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따라다닌 것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런 느낌 때문에 형의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대상에 애정이 있으면 자연스레 좋은 사진이 나온다. 물론 월급이 다 나왔으면 더 좋은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실, 모 의원과 인터뷰 중, 설정컷 아님>


경영이라는 입장에서는 잘한다, 못한다의 레벨이 아니라, 과연 관심은 있는 걸까라는 정도의 레벨이지만 형으로서는 매력이 상당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때묻지 않은 점이, 뭔가 아직 굉장히 순수한 점이, 또 변명을 하지 않는 점이, 아이같은 점이, 날카로운 분석력이나 사람을 흥분시키게 만드는 글솜씨 보다, 또는 허풍에 가까운 당당함 보다, 세간에는 천재로 알려진 어떤 점보다, 좋았다. 

참고로 총수형이나 딴지일보의 몇몇 이들에게 붙는 '천재'라는 평에 대해서(본인에 대해 얼굴도 잘생기고 마음도 넓은 23세기 극강미남형 천재라는 평을 포함), 나는 그들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기에 객관적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위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사회가 조금 발전한 느낌이 든다. 한국사회에서 천재의 정의는 상당히 독특하다. 남이 시키는 것을 잘하고 잘 암기해서, 시험을 잘치고 좋은 대학에서 수석을 하고, 또 어떤 무지막지한 암기 시험등에서 1등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천재'의 정의다. 나는 이것이 유교적인 사회가 갖는 독특한 천재의 정의인지, 머리가 나쁘고 남들이 시키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가리기 위해 천천히 만들어온 이미지인지, 아니면 말 잘 듣는 노예를 만들기 위해 천재라는 진짜 의미를 변형시킨 것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천재의 의미는, 또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천재라는 의미는, 남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을 하거나, 어떤 새로운 길을 닦거나, 굉장히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런 이들은 괴짜나 이상한 사람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딴지일보나 김어준의 등장으로 천재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바뀐 점에 대해서는,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운 단어의 정의가 되었다는 점에서, 형이 천재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한국사회가 발전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월급이 반 이상 나왔으면 더 발전한 느낌이 들었을 테지만.   

 

 



7.

형의 경우, 대한민국 총수 중 가장 '폼'을 강조하지만 가장 '폼'이 안나게 입고 다니는 사람으로서(본인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패션센스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 여튼 살 빼곤 나아졌다.)무엇보다 '개폼'을 잡지 않는 것이 좋았다. 형 정도로 이름을 날린 사람 중에 그 정도로 개폼을 잡지 않는 사람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주위에서 그만큼 떠받들고 누구나 쉽게 만날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면 대개가 건방져 질 것 같은데 형은 그렇지 않다.(예전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상당히 무책임한 어떤 면도 나에게는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형은 세계 대통령같은 걸 한 다음에도 별로 자기가 잘났다는 류의 개폼을 잡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좋다. 그런데 월급을 주면서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그런데 이상한 잘난체는 많이 한다. 지하철에서 덩을 지려봤냐느니, 머리카락 숱이 많다느니)

이따금 형의 지프(외부는 지프, 내부는 지푸라기)를 타고 갈때 해줬던 충고들도, '에이 그게 뭐야~, 조또 도움 안된다능' 이라는 느낌으로 응수했지만 사실은 깊이 마음 속에 새기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12월 15일에(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강남 쪽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자기 글에서 멀어질 수록 독자에겐 가까워진다', '다 집어 넣으려하면 실패한다.(기사에 관한 내용이다. 이상한 상상은 금한다.)' 같은, 그러니까 평소의 본인 이미지와는 꽤, 아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충고같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나는 단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을 스승으로 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점과 단점을 모두 말해 주었지만 단점에 대해서 더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월급이 다 나왔으면 더 감사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의외로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았던 연애상담의 경우, 어떤 상담을 해도 '일단 한번 자, 이 새끼야'같은 건, 형같은 사해동포 마구잡이 섹스 주의자에게는 적합하지만 나처럼 일편단심 로맨티스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늦게 나타나는 것도, 그런 주제에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도, 장관이나 국회의원한테도 똑같이 하니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월급도 꾸준히 미분해서 주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형의 일관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언젠가 회의를 할 때다. 내딴에는 재밌을 줄 알고 성심성의껏 개드립을 치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았는데 '아, 왜 때려요'라고 하자 '이 새끼야. 그게 때리는 거야. 이게 때리는 거지'라고 뒤통수를 더욱 세게 친 것에 대해서는,(참고로 맷값의 정가는 한대에 100만원으로 알고 있다. 조속한 시일내에 계산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건넸던 커피 맛을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핸드드립 기계가 없는 회사에서 커피의 거품이 어떻게 그리 풍부하게 생겼는지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마신 것은, 적어도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수염의 경우, 옆에서 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꽤 다르다. 잘 구워진 닭날개같은 것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사람의 수염 속에 닭날개가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멍청이는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 사람쯤 되면, 아주 가끔은, 수염 속에 그런 걸 숨겨 두었다가 틈 날때 꺼내먹어도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상해 보면 그렇게 수염 속에서 뭘 꺼내먹는 게 형만큼이나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 듯하다.

어쨌든 누군가 총수형과 사귄다면, 또는 사귀고 있다면, '가급적 키스는 자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형의 수염은 본능적으로 일반적 인간의 수염보다 피부에 좋지 않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피부괴사같은 걸 일으키게 만들면 책임이 상당하지 않을까하는 충심에서 하는 말이다. 

어쨌든 나 같으면 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해두고 싶다. 


추신 : 밀린 월급을 다 준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혀의 삽입에 대해서 만큼은 나도 인간인지라 단호한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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