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 지향의 일본인 - 10점
이어령 지음/문학사상사





제가 읽은 책은 기린원 출판의 이어령 교수 얼굴 표지였습니다. 10년 넘게 지나니 디자인도 출판사도 바뀌었나 보군요.

쨌든.

흔히 일본에 관한 명저라 하면 '국화와 칼'을 꼽는데요. 이 책이 그보다 몇 단계는 위입니다. 일문학을 전공하기 전에 한번 읽고 전공하면서 또 한번 읽었는데 볼 때마다 탄성입니다. 파악, 관찰, 분석이 탁월합니다. 일본 관련 전공자라면 다들 이 정도 책을 내고 생을 떠나는게 꿈이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48. 축소지향의 일본인 / 이어령 / 기린원 

재판 1쇄 발행 1994.01.31,

재판 2쇄 발행 1994.04.30

 

일본인만 해초(海草)를 먹는가

 

 의외로 일본인이 일본 특유의 정신 구조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 중에 실은 한국이나 동양 일반의 보편적 특성에 해당하는 사항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복잡한 예를 들 필요조차 없다. 일본 문화에 대해 해박하기로 이름난 히구치 기요유키씨는 세계 문명국 중에서 해초를 먹는 것은 일본뿐입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때 일본에서 수입 규제를 둘러싸고 그처럼 시끄러웠던 한국 김은 해초가 아니란 말인가(하긴 한국은 문명국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뿐이겠지만). 한국에까지 갈 필요가 없이 일본의 야키니쿠(한국 음식점) 집에만 가도, 미역국의 메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메사오 다다오씨 등 저명한 일본인 학자 다섯 명의 공저인 『일본인의 마음』에서는 인간의 배설물을 농작물에 주는 유기물(有機物) 사이클 --- 인분을 비료로 사용하는 놀라운 발견은 일본 특유의 지혜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를테면 그 고도의 농업 기술은 다른 민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인 특유의 발견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발견은 다른 데 있다. 눈먼 장님이라도 한국의 어느 시골길에서 단 십 분만 서 있으면 그 경탄해 마지않는다는 유기물 사이클이 일본 민족 특유의 고도의 농업 기술이 아니라는 것은 냄새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것이 일본 특유의 것이라고들 확신하게 되었는가? 아마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미 사회에 없는 것은 모두 일본 특유의 것으로 단락(短絡)을 지어 버리는 그 습관성 사고 때문이다. 인분 비료의 일본론 창안자들은 영국 부인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은 야채에 인분을 뿌려서 먹는다.’고 씌어 있다는 프랑스 교과서를 그 유력한 근거로 삼고 있다. 아무튼 나는 그다지 향기롭지도 못한 인분을 놓고 그들과 공을 다툴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명예롭지 못한 아마에란 말이나, 대수로울 것이 없는 김과 미역의 해초(海草) 점유권을 가지고 특정 학자의 명예에 상처를 내는 일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서양 사람들이나 일본인들이 쓴 일본론이라는 것이 때로는 일본과 별로 관계가 없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의 옷을 입은 일본 문화의 모습은 서양과 일본만을 비교한 도식에서 연유된 것임을 밝혀 둔 것 뿐이다. 서양 문화의 대립 개념은 일본 문화일 수가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황색 인종일 수는 있어도 특정 민족의 좁은 개념을 거기에 적용시킬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구미 문화권에 어느 특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동양 문화권과 상대적인 의미에서 연관지어져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직접 일본과 그것을 비교할 때 본래 동북 아시아권의 보편적인 특성이 일본만의 것으로 오해받는 탈논리의 비상벨이 울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을 모르는 일본 학자들

 

한 나라의 피와 문화는 요술 지팡이로 하룻밤에 만들어진 마법의 성이 아니다. 일본인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이 자기 문화에 가장 오랜 세월을 두고 영향을 끼쳐 온 중국이나 한국을 통해 자기 특성을 찾아보려고 노력한 흔적은 극히 드물다.

 일본적 사유 방식의 특성을 동양 불교 문화의 콘텍스트에서 찾아내려고 한 나카무라씨도 한국 불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15세기 슈호라는 중이 쓴 『선린국보기(善隣國寶記』라는 책명만 해도 백제로부터 불교의 삼보가 전해진 데서 비롯된 것이라 했는데도, 어쩐 일인지 그의 저서 속에는 중국, 인도는 나와도 한국 불교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한국 불교, 오늘도 수십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수학 여행 때마다 우러러보는 백제 관음의 고향 한국 불교를 말이다. 최근 일본의 일부 전문 학자 사이에서는 일본 역사의 원류를 찾기 위해서 한국 고대사나 언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가기 시작했으나 일반적인 일본인론 저서에는 아직도 탈아입구의 한 세기 전 목쉰 구호가 여전하다. 이와 똑 같은 현상은 서양 사람들이 쓴 일본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한국이나 중국을 전혀 모르고 있는 서양 사람이 일본인의 식사 광경을 보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포크 대신 젓가락을 사용하고, 빵 대신 밥을 먹고, 접시가 아닌 밥공기에 음식을 담아 먹는 모든 것이 일본적인 풍습이라고 믿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 최대의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던 롤랑 바르트의 일본론에도 그런 것들이 엿보인다. 그는 『기호(記號)의 제국(帝國)』에서 일본 요리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유일한 요소끈적끈적하면서도 퍼석퍼석한 익힌 쌀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파편이자 딱딱한 응고물익힌 쌀을 더욱 특징짓기 위해 든 예가 바로 두 개의 젓가락으로 한 번 찔러 부스러뜨릴 때의 광경이다. , 젓가락이 일본 고유의 것인 것처럼 씌어져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일본인의 식사 광경을 보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밥이나 젓가락은 하나도 신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밥을 밥공기에 덜어 먹는 것만이 이상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인에게 있어서 일본의 특성은 밥을 밥공기에 덜어 먹는 것일 뿐, 결코 밥과 젓가락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일본의 특성을 좀더 치밀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서양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의 시선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양인의 식사법은 잘 알면서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젓가락을 사용하여 밥을 먹는다는 것을 모르는 일본인이 있다면 어찌 될 것인가. 결과적으로는 서양인과 똑같이 젓가락과 밥을 일본만의 특성이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일본인이 쓴 일본론이 서양인이 쓴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마에에 해당하는 말이 알파벳으로 적힌 영어에 없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가나다의 한글로 적힌 한국어에 아마에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링컨이나 칸트에 대해 공부하는 일본인은 많아도 세종대왕이나 이퇴계(李退溪)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적인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같은 알타이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유불선(儒佛仙) 삼교의 비슷한 종교를 믿고 살았으며, 같은 한자와 붓으로 문화를 적어 온 사람들, 『고지키』, 『니혼쇼키』를 한 장만 넘겨 봐도 옛날 일본 문화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한국의 그 눈을 통해야 한다는 상식론이 오랫동안 일본인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일본은 종적 사회인가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구 문화 비교론』에는 일본 어린이의 풍속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그 기록을 보면 일본 아동의 특성으로 지적된 24항목 가운데에 참으로 일본적인 것은 다섯 손가락을 꼽기 어렵다. 젓가락질을 비롯하여 읽기를 먼저 배우고 그 다음 쓰기를 배운다는 것, 어린 소녀가 늘 애기를 업고 다닌다는 것 등등은 한국의 아동 풍속과 조금도 다른 것이 아니다. 한국을 모르는 프로이스의 견문으로는 어느 것이 과연 일본인만의 특성인지 식별하기 힘들 것이다. 점보 제트기 시대가 되었어도 이런 사정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일본이 경제 대국이 된 것은 일본인의 단결력에 의한 것이며, 그 획일주의적 공동체 의식을 낳은 것은 애를 업어 키우는 일본의 육아법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설이 현재에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애를 업어 키우는 한국은 그런 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제 대국이 되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리고 좀더 수준 높은 문화론이라 해도 프로이스의 그런 관점은 루스 베네딕트로 이러지고 있다. 좀더 추상적이기 때문에 전문가 아니면 언뜻 식별하기가 어렵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일본 문화론의 고전이 된 베네딕트의 대표작 『국화와 칼』에는 인정의리라든가 수치의 문화 그리고 체면을 존중하는 육아 교육법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유교의 문화, 한국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가 모두 일본 것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본 문화의 뿌리와 그 수원지를 잊어버린 일본에서는 젓가락이 일본적이라는 논법과 비슷한 『아마에의 구조』가 나오고 『종적(縱的)인 사회』가 나왔다. 종적인 사회의 구조에서 자주 언급되는 그 장유(長幼)의 서열 의식을 일본의 독특한 경어법에서 구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은 경어의 본고장은 한국이다. 중국에 경어가 별로 없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것으로 나카무라 씨는 일본 불교 의식의 특성으로 삼으려 했지만, 한국의 경어법은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세밀하고 복잡하게 발달되어 있다. 영어나, 중국어를 가지고 볼 때 분명히 일본은 경어를 사용하는 나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밥 처먹어라.’에서 수라를 드시옵소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말의 계단이 있는 한국말을 생각하면, 경어가 일본적인 특성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의 말문은 막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자야 벤더산이 일본인인가 유태인인가라는 것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유태인』을 쓴 저자가 양고기와 쌀을 대응시켜 일본적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한 어느 쪽이든 쌍방의 사고 방식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일본인이 서양 사람과는 다른 관점에서 일본적 특성을 발견하려 한다면 한국이나 동양의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서양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이 한국 사회를 자세히 연구했다면 일찍이 한국 동네에는 젊은이의 집단이 마을의 지배권을 장악하는 와카슈주쿠같은 체제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인의 인간 관계가 종적(縱的)인 것보다도 오히려 횡적(橫的)인 데 보다 강한 특성을 지닌 사회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일본이 연령 서열을 존중하는 종적인 사회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서양 사회와의 비교일 뿐 동북 아시아 문화권과 견주어 보면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 모른다. 한국어를 좀 알고 있었다면 도이교수는 아마에보다도 독립심을 강조한 일본어의 다이죠부 大丈夫하다카잇칸이라는 말의 독특한 말들에 주목했을지 모른다. 왜냐 하면, 같은 한자를 사용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괜찮다는 의미로서 大丈夫라는 한자를 쓰는 일이 없다. ‘大丈夫남자이외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 것이다. 하다카잇칸이라는 말도 한국어에는 없다(비슷한 ‘ x x 두 쪽 ……’ 운운하는 표현이 있으나 그것은 긍정적인 뜻이 아니다). 일본인은 중국인이나 한국인과 똑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또 유불선(일본에서는 神道) 삼교를 공존시키는 거의 같은 종교 생활을 하면서도 그리고 유사한 언어, 밥을 먹는 도작(稻作) 문화의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일본만이 혼자 근대화에 앞장설 수 있었나. 어째서 일본만이 홀로 공업 경제국으로 구미 문화와 같은 대열에 낄 수 있게 되었는가.’ 이것이 서양 사람의 질문이며, 또 일본인으로 본다면 탈아시아적인 자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본적 특성은 서양 사람과의 차이점보다는 같은 동양인인 한국인이나 중국인과의 차이점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관심은 그 점에 있으면서도 막상 일본을 논할 때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의 일반적 특성을 한보자기에 싸잡아 일본의 특성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시인 길버트는 다실 뜰에 꼬불꼬불 박아 놓은 징검돌을 보고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자연미를 사랑하는 심미적 국민이라고 칭찬한 일이 있다. 집 문에서 방까지 최단 거리로 가려면 직선이어야 한다는 서구인과 달리 일본인은 구불구불한 비기능적인 길(도비이시)을 만들어 여러 시각(視角)에서 정원을 감상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의 눈에는 그 길이 결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인공적이고 획일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자연과 융화하여 살려는 한국인의 눈에는 도비이시라는 인공적 길을 만들어 놓은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람은 제가끔 다른 보폭(步幅)이 있고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 그것을 미리 돌을 놓아 똑 같은 보폭, 똑 같은 방향으로 걷게 한 것은 획일적이고 부자유스러운 인공적 발상이다. 아피아 가도처럼 길을 직선화한 인공적 문화 속에서 자란 서양 시인에게는 도비이시가 자연미의 결정(結晶)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걸으면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의식을 갖고 자라난 한국 시인에게는 그야말로 인공미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풍토론적(風土論的) 사고의 한계

 

 그것은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라고 간단히 풍토론을 끄집어 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인의 의식 속에 자신의 나라가 섬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 지도가 보급되고 서구 문명과 접촉한 이후에 보편화된 이미지일 것이다. 일본인의 특성을 섬나라 근성이라는 말로 표현한 최초의 사람은 메이지 유신 후 유럽을 순유하고 돌아온 구메 구니다케라고 한다. 그것도 오늘날과 같이 쩨쩨하고 작다는 뜻을 지닌 섬나라 근성이 아니라 넓은 바다로 나가는 넓은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실은 일본이 좁은 나라, 바다에 둘러싸인 섬나라라고 감각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 땅덩어리가 작은 것이 아니다. 대륙에 접해 있다고는 하나 세계 3위의 산악국이며, 좁은 분지의 한국보다 더 널찍한 공간, 소위 지평선이 보이는 곤센겐야와 무사시노의 들을 가진 나라다. 가령 섬나라라는 의식이 예부터 일본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일본 문화에 나타난 축소지향성을 그리 간단하게 풍토론으로 처리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섬나라라도 영국의 문화 형태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대륙이라고 부르고 있는 프랑스, 독일에 비해 사물의 스케일이나 사고 방식이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다. ‘축소가 아닌 오히려 확대의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일곱 개의 대양을 지배한 섬나라 영국 쪽이다.

 

 

 바다에서 게까지의 수축(收縮)

 

 동해의 작은 섬 갯벌 흰 모래밭에 내 눈물에 젖어 게와 노닐다.

 

 이것은 일본 문학을 잘 모르는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가 이다. 이 시를 에워싸고 있는 고독감은 일본인 특유의 정서라고 할 수만은 없다. 다쿠보쿠의 감상주의는 일본인보다 오히려 나라를 잃은 식민지 시대의 한국인에게 크게 어필하는 힘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쓰메루라는 동사의 세계

 

 도시락형 축소지향의 특색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넓고 큰 밥상을 몇 분의 일로 축소시켜 호카이나 와리고 같은 조그만 그릇 속에 음식물을 담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축소하다쓰메루(꽉 죄어서 채운다는 뜻)’는 동의어가 된다. 그러므로 축소에는 쓰메루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향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얼른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 같으나 일본인들이 잘 쓰는 이 쓰메루라는 평범한 말이야말로 갖가지 일본 문화를 길러 낸 아메바라고 할 수 있다. 벤토와 오리즈메(직역을 하면 꺾어서 빡빡하게 채운다는 뜻)는 동의어로 사용되나, 이것은 반드시 음식물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일본인은 무엇을 보면 곧 쥘부채와 같이 접어 버리거나, 이레코처럼 한 곳에 차곡차곡 끼어 넣거나, 아네사마 인형처럼 수족을 떼내어 단순화하려고 하듯이, 퍼져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좁은 곳에 빽빽하게 채워 넣으려 한다. 그러므로 쓰메루라는 말은 일본인이 그들 문화의 특성으로 내세우고 있는 아마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함축 하고 있다. 우리와는 달리 일본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쓰메아우이라고 한다. 그저 모이는 게 아니라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꽉 들어찬 느낌을 준다. 어느 장소에 고정적으로 배치하여 근무하는 것도 쓰메루라고 하며, 그 장소를 쓰메쇼(대기 장소)라고 한다. , 연극이나 소설에서 긴장감을 나타내는 클라이맥스를 오오즈메 라고도 한다. 도시락 문화와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쓰메루에 꼭 들어맞는 말이 없다. 억지로 맞추자면 빈 곳에 무엇을 넣는 채우다의 말 정도이다. 그러나 원래 채우다는 일본어로 이레루’, ‘미다스이고, 쓰메루는 일정한 틀 속에 죄고 다져서 빽빽하게 끼어 넣는 것으로 채우다와는 근본적으로 그 강도가 다른 말이다. 일본에서는 1천 자 안의 상용 한자에 들어가 있는 ()’자가 한국에서는 힐책(詰責)한다와 같은 말 이외에는 별로 잘 쓰이지 않는 생소한 글자이다. 그러므로 간쓰메를 한국어로는 통조림이라고 하여 쓰메루대신 조리다라는 말로 바꿔 놓고 있다. 쓰메루라는 것은 퍼져 있는 것들을, 산재해 있는 것들을 일정한 공간에 치밀하게 밀집시켜 놓는 것이다. 그래서 스페이스를 줄인다. 이 같은 형태의 축소지향에서 우리는 오늘의 트랜지스터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자 제품을 개발한 일본인적 발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쓰메루는 물체만 아니라 정신면에서도 그와 동일한 작용을 하고 있다. 일본인이 사람을 칭찬할 때 곧잘 싯카리시테이루라는 표현을 쓴다. 그것은 정신이 하리쓰메테이루’, 즉 정신이 팽팽하게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음식을 채우면 도시락이 되고 마음을 채우면 착실한 사람이 된다. 과연,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는 소시민들은 정신도 아주 착실한 도시락 사나이일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인은 그저 미루(보다)’, ‘오모우(생각하다)’,’이키오스우(숨쉬다)’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좀더 진지하게 열심히 하려는 경우에는 반드시 거기에 쓰메루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보다는 미루에서 미쓰메루가 되고, ‘생각하다는 오모우에서 오모이쓰메루’, 숨을 죽이다이키오쓰메루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 일본인의 기술과 정신은 쓰메루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일본말에서 시시한 것’, ‘보잘것없는 것을 의미하는 쓰마라나이란 말은 쓰메루할 수 없다는 뜻(채워지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쓰마라나이(시시한 것)’의 원의(原意)를 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동네 집단의 틀에 채울 수(쓰메루) 없는 사람은 무라하치부라 하여 따돌림을 받고, 회사의 울타리 속에 쓰메루할 수 없는 사원은 마도기와족이 되어버린다. 형식상으로는 개인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나라지만, 조금만 그 내용을 따져 들어가면 지금도 일본인의 사원 교육은 옛날 군국 시대처럼 정신이나 지식을 쓰메코미(주입식)’식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수가 많다. ()의 깨달음 역시 정신을 자꾸 쓰메루해 가다가 이제 더 이상 쓰메루할 수 없어 독안에 든 쥐처럼 극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득도하게 되는 방법이다. 자아의 고유성과 개개인의 다양성 위에 세운 것이 서구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개인을 집단이라는 틀 속에 쓰메루(이것이 일본인 특유의 단결력이라는 것이지만)’ 해서 처음으로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들이 온 국민을 한 묶음으로 하여 일억총평론가(一億總評論家)’일억총백치(一億總白痴)’니 하는 표현을 잘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쓰메루문화의 한 단면이다. 1억을 마치 한 사람으로 축소시켜, 도시락통 같은 한 틀 안에 쓰메루하는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은 이상하게도 동양에서는 유일한 자유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인들 쪽에 많은 것이다.

 

 

 얘기가 좀 빗나가는 것이기는 하나, 무가 사회의 전통을 지닌 일본문화는 누가 뭐라 해도 칼()의 문화이다. ‘일본도(日本刀)’가 장식물이 된 오늘날에도, 일본말 속에는 여전히 그 칼과 연관된 숙어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배신을 우라기리라 하는데, 그것은 뒤에서 칼로 찌른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생선토막이라 하지만, 일본에서는 칼로 벨 기리미라고 하고, 뭔가 산뜻한 맛을 칼로 베는 감각에 비교하여 기레아지라 한다. ‘깃테(우표)’, ‘기리메’, ‘기리모리등 칼로 자른다는 ()’자가 붙어 다니는 말은 삼태기에 쓸어 담을 정도로 흔하다. 그리고 옆에서 돕는 것을 스케다치라 하는데 문자대로 표현하면 사람을 자르는 긴 칼(大刀)로 도와준다는 말이다. 진지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신켄 이란 말은 원래 나무칼이 아닌 진짜 칼이라는 뜻이었다. 진짜 칼로 싸우면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프로를 봐도 에도를 자르다’, ‘어둠을 자르다등의 시대극은 물론 좌담회나 해설에서도 ‘ OO를 자르다라는 표현이 흔히 쓰인다. 일본에 와서 얼마 안되었을 때 동대생(東大生)을 자르다라는 신문의 표제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물론 동대생의 의식 조사에 관한 기사이다. 붓이 지배하는 선비의 나라 한국에서는 원고를 제 시간에 대는 것을 마감이라고 하지만, 칼이 지배한 일본에서는 시메키리 라고 한다. 문자대로 읽으면 죄어서 자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이자를 단지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 한 인간 공학적 문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문화란 최초에는 모두 실용적인 필요성에서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계속 발전 유지되어 가는데는 실용성 이상의 다른 정신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세이자가 단순히 좁은 공간을 이용하려는 인간 공학적 산물이었다고 한다면 다실 이외의 넓은 장소에서는 그렇게 앉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 그대로 그것이 정식(正式)의 좌법이 된 것은 그렇게 앉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적성에 맞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이자를 하면, 마치 차를 마셨을 때의 카페인의 자극처럼 정신 역시 또렷해진다. 농밀(濃密)한 녹차가 생물로서 나타난다면 아마 세이자와 같은 자세를 하고 앉을 것이다.

 

 

 일본의 문화도 그 점에 있어서는 흡사하다. 단지 그들이 넓은 광장에 서서 부동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때, 일본인은 4조 반의 다다미 위에 앉아서 부동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점만이 다르다. 평균 10년에 한번씩은 전쟁을 치러 왔다는 거센 역사 속에서 살아오면서도 한국인의행동 패턴은, 릴럭스 문화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잘 쓰이는 말은 차렷이 아니라 풀다라는 말이다.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한 것으로 여러 가지 분야에 쓰인다. 뭔가 막힌 것, 굳어 있는 것, 긴장된 것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말하자면 부동 자세와는 정반대로 모든 긴장을 푸는 자세인 것이다. 재미있는 일로 한국인은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본 사람처럼 간바레(힘내라)’, ‘기오쓰케테(정신 바짝 차려!)’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푹 놓고하라고 한다. ‘기오쓰케테라는 말은 일본에서처럼 인사나 격려의 말이 아니라 상대를 꾸짖거나 비난하거나 할 경우에 흔히 쓰인다. 그러나 일본인은 군대와 같이 차렷!’의 구령으로부터 행동이 시작된다. 일본의 고교 야구에서는 시합 전의 선수들이 벤치 앞에 세이자를 하고 있는 것을 이따금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 거꾸로 마음이 안정되는 모양이다. 한국인의 힘은 버들처럼 흔들거리는 유동성에서 말하자면 풀어주는 데서 힘이 생기고, 일본인은 거꾸로 세이자처럼 바싹 죄는데서 힘이 솟는다. 군대만이 아니라 노, 가부키 등 모든 예의 수업은 세이자의 앉은 기본 동작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인은 무엇인가 일을 하려면 몸부터 죄었던 것이다.

 

 

 죽음과 사형수의 시선

 

 차를 마시는 것은 어느 나라 문화에서든 놀이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치고이치에즉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만남이라고 새악한다면, 단순한 놀이에서 그칠 수는 없을 것이다. 뭔가 진지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에도, 일거수일투족의 행위에도 적당히는 통할 수 없다. 몸을 팽팽하게 갖는 그 세이자에 의해 정신을 집중시켜 가다듬듯이, 시간을 한 순간에 함축시키는 이치고이치에로써 마음을 무장한다. 일본인은 놀 때도 이렇게 전쟁을 하듯이 목숨을 걸고 한순간 한순간의 긴장을 돋우어 가는 것이다. 정신의 축소지향 문화라 할 수 있는 그 이치고이치에의 경지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죽음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 5분 전의 체험을 『백치(白痴)』의 한 장면에 남기고 있다. 그 구절을 읽으면 누구라도 가슴이 찡해진다. 보통 사람에게는 언제나 다시 볼 수 있는 것이니까 눈앞에 있는 것들을 그저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수가 많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두 번 다시 못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물방울 하나에도 녹슬은 지붕 위에 비치는 햇살과 구름 한 조각이라 할지라도 무심히 바라볼 수가 없을 것이다. 티끌 하나도 온몸으로 느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사형 체험이야 말로 러시아에 있어서의 이치고이치에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피부로 느끼는 촉각형 인간

 

 말은 4조 반이라고 하나 막상 손님들이 와서 앉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도 다다미 두 장뿐이다. 왜냐 하면, 다도의 법도는 다다미까지도 세분해서 귀인 다다미, 손님 다다미, 도구 다다미, 후미이리(밟고 들어가는) 다다미로 되어 있어 실제로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훨씬 좁다. 그것도 4조 반의 경우이고, 리큐의 1조 다이메의 다실은 더 비좁다. 그래서 설사 원수끼리라 할지라도 다실 안에서는 별수없이 바짝 다가앉아살을 맞대지 않으면 안 된다. 손님 가운데 순위가 제일 마지막으로 되어 있는 사람을 쓰메갸쿠(밀어 넣는 손님)’라고 부르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세이자의 문화와 마찬가지로 다실의 압축되고, 한정된 공간에서 만들어 낸 것이 일본의 요리아이 문화요, 후레아이 문화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인처럼 피부로 느낀다.’든가 서로 만진다.’든가 하는 촉각 언어로 인간 관계를 나타내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영어나 불어에서도 ‘touch, toucher’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이것이 본래의 말 이외로 쓰일 때는 인간 관계보다 감동을 표현하는 심리 용어가 된다. 그러나 후레아이노 마치(피부를 맞대는 도시)’처럼 인간 관계는 물론 거대한 도시와의 관계까지도 후레루라고 말하는 일은 없다. 더구나 한국어에는 일본어의 하다에 꼭 들어맞는 말 자체가 없다. 외연적인 의미로 하다는 피부를 뜻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그 뉘앙스는 한국어의 살에 가까운 뜻이다. 그렇다 해도, 살을 맞댄다는 표현은 섹스 이상의 인간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어에서는 이성 관계에 있어서뿐 아니라, ‘그는 마음 속에 무서운 데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좀처럼 살을 허용할 수 없다.’와 같이 마음을 준다든가 신용한다든가 하는 넓은 뜻으로 사용하는 일이 많다. 또 남의 일에 진력하는 것을 히토하다 누쿠(살을 벗어 준다)’라고 한다. 하다가 아우(살이 맞는다)’라는 말은 아무래도 에로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일본에서는 자기와 마음이 맞는 사람을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스즈키 수상과 레이건 대통령이 오타와 사밋트에서 회담을 가졌을 때 일본 신문들은 일제히 하다아이(살을 맞댐)’, ‘후레아이(살을 대는 것)’ 등의 표제를 달고 있었지만, 이것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이상한 말이 되어 마치 호모관계처럼 들릴는지도 모른다.

 

 

 3종의 신기(神器)와 일본의 소비자

 

 일본인이 서구 문명을 재빨리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 중의 하나로 서양에서 건너온 박래품에 대한 이상적 호기심을 들 수 있다. 관념적인 면에서 볼 때에 서양 문화는 기독교이고, ‘물건으로써 생각해 보면 뭔가를 만드는 기술이다. 일본인은 유신 이래 문어의 흡반(吸盤)처럼 서구 문화에 달라붙어 놀랄 만한 힘으로 그것을 빨아들였으나, 기독교는 끝내 큰 세력을 구축할 수 없었다. 사비에르는 인도에서 한 달 동안 만 명이나 세례를 주었지만, 일본에서는 2년 반 동안에도 천 명의 신자를 만들지 못했다. 오죽 혼이 났으면 사비에르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겠는가. 그와 반대로 한국은 서양 문화의 모노를 만드는 기술보다는 기독교와 같은 정신 문화를 더 많이 받아들였다. 차스키의 도구애는 일본인의 관광 여행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찾아가는 나라의 역사나 풍습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나라 사람이 무엇들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추상적인 물음보다도 그들은 거기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을 산다.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 그 나라에서 물건을 삼으로써 그 이미지, 그 풍속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오미야게문화이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오미야게를 산다는 것은 바로 그 지방, 그 나라를 배우고 이해하는 방법이다. 오미야게를 사서 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바로 자기가 여행하고 돌아온 체험담을 대신해 주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이해도 물건으로 하고 표현도 물건으로 하는 것이다. 한 지방의 풍물, 풍속, 정신, 복잡다단한 인정심을 그 지방에서 나오는 상징적인 토산물 하나로 모두 압축시켜 손안에 들고 오는 그 오미야게야말로 축소지향의 대표적인 문화가 아니겠는가? 매년 고시엔 에서 고교 야구가 열리고 전국에서 선수들이 모여드는데, 그들이 돌아갈 때에는 고시엔 야구장 흙을 한 움큼씩 넣어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다. 그것 역시 오미야게문화의 현대적 유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쇠를 가지고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 잘 드는 일본도(日本刀)를 만들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잘 울리는 에밀레종을 만들었다. 칼로 쌓아 올린 역사의 그 그늘에는 반드시 누군가 그 칼에 잘려 피를 흘려야만 한다. ‘주판으로 돈을 버는 역사에서 반드시 빼앗기고 손해를 본 사람의 눈물과 배고픔이 넘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은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다. 그 울림은 오직 생명 같은 감동을 줄 뿐이다. 그러므로 종이나 고토로 얻은 승리와 영광은 만인의 것이다. 아무도 그것 때문에 피를 흘리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고토를 타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거기에는 함께 어울리는 융합이 있다. 이 희열의 공감, 칼이나 주판과 달리 나눌수록 오히려 그 공감이 풍부하고 강하게 되는 힘 위에 나라의 번영을 쌓아야 한다. 에도 바쿠후 말기에 가와이 게이노스케가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자네들은 사무라이가 되지 말고 상인이 되거라.’ 그 충고 때문인지 지금의 일본인은 모두 조금씩 상인이 된 것 같다. 문화인도 정치가도, 과학자도……. 그리고 해 돋는 나라엔이 솟아오르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말이 생각난다. 이 지구상에는 기아 지대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아프리카며, 또 하나는 일본이다. 전자는 물질적인 기아고, 후자는 정신적인 기아다. 온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사무라이의 칼이 아니라, 료안지와 같은 아름다운 세키테이다. 그런 정원을 만들고 맑고 고요한 다실 문화를 낳은 일본인, 설사 역사를 피로 씻은 사무라이 사회의 살육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속죄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꽃의 문화를 만들어 낸 일본인…… 그러한 일본인들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한번도 그 주인이 되지 못했다. 칼을 가진 자와 주판을 가진 자만이 역사를 지배했던 것이 일본의 비극이었다. 이제부터 군사 대국’,’경제 대국이 아니라 문화 대국의 새 차원으로 역사를 이끌어가야만 확대지향도 제 빛을 차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축소지향력은 정원을 만들고 다도(茶道)와 화도(華道)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트랜지스터를, 전자 탁상 계산기를 만들었다.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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