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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와 우물

1. 광장의 불빛이 꺼지면 갈채는 먼지처럼 흩어지고 만 명이 외치던 이름 석 자는 새벽 세 시의 방 안을 채우지 못한다 제 쓸모를 증명하려 평생 성벽을 쌓았으나 마침내 오른 탑의 꼭대기엔 추방을 두려워하는 늙은 파수꾼 하나 2. 타인의 목마름을 채우려 제 우물의 물마저 다 퍼 올리고 모두가 떠난 우물가에 앉아 제 목소리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3. 갈채를 마셔도 우물을 비워도 바닷물을 들이킨 입술은 하얗게 마를 뿐 4. 벗을 수 없는 가면은 살점이 되고 손에 쥔 것들은 모래가 된다 평생 지켜온 이름 하나 어둠 속에서 희미해진다 아무도 떠나지 않았는데 지킬 사람이 없다. - 2026. 9. 8. 초고 / 10. 18. 탈고

이마까라 니홍고 2026년 10월호 발행(VOL.25) : 쾌속보다 각역정차

1.가을이 느껴지는 지금, 장어(鰻, うなぎ, 우나기) 이야기를 꺼낸 건 우연이 아닙니다. 무더위에 떠밀려 먹는 여름의 관성적 보양식이 아니라, 기름이 오르기 시작하는 제철(旬, しゅん, 슌) 장어의 계절은 지금부터니까요. '마사오' 따위는 감히 먹을 수 없는 가격의 천연 장어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그게 뭔 상관.2.일본의 노선도는 끝 모를 복잡성을 자랑합니다. JR과 도쿄메트로의 관할이 맞물린 아야세(綾瀬, あやせ)역의 경계선처럼, 삶의 노선도 매 순간 갈아타기(乗り換え, のりかえ, 노리카에)와 이어 타기(乗り継ぎ, のりつぎ, 노리츠기 - 목적지까지 버스, 지하철, 비행기 환승 등으로 이어 타는 것)의 연속이지요. 길이 헷갈릴 땐 쾌속(快速, かいそく, 카이소쿠)의 속도전에 취하기보다, 모든 역을 하나..

시골농부의 깨달음 수업, 자기강화 3 - 왜 이곳은 가상현실 세계인가

35p대기압은 신체에 압력을 가하지만, 대기압이 없는 상태와 비교된 적이 없으므로 대기압은 경험으로 인지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제공받은 시공간과 문화라는 프레임을 통하여 사전에 규약된 관념들만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이런 식으로 학습 유전된 경험 관념의 총합입니다. 대부분의 관념은 이전에 살던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어 전해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재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사람들이 개념화한 세계를 공진(共振)하여 인류 특유의 해석된 세계로 보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현상계는 가상현실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제 개인적인 추론이 아니라 최근에 충분하게 밝혀지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입니다. 경험맹에는 '나'도 포함됩니다..

이마까라 니홍고 2026년 9월호 발행: 멜론빵의 마침표와 남탓 문법

1.징글징글하게 이어졌던 멜론빵(メロンパン, 메론팡) 대장정이 7번째 시간으로 막을 내립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나의 커스터드 멜론빵(ぼくのカスタードメロンパン, 보쿠노 카스타-도 메론팡)’부터, 편의점 3사의 흉악한 멜론빵 전쟁까지 탈탈 텁니다. 세상이 뭐라 손가락질하든 나는 ‘멜론빵’이라 참칭하며 버티는 그 뻔뻔함, 흡사 마사오와 같다할 수 있겠습니다.2.문법 및 스토리 편의 수동표현(受身, うけみ, 우케미)에선 ‘간접 수동’을 지나 ‘사역 수동(せられる·させられる, 세라레루·사세라레루)’으로 진입합니다. 억지로 ‘조수를 시킴당한’(助手(じょしゅ)にさせられた, 조슈니 사세라레타) 죽돌의 애환을 통해 한국인에게 낯선 ‘수동’의 심연에서 머리가 깨져 봅시다. 간접 수동과 사역 수동을 장악하면 남탓을 우아..

거센 불길이 지나간 뒤엔

1. 판이 뒤집힐 때 가장 먼저 표적이 되는 이는 한쪽 편에 선 사람이 아니다. 가장 많은 패를 본 사람이다. 2. 아는 것을 말해 문제를 바로잡고 싶다는 욕망을 이겨낸다. 타인을 움직일 시간에 자신을 움직인다. 3. 중간자는 착각한다. 자신의 선의가 양쪽에 통할 것이라고. 대개 각자의 의미로 해석될 뿐이다. 4. 폭풍 속에서 우산의 역할을 맡은 자는 먼저, 우산의 크기를 확인한다. 5. 거센 불길이 지나간 뒤엔 누가 불을 질렀는지보다 누가 이곳을 지켰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6. 비밀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비밀을 안전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7. 남의 의도까지 관리하려는 자는 필패한다. 관리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역할뿐이다. 8. 사람에 기대어 얻은 자리는 사람이 움직이면 무너진..

■   생각 2026.08.28

자아가 비대한 이들은 두가지에 능하다

1.우리는 떨어져 있을 때 다른 언어로 묶인다. 이건 이거대로 좋다. 함께 있을 때 더 풍성해질 테니까. 더 넓은 세상이 보일 테니까. 2.사실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용기를 잃기 쉽고 용기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사실을 잃기 쉽다. 3.세상에 이름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가 선하든 악하든 반드시, 눈에 띄지 않는 문고리 권력이 생긴다. 4.새로운 세상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천재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5.자아가 비대한 이들은 타인의 자아에 깃든 욕망과 결핍을 읽는 데 능하다. 공동체를 위한 합리적인 해결책이 널려 있어도 언제나 자신이 유일한 해결책이길 원한다. 6.누군가가 영웅이라고 착각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웅의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이들의 노력 덕이다. 그들은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음을 사람..

■   생각 2026.08.06

시골농부의 깨달음 수업, 자기강화 2 - 운이 좋다는 것

29p인간들의 능력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이 발휘하는 엄청난 힘은 그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남다른 능력이 아니라, 그 지위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위는 그 자리에 올라선 인간이 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함께 만든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여러가지의 힘과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그는 운이 좋은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여러 가지의 힘과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그는 운이 좋은 것입니다. 자연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운이 좋다는 것은 운이 나쁜 사람들이 희생한 덕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한 처지에 놓여 희생하는 사람들과 생명체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태도를 잊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혜택을 ..

이마까라 니홍고 2026년 8월호 발행: 거장 김성모를 흡수한 이마까라 니홍고

1.본격적인 개편의 포문을 열기 위한 첫 번째 스승은 김성모 작가입니다. 팟빵 교육 분야 1위, 릴스 폭발 따위에 안주할 겨를이 없는 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타협 없는 투혼이라 판단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근성과 야생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삶을 거부하고, 능동의 야생성으로 세계를 향해 직진하는 거장 김성모의 기세, 우리가 흡수합니다.2.능동적 야생성은 스토리·문법 파트인 '수동(受身 우케미)'의 기본기와도 맞물립니다. 세상에 끌려다니는 수동의 삶을 끊어내려면, 역설적으로 수동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지배해야 합니다. 한국어는 ‘~되다, ~당하다, ~받다’ 등 상황에 따라 피동 어휘가 복잡하게 갈리지만, 일본어는 오직 ‘れる(레루)·られる(라레루)’ 하나로 정리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