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 당일, 고향에 남은 오랜 친구와 고등학교를 찾아가 함께 걸었다. 친구는 100만 원 초중반대의 중소기업을 다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월급이 작아 놀랄 사람도 있겠으나 지방에는 이런 직장이 많다. 그마저도 서른 초반이 넘어가면, 상황은 더욱 나쁘다.

2.
한 언론에서 "일반적인" 중소기업 "평균 월급"이 300에 가깝다 하나 2030 세대는 이제 통계의 장난에 화내기조차 힘든 현실과 함께한다. 2030 세대는 자신의 생애에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 차이의 문턱에 서 있다. 나의 친구들이 그렇다.

이 세대가 4050이 될 때 지금의 남북 갈등, 좌우 갈등, 남녀 갈등, 세대 갈등보다 더한, 아니, 이 모든 것은 뒷전이 되어버릴지 모를 근원적 빈부갈등을 겪을 것이다.

이 불평등은 치유가 힘들고 사람의 자존감을 짓밟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서로를 미워할 것이다.

 

201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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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촌과 잠시 함께 산 적이 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집안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재판하던 때로 기억한다(국가범죄의 경우, 피고가 대한민국이 됩니다).

삼촌과 새벽에 잡담하다 나온 말이 남는다.

'조용히 살았더라면...'

2.
삼촌은 '부자'의 경험이 없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진, 있다. 해서 어릴 때 자주 들은 말 중 하나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로 기억한다. 한으로 추측한다. '자기 것'을 잃어버린. 아니, 빼앗긴.

삼촌은 막내였기에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처참했다.

가난, 멸시, 고통, 두려움. 

3.
거부였던 독립운동가 증조부가 이승만의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살해당해 한 번 망했다. 사업가의 재능이 있던 조부가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박정희 정권 하에 빨갱이로 몰려 다시 망했다. 부친이 조부와 함께 평생 대한민국을 상대로 재판, 박근혜 정권 하에 반 세기만에 승소, 다시 일으켜 세우는 중, 정도로, 집안의 역사는 요약된다.

나는 옆에서 보았을 뿐. 윗대가 일궈놓은 열매만을 먹고 살아왔다 생각한다.

4.
인간의 처참함이랄까, 인간의 바닥이랄까, 혹은 가난이랄까. 특히 어미가 자식과 함께 자살을 결심할 정도의 가난을 경험해 본 적 없어 그 마음은 추정이 불가능하다(내 알기로 할머니는 4번, 어린 아버지와 함께 자살하려 했다. 물론 나로선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떠돌이 생활하고 커야했다면.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 범죄자의 자식처럼 살아야 했다면. 가족들 모두 뿔뿔이 흩어져 하고 싶은 거 하나, 먹고 싶은 거 하나 못 먹고살아야 했다면. 나는 알 수 없다.

삼촌은 그랬다.

5.
당시 삼촌은 꽤 고생하고 있었다. 그 말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만약 (윗대가)조용히 살았더라면...'

증조부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부가 정권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삼촌은 아주 다른 젊은 날을 살았을지 모른다.

화목한 가정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유학도 갔을 지 모를 일이다. 가능성이긴 하지만 높은 가능성일 것이다. 물론 더 엉망진창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일은 알 수 없다.

6.
오래전, 백범일지를 보며 적어놓은 문장 중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이라도 팔아 좋은 음식이나 늘 하여다 주면 좋겠다 하는 더러운 생각이 난다"

김구 선생이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배 고플 때 그런 생각이 났다 한다. 깡 하나는 타고난 김구 선생이 그랬다. 하물며 범인은. 하물며 삼촌은. 하물며 나는.

7.
주말을 맞아 문득 청소를 하다, 삼촌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의 약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따위가 강해질 리 없으니 조금은 더 스스로 노력이란 걸 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일단은 바닥 청소를 마무리했다. 

 

 

 

2016.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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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컨텐츠는 좋은 인간을 만나는 것만큼 집중력을 높인다. 그냥, 내게 최근 좋았던 것들이다. 

1. 게임 -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괴이 바이러스로 인간 대부분이 인간성을 잃어버린 후, 유일하게 면역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소녀와 딸을 잃은 한 남자가 겪는 여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게임 속 숨은 쪽지를 찾아 읽으면 탁월함과 깊이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엔딩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2. 그래픽 노블 - Y: 더 라스트 맨

전화로 애인에게 프로포즈 중이던 남자 한 명과 그가 키우던 원숭이 한 마리, 그 외 모든 수컷 포유류가 갑자기 멸종된 세상이 무대다.

스티븐 킹 왈, '본인이 읽은 그래픽 노블 중 최고' 라 평한 바 있다. 조금 호들갑을 떤 것 같지만 호들갑을 떨 만한 작품이다.

3. 연극 -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지루할 틈 없는 것이 제 1의 미덕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실 문제에 세련된 거리감을 둔 통찰, 각본과 배우의 탁월함이 어우러진다. 헤라 역의 한송희 씨 극작이라 더욱 놀랍다. 배우와 작가의 재능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은 축복이다. 말과 글, 동시에 능한 사람 귀하듯.

종영했지만 이 정도 인기면 다시 하지 않을까 한다. 

 

 

2016.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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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촌형은 나보다 7살 많다. 5살 정도까지의 사진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

 

2.
형은 장난이 제법 센 편이다. 나에겐 특히 그랬다.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잡은 후, 창문 밖으로 몸을 끄집어내 잡고 있던 적도 있다. 그럼 몸이 허공에 뜬다. 9층이었다.

어릴 때지만 허공에 발을 띄운 채 본 온천장의 야경이 기억에 남는다.

3.
꽤나 오래 전이다. 형이 새벽에 오토바이를 몰고 찾아와 뒤에 타라 했다. 술 냄새가 심해 말렸는데 듣질 않았다(일단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나만큼이나. 으음.)

막무가내였다. 지금이면 끝까지 말렸겠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대신 사람과 차가 없는 곳에 가기로 했다. 운전 실력이 좋은 탓인지 한 번만 넘어지고 잘 달렸다. 나뭇가지가 얼굴에 계속 부딪쳐 잔 상처가 조금 났다.

어디서 개가 짖길래 오토바이를 멈추고 한참 그 소리를 듣다, 별을 좀 보았다. 그러고 다시 돌아와 헤어졌다.

4.
만담에는 츳코미와 보케가 있다. 표면적으로 츳코미는 공격하고 보케는 방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공수에서 제법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름다움은 믿음에서 나온다.

츳코미는 보케가 어떻게든 받아낼 것을 믿어야 하고 보케는 츳코미가 어떻게든 던져낼 것을 믿어야 한다. 보케가 받아내지 않으면 츳코미는 못된 사람이 되고 츳코미가 던져내지 않으면 보케는 바보가 된다.

5.
형은 웬만해선 마음을 읽기 힘든 스타일이다. 그 마음을 읽어내려면 평소와 다른 던짐에서 짐작할 수밖에 없다.

형은 만담으로 치면 츳코미로 어떤 짓을 해도 이 녀석이면 다 받아낼 수 있다, 는 생각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만담으로 치면 보케로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내겠다, 정도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6.
형이 죽기 전에 부탁을 받아 가방 안에 콜라와 맥콜을 챙겨 간 적이 있다. 말기 암환자라 숨겨서 갔다.

형은 그 순간에도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정치적 성향이나 역사를 보는 관점은 완전히 반대였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일단 던지지 않으면 받아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추신: 형수님 페북을 보다가 어릴 적 형과 나의 사진이 있어 훔쳐왔다. 

 

2016.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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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된다면 여생을 보내고 싶은 곳이 있다. 교토가 그중 하나다. 호주의 애들레이드도 좋다. 넓은 공간에 인간이 많이 없는 편이 좋다.

오후 2시 40분쯤에 여의도에 서 있다고 가정하면 스쳐가는 사람은 3, 4명 정도가 적당하다.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면 제법 시원시원한 풍경이 보이고 어느 정도 쭉 뻗은 거리가 존재해야 한다. 시야에 10명 이상이 들어오면 많다. 개와 고양이는 상관없다.

교토의 외곽이 그러하고 호주 애들레이드가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 연변의 분위기도 좋지만 생활에 불편함 없이 도시가 발달해 있고 식료품이 맛나야 한다는 점에서, 내겐, 제외된다.

교토는 말할 것도 없고 호주는 식료품 천국이다. 각각 장점을 추가하라면 교토엔 온천이 있고 애들레이드는 일정 구간 전차가 공짜다. 어차피 잘 움직이지 않는 인간이니 현재로선 온천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책을 읽다가 으잇샤 하면서 뛰어들 바다가 가까우면 200점 정도 추가되겠지만 인간은 다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따금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것도 재미가 좋다. 

 

2016.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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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텀블러는 꽤 큰 편인데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 2~3잔과 레모네이드 1~2잔 정도를 마신다(여기까지 약 2.5리터다. 사실 레모네이드는 3잔 먹고 싶을 때도 있지만 최근 까페 매니저가 자기 마음대로 양을 제한해 버렸다. VIP 고객의 입장에서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돈을 내진 않지만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 거니까).

녹차를 2~3병(약 1.2리터), 그리고 따로 만드는 녹차나 우롱차를 2잔 이상(약 500미리)마시니, 2.5+1.2+0.5, 하여 하루에 최소 4.2리터 정도의 액체를 섭취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최소치고 식당에서 마시는 물이나 콜라 같은 것은 치지 않았으니 약 5리터 정도의 액체를 매일 마시는 것으로 추정된다.

2.
가설이지만 수분 함유량이 뛰어난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자연 가습기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거의 공기청정기 같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몸에서 증발되는 수분이 미세먼지를 잡아 지면으로 끌어내려 보기좋게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라고 할지, 대기 속의 병원균이나 바이러스를 수분으로 떨어트려 주위 사람의 호흡기 질환이나 병균 감염을 예방하고 있었다,라고 할지,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많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빈틈이 보이는 가설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하니 으쓱한 기분이다. 지극히 평범한 타입이지만 이럴 땐, 의외로 나란 사람은 대단한 사내일지도 모르겠다.

 

... ...

 

으음. 너무 나갔나. 뭐, 잡담이니까. 

 

2016.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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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 때문에 부산지방법원에 왔다. 시간 텀 생겨 아무 법정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2.
하나는 강간치상이다. 재판 내내 눈물 닦는다.

평생 제가 성범죄자인 걸 생각하고 살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피해자는 그의 지인이다. 강간은 두 번째다.

 

2.
하나는 중감금치상이다.

제가 10년을 살든 20년을 살든 관계 없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밝혀주십시오.

십 수억 돈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 동료 혹은 본인이 돌봐준 사람이라 주장하는 이에게 한 일이다. 당당하다.

 

3.
하나는 살인미수다. 내내 아래를 쳐다본다.

할 말이 없습니다,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화가 나서 상대를 칼로 찔렀다, 띄엄띄엄 말한다.

 

4.
강간치상은 하얀 얼굴에 뿔테를 낀 평범한 학생, 살인미수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2016.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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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다. 단 것이 당긴다. 아이스크림 사러 편의점에 간다.

돌아오는 길.

 

검은 운동화, 진갈색 골덴바지, 우스꽝스러워 보일 만큼 도타운 초록색 잠바, 검은 마스크에 검은 귀마개, 녹색 모자 쓴 사람이 아파트 현관에 있다. 함께 들어간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그는 신문 한 움큼 끼고 있다.

먼저 걸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얼굴을 본다. 마스크와 모자 틈 사이, 김 서린 금테 안경이 있다. 그 뒤에 노인이 있다. 나는 나의 집 층을, 노인은 맨 윗층을 누른다.

노인은 쭈그려 앉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국경제와 조선일보를 따로 놓고 한부씩 반으로 접고 쌓아 올린다. 

대부분 인간이 그렇듯 나 또한 20년 넘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생각을 반복한다.

때때로 마주치는 장면 속, 생각만으로 이룰 수 없는 그 답의 작은 조각이 있다.

 

 

2016.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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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가 놀러 왔다. 거실을 쭈욱 보더니

"1년 반동안 우리 집에서 살면서 가장 더러울 때도 이거보단 깨끗하다."

"이 정도면 깨끗한 건데"

사진을 찍어서 증명하고 싶지만 크게 어지러운 편은 아니다.

"이럴 수는 없지."

이.럴.수.는.없.지. 좋은 대사다. 상대방의 철학 근간을 흔드는 단호함이 팩트와는 별개로 마음에 들었다. 

"보통의 인간은 이 상태로 사람을 부르지 않아. 난 적응됐으니까 괜찮은 거고. 대충 뭉텅이로 20가지는 지적할 수 있다. 세세한 건 100가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식탁 위의 주거 물건은 없애야 한다, 바지는 여기 있는 걸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저 앞의 짐은 치워야 한다고 생각해, 이건 제자리에 있음, 등 지적질이 시작되었다. 싱크대 위의 물건은 인정해 주었다. 20가지를 지적할 줄 몰랐는데 정말로 20가지를 지적하는 것도 훌륭했다.

책장을 한참 보더니

"으음. 이왕이면 책이 좀 서 있으면 어떨까 싶어"

라 말했다.

역시 좋은 대사다. 1국은 단호함으로 치더니 2국은 비껴 쳤다. 상대방의 체면을 세우고 동의를 구한다......라고 보통 생각하겠지만 1국 뒤에 오는 연타라는 점, 그러니까, 마치 제의하는 듯하지만 아래에서 위로 상대방을 내려다보며 스타일의 근간을 흔드는 절륜한 연타.

 

앞에서 "이럴 수는 없지", 를 복싱에 비유하자면 턱을 쳐 뇌를 흔든 것, "으음", 은 연달아 오는 잽, "이왕이면"은 가벼운 왼손 스트레이트, "어떨까 싶어", 는 갑자기 들어오는 따가운 플리커 잽이다.

이 친구는 츳코미의 재능이 있다. 대부분 귓등으로 다 흘려버렸지만 지적질의 스타일이 괜찮다.

2.
머리 지적질도 했다. 언제나 부스스한 자다 깬 머리라고 평했는데 살면서 본 내 머리 중에 가장 괜찮다고 이어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야 인간의 머리 같다" 고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친구의 말이지만 그래도 칭찬이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3.
친구가 샤워를 하는 중이라 몰래 적고 있는데 이제 옆방으로 자러 갔다. 보편적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 볼까 한다. 자기 전에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이 좋다...... 는 아니고 주말이니까 이런 잡담도 괜찮지 않을까. 

4.
대개의 남자들이 그렇듯, 평소에는 사회생활이랄까, 주위의 시선이 있기에 전혀 그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다짜고짜 때리고 도망가거나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며 장난을 치는 법이다. 가족 중 한 명이 개망나니면 그걸 가지고 집요하게 놀리듯 말이다. 어릴 때부터 많은 일을 공유하고 함께 겪었기에 가능한 일이랄까.

 

친구란 이렇게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판다.

5.
친구들 대부분은 의리도 없고 인간성도 나쁘다. 무엇보다 기본이 덜 되었다. 안재우 같다고 할까, 장원준 같다고 할까. 뜬금없이 이름을 등장시켜 미안하지만 그냥 예를 든 것이니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학창 시절이나 군대에서 만난 친구들은 정신적으로 문제도 많고 평행우주에서조차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인 경우가 보통이다. 인간은 계산을 하고 만나야 하는 것인데 철이 늦게 들어 포기했다.

GDP에 도움도 안 되고 우주의 기운도 못 모으는 녀석들이라 밖에서 만나면 부끄러워 모르는 척하고 싶을 때가 많다. 누가 보지 않고 있거나 사법체계가 허술하면 어디 묻어버리고 도망가고 싶다. 


다만 이들이 내게 묘한 매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예비 배우자를 데려왔는데, 걔가 나의 친구라면, 나의 피와 뼈와 살과 딱히 필요 없는 몇몇 필진이나 여하튼 그런 거라도 바쳐 막을 테지만, 다행히 여동생도 없고 누나도 없으니 어쨌든 친구 정도로는 나쁘지 않은 게 아닐까. 이리저리 잡생각을 해보는 새벽이다.

이 나이쯤 되면 이런 쓸모없는 친구들도 다 보듬고 짊어지고 가게 마련이다. 


과연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2016.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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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장은 방통대 근처에 있어 택시를 타면 보통 방통대 뒤쪽이요, 라 말한다.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는 방통대를 1년 다녔다 했다. 일하시면서 공부하시기 힘드셨겠다, 하니 기사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학력고사를 잘 쳤는데 집안 사정 때문에 등록금을 대줄 수 없어 바로 돈을 벌러 갔다 한다.

1952년생 장남. 동생 두 명과 자식 두 명을 자기가 벌어 대학에 보냈다. 젊은 날엔 일만 해서 별로 기억이 없다.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젊을 적 찍은 유일한 증명사진은 수탉이 바짝 얼어 찍은 듯한 군대 증명사진이다.

지난 추석 때 어머니 앞에서 동생들과 어릴 적 이야기를 하다 펑펑 울었다 한다. 어머니는 그래, 많이 울어라 했다 한다. 지금은 마트에 가면 질 좋은 이천쌀과 그냥 쌀을 두고 뭘 살까 고민하는 정도라 한다.

 

 

201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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