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이 정반대라 일컬어지는 두 신문을 구독한다. 아침은 문밖의 신문 2부와 배달된 녹즙을 가져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관심있는 사안이 터지면 종합일간지 신문과 시사 주간지를 사서 비교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그런 게 재밌다.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사진이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것이 인물 이야기다. 그 놈은 생긴 게 재수 없다느니, 얍실하게 생겼다느니, 못생겼다느니 하는 말들 말이다. 인간이기에 이성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삶의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인상 속에서 어느 정도 됨됨이를 읽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이 정도가, 그러니까 아무리 생김새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왜곡된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예쁘게 보일 수 밖에 없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그 반대이니, 이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언론이 그에 미친 영향 또한 빠질 수 없다. 신문을 유심히 보면 분명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찍은 사진인데 묘하게 다르다. 나처럼 성향이 다른 두 신문을 받아보는 사람이라면 1달안에 확연히 느낄 수 있다. 100% 꼬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신문이 좋아하는 인물과 좋아하지 않는 인물, 흔히 말하는, '기자가 안티'라는 우스개 소리가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란 사실이 확연히 다가온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인데도 한쪽은 매우 온화하고 멋지게, 한쪽은 매우 표독스럽고 얍실하게 보인다. 또 한쪽은 진실성 있게 웃는 모습으로 또 한쪽은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으로 보인다. 싫어하는 이와 좋아하는 이가 함께 찍은 사진일 경우, 각도와 구성을 절묘하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쪽에 유리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맞춘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이것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지적해도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이런 사진을 보는 횟수가 몇년쯤 쌓이다 보면 독자는 그 사진을 선택한 사람의 의도에 어느 정도 지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장의 사진 중, 신문에 실릴 사진을 선택하는 것은 각 팀의 長이고 편집국장이 최종승인을 때린다. 결국 신문의 메인이 되는 사진이 그 신문의 전체적 방향을 결정하는 한방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사진을 유심히 보자. 기사의 내용과는 좀 달라 보이는 사진이 함께 있다면, 더욱 유심히 보자. 기사보다 사진이 진짜 의도일 경우가, 내가 보기엔,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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