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대학원 2차 면접을 위해 읽었던 책이다. 3번 읽었지만 면접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이 책과는 전혀 상관 없는 질문들이 나왔다. 기억에 남는 것은 '좋아하는 걸그룹과 이유는?'이다. 

나는 '미스 에이'와 '레인보우'라고 말하고 이유는 '예쁘고 섹시하고 열심히 춤 춰서'라고 대답했다. 너무 짧고 간결해서 교수님이 '그게 끝?'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른 2명은 사회현상과 관련해서 꽤 길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TV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보지 않는 제가 이 걸그룹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미스에이라는 그룹 안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봅니다. 사회주의 노선과 자본주의 노선이 걸그룹이라는 극히 대중적인 요소 아래서 뭉칠 수 있고 사람들에게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게 한다는 데 대해서 놀라워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상당히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영감을 받았는데 이는 같은 나라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걸그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본질보다는 현상에 집착하는 연구가들의 오류를 범하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개성이 인류를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저는 미스에이라는 그룹의 작은 동작에서, 언젠가 TV에서 단 한번 스쳐 지나간 이들의 동작에서 읽어냈습니다.

그것이 기획사의 철저한 전략 아래 나온 산물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세상에는 어떤 위대한 전략가나 어떤 노련한 기획자도 제어하지 못하는 인류 개개인의 개성이란 게 있는 법입니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그 개성을 기획된 의도 밖에서 폭발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런 의도되지 않은 곳에서 폭발하는 개성의 관점에서 보면 레인보우라는 그룹의 경우....'

같은 진심을 말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자세히 설명하기 귀찮아 생략해 버리는 논리의 구조들을, 그러니까 머리가 좀 있는 사람이면 뭘 말하는지 알겠지 하고 빨리 지나가 버리는 논리의 엘리베이터를 자기들 마음대로 비약으로 착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궤변처럼 들리기 시작하고 이해할 수 없어지게 된다. 


이럴 땐 그냥 단순한 남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제일이다. 

... 라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다. 

첫 문장만이 진실이다.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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