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리적으론 하나의 육체지만 내 속에서 과거의 편집부 필독과 현재의 작가 홍대선은 각기 다른 방에 웅크려 앉은 별개의 자아다.

후자는 내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변이한 외계 생명체 마냥 이질적이다. 알 수 없기에 논외, 평이 불가하다. 허나 작가 홍대선이 되기 전의 필명인 필독, 즉, 한국어론 <들개>라는 뜻을 가진 그에 대해서는 꽤 알고 있다. 신간이 나온 김에 실상을 고발해보고자 한다.


2.
고층 아파트에서 세상을 보는 것보다 땅에 발 딛고 보는 편이 여러모로 ‘실상’을 알기에 좋다. 이제는 10년도 더 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필독형의 후임으로 일한 적이 있기에 나는 그 ‘실상’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삶이 어둠에 담금질 당한 시기로 아직도 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우선, 밝혀둔다.

얻은 것이 있다면 필독에 관해서라면 국내 일인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직 글로벌적으루다가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필독 형의 형편을 생각할 때, 나는 필독학에 관해서라면 미국 일인자, 동아시아 일인자, 혹은 북유럽 일인자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우리집 강아지 일인자, 우리집 내 책상 위 필통에 있는 세 번째 볼펜 일인자, 같은 느낌이라 딱히 자부심이 넘치진 않지만 살다보니 내세울 게 그런 것밖에 없으니 할 수 없다.

여튼 일인자의 관점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필독형은 부족함 하나만큼은 제네바의 제트분수 마냥 끝없이 부족함이 샘솟는 사람이다. 항상 부족한 형이라고 생각하는데 알면 알수록 새롭게 부족하다. 항상 어제보다 오늘이 더 부족하다. 문학사에서 어울리는 표현을 하나 가져오자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 …

아. 간만에 필독형 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도파민이 씀풍씀풍 나오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본론으로 가자.


3.
필독 형이 <유신 그리고 유신>이라는 책을 보냈다. 책 보낸지 며칠 뒤, 리뷰를 안 쓴다고,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크게 놀라워 한다(그 정도로 놀라지 말라구...). 연말 한참 바쁜 시기, 과학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무한동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3살, 5살 아이 둘 있는 아빠에게 말이다.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인데 과연 새롭게 부족하다.
 
다만 동시에 이 책의 초반부를 읽기 시작하며, 필독형이 어떻게 글을 썼는지 훤히 보여 슬그머니 웃음이 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4.
딱히 알고 싶진 않았지만 오랜기간 옆자리였기에(우리말 대사전에선 이런 상황을 불행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그의 글쓰는 방식을 잘 아는 나로서는 필독형이 신들린 듯 키보드를 치는 모습이 연상된다. 일단, 혼자 겁나 시끄럽다.

다음이 재밌는데 글쓰기의 과정에 좌우, 상하, 선후가 없다. 비유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렇다. 1페이지를 쓰고 26페이지를 쓰고 300 페이지를 썼다가 다시 274페이지를 쓴다. 나로서는 이 점이 필독형을 알고 가장 먼저 느낀 신선함이었다.

글쟁이가 영감에 따라 선후를 왔다갔다 함은 흔한 일이다. 딴지일보 기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양이 상당해 에이포 기준 20-30페이지 단위 안에서 왕복, 서사를 컨트롤 하는 이가 많다.

다만 필독형은 내가 아는 이 중 가장 범위가 넓은 편에 속하며, 실제로 그가 그렇게 쓴 글이 나중에 그대로 반영된다. 기본적으로 100-200페이지 안에서 왕복한다. 이는 흔하지 않다. 글을 쓸 때 이미 본 장면을 따박, 따박, 박아 넣는, 마치 속기 바둑을 두듯 초고를 쓴다. 초고의 완성도도 필독형 주제에 아주 높은 편이다.

처음에 주제 의식도 딱히 없고 머리 속에 정리도 되지 않은 주제에, 즉, 욕심만 앞서 키보드만 시끄럽게 친다고 생각했다(실제로 평범한 키보드를 기계식 키보드같이 치는 재주가 있다). 허나 후에 결과물을 보면 그 문장들이 본인의 연재물 7편에, 3편에, 11편에 나온다.

이야. 넓구나.

이 사람의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 같지만 생각의 사이즈만큼은 남미의 팜파스 평야구나. 이런 사람이 장편을 쓰는구나.

그때만큼은 조금 멋있었다.
 
5.
위의 사실은 딱히 알고 싶어 안 게 아니다. 시끄럽게 장기간 키보드를 두들기는데다(나는 기본적으로 무음을 선호해 키보드조차 무음을 쓴다. 그래서 더 짜증났다)일을 좀 해보려고 하면 계속 말을 걸어서 어쩔 수 없이(집중력 학살자)

‘아, 이 형은 일 안하고 왜 자꾸 나한테 말 거는 거야’

,라고 속으로 생각한 뒤에 딱히 말은 듣기 싫은데 계속 말을 하니, 필독형 모니터만 혼이 빠진 채 멍하니 보다 알게 된 사실이다.

그렇게 <테무진 투 더 칸>의 시작과 끝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필독형의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지금도 후임들에게 스토리텔링의 모범을 말할 때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물론 이 책은 명저이지만) <테무진 투 더 칸>을 추천한다. 기묘한 넘들이 모인 곳에서는 기묘한 실전 교과서가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참고로 <테무진 투 더 칸>이 서사를 끌어가는 방식과 역사를 정밀히 분해, 재조립하는 독창성을 볼 때, 최소 10만부는 팔렸어야 한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을 필독형이 쓰지 않았다면 더 칭송하고 싶은데 필독형이 썼으니까 요까지만 하자.
 
6.
필독형과 일할 때 내 업무의 70% 이상은 필독형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출근과 동시에 내 귀에 오만 지식과 개인사를 때려박았다. 일반적이라면 노동청에 신고해야겠으나 아쉽게도 내 인생의 오랜 가치 중 하나가 <인내>였고(아무래도 꼬꼬마 시절에 읽은 대망과 어설픈 불교철학 저서의 탐독으로 인한 악영향인 듯하다. 걍 인내하는 인간 자체가 느무 간지였다) 당시엔 그 가치에 복종했기에, 이 고난을 이겨내면 무언가 깨달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홀로 악(=필독)과의 사투를 벌이던 중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관찰을 좋아했던 시기이기도 한데 인간이 말을 할 때의 표정, 서사 방식, 음의 고저 등에 한동안 집착했다(드라마 라이투미도 완주한 준전문가라는 말씀, 에헴). 그렇게 녹음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생각해보니 관찰을 위해 녹음을 한 건 좀 변태같긴 하지만 이 사람이 나보다 더 변태니 넘어가자).

그 장황한 모든 이야기는 자칫 지루할 수 있으나 종국엔 자기의 관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돌이켜 보면, 서사구조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이는 정말로 신묘한데 말을 두괄식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핵심만 딱딱 귀에 때려박는 타입이 아니니 처음엔 뭔 말을 하나 싶고 집중도 되지 않는다. 좀 똑똑한 것 같긴한데 지 할말만 하는 노잼 아재 같은 느낌이다. 헌데 시간 단위를 확장하면 비밀이 풀린다. 실은 그 모든 장황함이 결국엔 한가지 결론으로 가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필독류의 말하기라는 것을 말이다.

장편을 쓰는 인간은 사유의 정밀화를 위해 되려 말을 아끼는 경우가 많은데 필독형은 그렇지 않다. 천성이 그런 모양인지 여튼 그렇다. 그리 매일 출근과 동시에 고막에 때려박는 이야기는 대개 3시간에서 5시간짜리 거대한 빌드업임을 차차 알게 된 후론 조금 이야기가 재미있어졌다. 어떻게 독특한 결론을 낼까가 필독형과 대화할 때의 핵심 재미인 것이다.

생긴 건 사실을 무시하고 멋대로 말할 것 같이 생겼으나 사실관계에 입각해 자신의 논리를 차근 차근 쌓아가 기어코 정상에 등반해버리는 말하기. 결국 이 형의 말길 전부가 그 산의 등산로였다는 것을 알면 필독형과의 대화가 조금 재밌어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3시간까지 버티며 들으면 재밌는데 2시간 30분까지 들으면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싶다.


7.
필독형에 대해 이제 겨우 발제를 했을 뿐인데 아쉽게도 한 조직의 일원이자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일이 쌓이는 연말이란 시기가 안타깝다.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조목조목 부정하고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 나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이지만 이 시기가 되면 조직에서도 가정에서도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쌓이는 법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다만 페이스북은 어느 정도 인간에 대한 사유가 있는 분들이 모이는 곳이니 이 정도만 적어도 필독이라는 사람에 대한 감이 잡힐 거라고 본다(혹시 더 알고 싶은 분은 포탈에서 ‘딴지일보와 나(7) 필독편’을 검색해 보자. 11년 전에 쓴 글이지만 얼추 다 맞는 말만 있다).


8.
아.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신 그리고 유신>은 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천천히, 재미있게, 읽고 있다. 누군가는 엄청 재미있다고 하는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우리 필독형, 아직 월드클래스 아니다. 더 겸손하고 더 정진해야 한다.

그럼 어떤 사람이냐고? 앞서 말했듯 ‘오늘도 부족하고 내일은 더 부족할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다만 글쟁이로서 어떻냐고 묻는다면

‘내가 아는 모든 글쟁이 중에 가장 저평가 된 사람 베스트 5’

이긴하다.

이 사람이 고평가를 받는 건 죽어도 싫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항상 저평가를 받는 것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젠가 1/10 정도는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이왕이면 이 책이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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