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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월드컵] 일본 축구로 보는 일본 문화사 - 오카다 감독편
2010.06.15.화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일본이 이겼다. 예상 못했다. 이미 기사로 경기 분석과 일본 현지 언론의 반응은 눈이 닳도록 봤으리라 생각한다. 거두절미하고 특파원 반응 들어간다.
창 : 모시모시
돌 : 내다.
창 : 어 왠일이고.
창. 어 말해.
돌 : 어제 일본 이겼잖아. 니가 특파원인데 반응 따 주야지. 일본 애루 다가.
창 : 아, 그럴 줄 알고 축구 조낸 좋아하는 친구 넘 한테 물어봤다.
돌 : 이름 먼데?
창 : 우사미 다카히로.
돌 : 직업은?
창 : 웹디자이너.
돌 : 뭐라는데. 일본은 놀란 것 같은데.
창 : ㅋㅋㅋ 카메룬한테 이길 거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데.
돌 : 인터뷰하고 이런 거 보니까 자신만만하든데. 4강 간다 이래 샀고.
창 : 씨바, 그건 걔들 생각이고. 일반 축구팬들은 솔직히 깜짝 놀랐지. 평가전 1무 4패에 자살골 쏟아졌지. 여튼 존나 몬했잖아. 게다가 뻥축구에. 그러다가 뜬금 없이 혼다가 넣으니까 미친듯이 좋아하는 거지.
<어제 야후 재팬에서 실황 중계 당시 달렸던 코멘트들. 거의 분 단위로 코멘트가 지워지고 새로 올라 오기 때문에 경기를 보면서 틈틈히 체크했다. 초반에는 미적지근한 경기 진행으로 걱정스러운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으나 골이 터지자 환희의 코멘트가 폭주했다. 그야말로 대난리.>
이 시합 전까지 일본 언론은 자국팀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오카다 감독이 4강을 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발언의 파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자신감은 한국에서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비춰져 ‘배수의 진을 친 승부사’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주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꽤 많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이런 식으로 큰 소리를 치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국민성이 있다. 자신에 차있고 이길 수 있다
고 생각하더라도 그 생각은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최대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외국인들의 경우, 이것을 두고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가식)가 따로 있
다며 일본인을 비난하지만 일본의 역사를 보면 이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사면이 바다로 막힌 일본, 그리고 사무라이 문화가 오랜 세월 지배한 그곳에
서 자신을 내세운다’거나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정말 문자 그대
로의 죽음’을 의미한다. 똑같은 사농공상의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
본의 ‘사’는 사무라이고 한국의 ‘사’는 선비다.
한중일의 옛 형벌을 비교해 봐도 지배층이 잔인하고 악랄했던 것은 비슷하지
만 한국은 ‘그래도 선비’라는 인상이 들 정도로 그 잔인함이 덜하다. 똑같이
솥에 사람을 넣고 끓이는 형벌이 있었지만 한국은 그런 흉내만 냈을 뿐, 그
사람의 명예를 더럽힌 걸로 사회적인 죽음을 권고 했을 뿐이다. 또한 한국에
서는 왕이 없으면 왕 욕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서 이러한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에도시대에 사
무라이들의 특권을 상징하는「切り捨て御免」(키리스떼고멘)이라는 말이 있
다. 이 말을 하나씩 풀어보면 키리(잘라) 스테(버리기) 고멘(면허)이다.
예를 들어 한 사무라이 딴지스가 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부딪쳤고
하자. 그런데 그 사람이 딴지스보다 신분이 낮다. 그러면 그냥 칼을 뽑아 들
어서 그 자리에서 벤 다음 시체도 그 자리에 버리고 가면 된다.
그야말로 ‘잘라 죽여서 미안하네~ 그런데 내가 기분이 나쁜 걸 어떡해’이다.
어쩌다가 있는 일로 호들갑이냐고? 에도시대의 사망원인 중 4분의 1이 이
'키리스떼고멘'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비일비재했던 일이
다.
이런 사회 속에서 과연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그랬다가는 자신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이 모조리 살해당해도 입
도 뻥긋 못하는 세상이었다. 게다가 4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으니 도망갈
데도 없다. 일본인들에게 ‘혼네’와 ‘다테마에’는 곧 ‘죽음’과 ‘삶’의 경계선이었
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오랫동안 일본인들의 정신을 지배했고 아직까지 그러한 DNA
가 몸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에 태생적으로 오카다 감독과 같은 발언이
나 그런 사람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다.
돌 : 밖에서 막 응원하고 이런 거는?
창 : 어제 밤까지 비 존나 왔어. 다 안에서 봤겠지 머.
돌 : 아, 동경에 비 왔구나.
창 : 글고 친구가 카메룬이 무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다더라. 운 좋아서 이긴 것 같다는데 그래도 존나 좋데. ㅋㅋㅋ
돌 : 딴 사람 반응 또 없나. 일본인 여자루다가. 이왕이면 사진도 쓸 수 있고.
창 : 있으바바. 지금 길가는 아줌마 아무나 잡고 물어 봐 주께.
돌 : 아... 아줌마는 괜찮은데….
창 : 축구 잘 모른단다;;;;;
돌 : 됐다. 전화비 많이 드니까 나중에 잼난 거 있음 찔러도.
돌 : 모시모시, 신이치형
신 : 여어~ 왠일이야. 아까 부재중 전화도 와 있드만.
돌 : 어제 일본 이겼잖아요. 일본에 뭐 재밌는 반응 없어요? 메이저 언론 꺼나 2CH같은 건 다른 언론에서 번역하고 짚어주니까 됐고 우리는 뭐 특별한 거 있음 좋겠는데.
신 : ㅎㅎ. 뭐 이기니까 좋은 거지 별거 있나. 사실 그전에 니네가 그리스한테 이겼잖아. 그러니까 거기에 지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도 좀 있었지.
돌 : 오카다 감독에 대한 건 어때요? 큰 소리만 빵빵쳐서 분위기 꽤 안 좋았잖아요. 일본사람 또 그런 사람 별로 안 좋아할 꺼고.
신 : 그렇지 머. 계속 지고 전략 실패하고… 그런데 또 변명만 하고.(일본은 ‘변명을 한다’는 자체를 이상할 만큼 싫어한다. 이 문화적 특성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그래도 카메룬한테 이긴 걸로 분위기는 완전 떴지만 이걸로 평가를 받았다고 하긴 힘들지. 다음 경기에서 어떤 승부를 보여주냐가 관건이지.
돌 : 음, 평범한데 남들 모르는 거 없나.
신 : 아, 오카다 감독은 스트레스 쌓이면 되게 살 찌는 스타일인 거 아냐?
돌 : 엥, 그래요?
신 : 보통 그 쪽 사람들이 스트레스 쌓이면 막 몸무게 엄청 줄고 언론에 초췌하게 나오고 그러잖아. 그런데 오카다 감독은 스트레스 쌓이면 무지 먹어서 몸이 부는 타입이야. 그러니까 언론에서 비춰지는 모습을 잘 보고 오카다 감독이 그 전보다 살집이 좀 두툼하다 싶으면 그 경기가 어려워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보면 돼. 스트레스 받으면 금방 금방 찌니까.
돌 : 오, 이건 몰랐는데. 심심한데 앞으로 그거나 봐야겠다.
신 : 어, 이건 메이저에서 안 때린 거니까 잘 모를 꺼야.
돌 : 고마워요, 형. 앞으로 재밌는 반응 같은 거 있음 좀 짚어줘요. 근무하는데 미안!
신 : 어, 그래. 너도 일 열심히 하고.
3. 능력있는 세일즈맨, 마나부형
(어제 축구 보면서 채팅 중)
돌 : 마나부형, 지금 일본이랑 카메룬이랑 붙고 있는데.
마 : 별 관심 없어. 분명 지고 있겠지 머.
돌 : 아닌데, 지금 일본이 이기고 있어요!! 1:0으로.
마 : 뭐, 곧 역전 당하겠지. 기본적으로 약하니까 말이야. 한국처럼 플레이를 시원시원하게 하면 모를까.
돌 : 에이~ 자기 나란데 응원 정도는 해주세요.
마 : 이 나라 운동선수는 뭔가 조금 이상해. 좀 더 경쾌하게 플레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말야. 폼만 잡고 ‘내가 최고’ 뭐, 이러기만 하니까 좀 천박해 보이기도 하고.
돌 : 역시 형은 좀 이상해. 여튼 난 계속 축구 봐요.
일본은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한국과는 다른, 재밌는 성질을 곧 잘 발견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자기 나라’에 대한 애정, 즉 애국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단순히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닌,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애정이 없다는 뜻이다.
<일본인 중, 애국심이 충만한 예>
학습되고 세뇌되어진 애국심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심한 경우, 한일전을 같이 보는데 진심으로 한국을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일본에서도 드문 경우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데스노트에 이름이 올라갈 듯하다.)
또 재밌는 점은 일본사람들은 보통 자기 나라를 말할 때, ‘일본’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로 치면 ‘우리나라’라는 표현 대신 ‘한국’이라는, 마치 제3자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의 표현을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는 뜻이다.
4. 요코하마FC 경기하러 갔다 만난 프리타 히로형
돌 : 히로형, 지금 어때요?
히 : 언론이 완전 급 반전이지. 엄청 씹다가 이기니까 완전 영웅이야. ㅋㅋㅋㅋ '같은 방법을 반복해서 이기길 바라다니 오카다는 바보인가…' 이러다가 '이기니까 12년 동안 외길로 달려온 집념의 승부사이자 도박사'가 되버렸어. ㅋㅋㅋㅋ
아, 어쨌든 이기니까 좋다. 솔직히 처음에는 지루해서 와, 우리나라 경기 보는데도 이런데 딴 나라 애들이 보면 무지 재미없겠다 이런 생각했어.
돌 : 여튼 월드컵 원정 첫 승 축하해요!! ㅋㅋ 빨리 따라 오라고. 야구는 몰라도 축구는 확실히 우리가 세니까.
히 : 야구에서 우리 위협한데로 그대로 갚아주마. 쫌만 기다려라.
돌 : 글고 보니 오카다 감독은 완전 죽다 살아났겠다. ㅋ
히 : 일단 기록적인 월드컵 원정 첫승이니까 의미가 강하지. 이거 하나로 오카다는 일어섰어. 너도 봤겠지만 신문들 지금 난리다.
요미우리, 마이니찌, 아사히, 산케이 모두 어제 경기 결과를 메인 탑으로 보도했다. 지금까지의 비난은 쏙 들어 갔고 언론과 네티즌들은 역사를 만들었다느니 타고난 도박사라느니 기적이 일어났다느니 온갖 찬사가 쏟아졌다.
오카다 감독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급반전하는 것도 ‘지면 역적, 이기면 영웅’인 스포츠 세계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앞서 설명한 ‘사무라이 문화’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또 평민과 천민 사이에서 그 사회는 답답함과 울분 그 자체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하듯 일본은 자신을 내세우고 튀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그 고난을 뚫고 가장 먼저 무엇을 이룬 사람을 세계 어느 곳보다 최고로 인정해 주는 나라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별것도 아닌데 '영웅 만들기'가 너무 심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일본의 대기업에 대해 자화자찬 식의 기사를 쓴다고 약속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 사회에 속한 사람의 명함 한장이나 소개라도 있어야지 끈을 댈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인맥이 중요한 사회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서도 인터뷰를 성사시킨 기자들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 ‘부딪쳐서 해보자’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소개와 인맥을 극도로 중요시 하는 폐쇄적인 면이 강한 반면, 또한 아무 연고나 끈도 없이 도전정신 하나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넓은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카다는 특히 일본 언론이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적어도 표면상으론 일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과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큰소리와 허세를 떠는 겸손을 모르는 모습, 그 반면엔 오직 한 길을 가서 마침내 소망하는 바를 이루어낸 영웅의 모습이 있다. 모두가 이미 실패한 전술을 쓴다고 비웃었지만 또 그 전술로 승리를 얻어냈다. 경기의 질 따위는 이미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카다는 일본의 방식, 아니 '사무라이의 방식'으로 이겼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최초로 이룬 사람에게 과도할 정도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일본에서 월드컵 원정 첫승을 이끈 오카다가 이정도의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말도 안될 정도로 크게 패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상대방의 기가막힌 센터링을 지난 번 평가전처럼 정확하게 골로 연결시키지만 않는다면(물론 자기편 골대에) 오카다는 지금의 극찬을 오랜 기간 가져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
돈도 없고 영혼도 없고 영양가도 없고 다만 잘생긴 남자의 트위터 : kimcha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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