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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월드컵] 오카다는 神 이 될 것이다 - 일본 축구로 보는 일본 문화사2
2010. 06. 25. 금요일
위 사진은 약 3달 전, 일본 일간지 석간후지에 실린 사진이다. 오른쪽의「オカダヤメろ!」는 「오카다 그만둬!」라는 뜻이다.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히라가나가 아닌 가타가나로 썼다.
일본은 히라가나, 가타가나, 한자를 섞어서 쓰는데 보통 이 세가지를 합쳐 '일본어'라고 한다. 광고나 선전 문구등 특별히 의미를 강조하려 할 때는 평소에 히라가나로 쓰는 글자라 할지라도 가타가나로 쓰는 경향이 있다.
왼쪽의 「ハズれるのはオカダ。」역시 가타가나로 주요 의미를 강조하며 이름을 빨간색으로 굵게 처리했다.「ハズれる」는 「어긋나다, 빗나가다, 누락되다, 제외되다」의 뜻으로 여기에선 「빠져야 할 건 오카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선수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 이전에 감독부터 빠지라는 치욕적인 말이다.
이 한장의 사진이 오카다 취임 이후부터, 6월 14일 카메룬 전이 열리기까지의 오카다 감독에 대한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다.
1.
일본은 조용한 사무라이의 나라다. 아직도 그 정신이 강하게 남아있다. 화가 나도 겉으로는 꾹 참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미덕이다.
한국인은 겉으로 보기엔 걸핏하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새 풀린다. 당장 주먹다짐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오가지만 실제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예는 굉장히 드물다. 큰소리와 시원한 욕지거리로 한바탕 마음을 푸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 술이라도 한잔 곁들여 지면 어느새 어깨동무를 하고는 동네방네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일본은 같은 아시아지만 한국과는 신기할 정도로 다른 국민성을 가진 나라다. 지난 번 <일본 축구로 보는 일본 문화사 - 오카다 감독편>에 잠시 소개했지만 일본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참지 않으면 안되는 문화, 불만을 품는 말을 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문화다. 그래서 일본에는 욕도 적다. 아니,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다고 봐도 좋은 나라다. 왜? 욕지거리를 하며 불만을 드러내는 순간, 이미 목은 떨어져 있을 테니까.
일본이 성적으로 너무 개방되었다고 정조관념이 없다고 근엄한 분들이 비판을 하는데 글쎄? 이 점 또한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나 당시의 계급구조를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도망칠 곳 없는 그 땅에서, 한번 영주의 눈 밖에 나면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일본에서 여자들은 정조보다는 목숨을 택했고 그 정조를 바쳐 가족을 지켜냈다. 이것이 사무라이 시대의 일본 여자들이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일본은 약자에겐 너무나 가혹한 땅이다. 철저하게 칼이 지배하는 사무라이 위주의 계급구조에서 여자란 존재는 얼마나 가련한 가.
이번 월드컵을 일본 역사에 비유하자면 언론은 사농공상의 계급 중 가장 윗층을 차지하고 있는 사무라이였고 오카다는 가장 하층 계급인 상인, 그것도 힘없는 상인의 딸쯤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2.
위 사진은 월드컵이 열리기 전, 중국 졸전에 화가 난 일본 팬들이 세계 4강이라는 응원 문구를 뒤집어 놓는 장면이다. 앞의 시위 사진이나 이런 행동들은 한국에서라면 순간적인 분노의 표현이라고 읽히겠지만 일본에서는 참아왔던 분노가 서서히 폭발할 조짐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왠만해선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은 정말로 칼을 꺼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을 갈게 한 장본인은 ‘오카다’였다. 사실 일본 언론에 전해진, 그리고 한국 언론에서 받아 쓰기 한 오카다의 모습은 그의 실제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여러가지 의문점이 든다.
지난 번에는 언론에 전해진 오카다의 모습을 위주로 일본국민이 오카다를 싫어했고 또 좋아한 이유를 짚어 보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어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 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언론에 전해진 오카다의 발언이 과거의 그가 언론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 인품이라는 것이 몇 년 사이를 두고 급속도로 바뀌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 말이다.
사실 오카다 감독은 과묵한 편이다. 또 철저한 분석 끝에서야 한마디를 던지는 타입이다. 해외의 축구 팬들 중엔 그의 생김새나 행동거지를 보고 축구 특기생으로 명문대에 입학해 지도자 코스를 밟아온 샌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와세다 대학도 체육 특기생이 아닌, 정규시험에 재수를 거쳐 입학했다. 재미있게도 본래의 꿈은 신문기자인데다 경기 때마다 책을 싸 들고 다닐 정도로 다독가이기도 하다.
일본 감독 중에는 이론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언론에 대한 무서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이런 감독이 허구헌날 가벼운 언행으로 일본언론과 국민의 분노를 유도했다고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기에 조금 무리가 따른다.
아마 일본 언론은 월드컵이 되기 전까지 국민적 분노를 삼켜 줄 먹잇감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타겟을 오카다로 삼았을 것이다. 물론 없는 말을 아예 지어내지는 않았을 테지만 ‘편집된 진실’을 보여주는 기사는 악마도 몸서리를 칠만큼 무서운 것이다.
변명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일본의 특성상, 언론이 이런 식으로 한번 방향을 잡으면 당사자는 헤어날 길이 없다. 게다가 오카다는 연전연패, 결과로 보여주지 못했으니 변명을 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오카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칼날 뿐이다. 기자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언론에서 사람 하나 죽이기는 정말로 간단하다. 특히나 현장 보도성 기사를 쓸 때는 깊이 생각하고 의중을 파악할 생각이 없으므로 한번 전달되는 순간, ‘편집된 진실’의 왜곡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나중에는 해외로 건너가 다시 국내로 들어와서 재인용되는 지경까지 간다.
나는 오카다의 과거 경력이나 그의 성격을 봤을 때 이런 억울한 점이 상당 수 존재했을 것이라 본다. 최고위 계층인 사무라이에 맞서 최하위 계층의 상인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을 맡기고 심판을 기다리는 수밖에.
3.
일본의 역사를 보면 최하위층의 상인계급은 엄청난 부로 사무라이라는 계급을 조종할 수 있는 위치까지 성장한다. 어릴 적 사무라이(언론인)를 꿈꿨던 오카다에게도 그런 순간이 왔다.
사무라이가 대로 한복판을 뽐내며 자신의 계급에 취해 있을 때 오카다는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온 돈으로 전국 제일의 일본도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달이 차 오르기 시작할 때 칼집으로 손을 가져가 소리없이 일본도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 빛은 극한 어둠 속에서 최초로 그 빛을 더 드러 냈기에 더욱 찬란하다. 일본 사회, 그리고 오카다에게 있어 그 빛은 무엇이며 그 어둠은 무엇인가.
4.
일본에서 싫어하는 대표적인 부류의 인물이 세가지가 있다. 지난 번 기사에도 언급했지만 자신을 필요이상으로 드러내는, 자만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 한국인 부모가 ‘기죽지 마라’라고 가르치듯, 어릴 때부터 일본인 부모가 가장 강조하는 말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는 수치스러운 일이자 꼭 갚아야만 하는 일이다. 선물 하나를 사도 꼭 또 다른 선물로 돌려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일본에서는 반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내장을 꺼내어 폐를 끼친 데 대한 보상을 완수한다고 판단했고 그것이 깔끔하고 사내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어떻든 간에 언론에 비친 오카다는 자만했으며 그로 인해 일본 국민에게 폐를 끼쳤고 이것을 갚지 않으면 수치스러운 인간이 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일본 국민의 정서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이 정서는 거의 예외가 없다고 봐도 좋다.
남에게 폐를 끼친 이에 대해 일본 사회는 가혹하다. 그런 이들을 가혹하게 밟아 죽이고 본때를 보여주며 유지한 것이 오늘의 일본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서가 있었기에 기형적인 이지메 문화가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지메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수치를 갚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최대한 빠르게 강자에게 붙는 것, 또 하나는 최대한 인내하며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론에서 보여준 오카다 감독의 선수에 대한 발언이나 협회 내의 행동으로 판단할 때, 처음에는 첫번째 방법을 취한 듯했으나 결론적으로 두번째 길을 가게 된다.
그게 진정 오카다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인간성을 가진 자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비춰진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튼 언론에 비춰진 오카다만을 봤을 때 오카다는 영웅을 넘어 축구의 신까지 넘보게 될지 모를 ‘인내’를 보여주었다.
5.
오카다의 발언과 행동들이 오카다의 ‘어둠’이라면 오카다의 ‘인내’는 빛이다. 그것도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빛이다.
<왼쪽부터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일본에서는 매년 존경하는 인물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뽑는데 그 중 매년 베스트에 들어가는 인물 중 하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일본 전국시대에 큰 획을 그었던 인물로 전국시대의 패자이자 에도막부를 세운 전설적인 인물이다.
너무나 유명한 일화라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울지 않는 새를 주었을 때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을 한 사람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참고로 울지 않는 새를 죽여 버린다는 것이 오다 노부나가, 어떻게든 재주를 부려 울게 만드는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이지만 적어도 이 일화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뻑가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일본인들은 이런 인내와 기다림의 가치를 극상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일본 문학에서도 사랑의 최고등급으로 짝사랑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인내, 기다림의 미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잔혹하고 험난한 사무라이 문화에서 항상 무언가를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것이 모든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기에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지 않나 생각한다.
오카다는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이런 미덕을 온 몸으로 보여준 인물이 되었다. 말안장 위에서 겁이나 응가를 지리고 그 모습을 반성의 계기로 삼기 위해 그림을 그리게 시키는 도쿠가와 정도의 미담(?)은 없지만, 적어도 1억 3천만에 달하는 국민과 일본 전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서 일본팀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건 일본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인'(忍)의 드라마가 완성된 셈이다.
재밌게도 오카다는 일본적 영웅이 요구하는 환경을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부숴낸 인물이 되었다. 자신의 발언과 행동으로 ‘어둠’을 만들어 영웅이 나타나기에 가장 적절한 환경을 만들었고 그 어둠 속에서 소름끼치게 빛나는 일본도를 꺼내어 일본 열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것도 칼이 그 빛을 받아 가장 빛난다는, 월드컵이라는 만월이 차 올랐을 때 말이다.
한달 전까지는 일본 국민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오카다 재팬. 천통이 넘는 항의 전화를 받고 일본 국민의 50%가 3전 전패를, 80%가 1승도 할 수 없다고 장담했던 오카다 재팬이 2승 1패 승점 6점의 놀라운 기록으로 16강을 갔다.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 조차 무시당하며 기사 쓸 맛이 안난다고 말하게 만든 오카다. 그 오카다가 조용한 일본 국민들이 시부야의 스크럼블 교차로에 뛰어나와 차량 통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게 만들었다.
<도쿄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점령한 일본 서포터즈
- 사진인용 : 제이피뉴스>
이것은 정말로 이례적인 일이다.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지정된 장소에서 ‘최대한 합법적으로’ 응원하던 일본 서포터즈가 거리를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일 첫장에 올린 오카다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일본 시위와는 반대의 의미로 후지산이 폭발할 조짐이다.
지난 번, 일본이 첫승의 깃발을 꼽았을 때, 일본에서 오카다가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지금의 극찬을 오랫동안 가져갈 것이라 적었다.
16강이 확정된 지금, 일본이 첫 8강을 뚫고 혹시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오카다는 일본 축구의 神이 될 것이다.
오카다 보다 100배 가난하지만
오카다 보다 100배 잘생긴 남자의 트위터 : kimcha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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