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가 

대개, 섹스다.

가족을 추가하자!, 라는 기분이 들면 가급적 매일 하는 것이 좋지만 나로선 힘든 일이고 잘하는 편도 아니라 적당히 했다.

아이를 가지고 싶으면 아이를 가지고 싶은 사람과 섹스하는 편이 좋다. 다른 사람과 섹스하면 곤란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아이가 생긴다(이건 두배로 곤란합니다).

죽어도 그렇게 하겠다, 라는 사람에게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일단 제 인생이 아니니까요) 의외로 죽는 경우(꼭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도 있고 여튼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 

다들, ‘그쯤이야 나도 안다고!’,라고 잘난 척할 게 뻔하지만 나는 중학생 때까지 몰랐다. 조기교육의 폐해가 문제시되는 요즘이지만 나의 부모는 지연교육이 제법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면 아버지는 특유의 말투로 이렇게 반박하겠지요.  ‘니가 좀 모자랐을 거야’)

 

2.  이래 봬도 전교 1등입니다만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때때로 원대한 일을 해낸다. 중학생이 된 주제에 성에 무지했던 나는 국어, 영어, 수학 따위가 아닌, 가정(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에서 만점을 기록한다(두둥. 브런치는 BGM 기능이 없는 관계로 다들 입으로 소리 내어 주세요). 

아무도 만점을 받지 못한 과목에서 만점을 받으며 전교 1등의 기염을 토해낸 게다(에헴). 나의 학교는 각 과목에서 전교 1등을 따로 뽑아 상장을 주는데 친구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비웃음을 받은 기억이 선명하다. 

왜? 시험 범위가 성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위인은 이런 비웃음을 극복한다. 아암. 인생 최초의 전교 1등을 기록한 나는 국어, 영어, 수학은 모르겠고(취향이 아니었습니다. 개인 취향 존중해주세요) 가정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등생이 된다. 

인간의 발달과정, 특히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론에서만큼은 한국 제일의 중학생은 바로 나, 라는 자부심에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을 띤 사람마냥 살아왔던 게다.

허나, 세상은 넓다.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던 중, 나는 우물 안 개구락지임을 실감한다. 빈틈없이 생소한 직업을 접한 게다.

 

3.  임신과 출산을 돕는 이가 있다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아내와 나를 도운 이가 있다. 박은란 둘라다.

자연주의 출산을 결정하면 둘라란 직업에 대해 알게 될 확률이 높으나 한국에선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개념의 직업이다(영미권에서 출산한 분들은 알 수도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자연주의 출산을 결정한 후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스어 어원은 ‘돕는 이(팩트체크를 할 순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어 대신 한국어를 배웠거든요. 그것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로 임신, 출산 과정에서 임산부의 불안을 덜어주고 적극적으로 정서적, 육체적 지지를 해주는 사람이다.

에베레스트에 셰르파가 있다면, 출산엔 둘라가 있다는 느낌이랄까. 임신, 출산을 미리 경험한 것도 모자라 그런 경험을 가진 친구들을 최전선에서 도와준 경험이 100번 정도 있는 따뜻한 언니, 정도로 해두면 좋겠다.     

임신 기간 동안, 우리는 그녀에게 두 차례 출산 상담과 교육을 받았다. 뚝뚝한 강의 형식이 아니라 함께 조산원에서 차 마시며 수다하는 형태다. 그러면? 친해진다. 어느새 그녀는 궁금증이 일 때마다 질문하고 얘기할 수 있는 편한 사람이 된다. 

예를 보자. 

1) 출산예정일이 다가온 아내, 둘라에게 문자를 보낸다.

‘어랏. 이게 출산이 임박하면 나온다는 이슬인가요?’ 

‘아니요! 아직 신나게 노세요!’ 

2) 출산이 임박함을 느낀 아내, 둘라에게 전화한다. 

‘왠지 느낌이 오늘 출산할 것 같아요. 상황은 블라블라’

‘아. 오늘 출산할 수도 있겠네요. 우선 조산사님에게 연락하고, 조산원으로 간 후에 다시 연락 주세요’

(아내는 실제 몇 시간 후 출산했으며 그 모든 과정을 달려온 둘라와 함께 한다)

달려온 둘라님과 아내. 출산 약 3시간 전입니다.

3) 진통이 시작된 아내, 주기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둘라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아내와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다양한 자세를 가르쳐준다(아내가 실제 고통이 줄어든다 한다!).

4) 출산에 점점 다가가는 상황, 나에게 ‘여기서 손을 잡아주세요’, '상큼한 오렌지주스가 도움이 될 거예요.', ‘아내에게 물을 주세요. 빨대로 먹는 게 편해요.’, '지금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괜찮아요.', ‘서서 진통해 봅시다. 아빠가 앞에서 이렇게 잡아주세요’ 등, 자칫 방법을 몰라 당황할 수 있는 남편을 완벽에 가깝게 활용, 참된 리더란 이런 것인가, 를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한다(거 봐요! 남편도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

출산 임박 시에는 조산사의 역할이 커진다. 다만 진통이 시작된 후부터 언제 출산을 할지 모르는데 계속 한 산모 옆에서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 시간을 안정감 있게 둘라가 채워준다. 무엇으로? 

그 상황에서 가능한 최대치의 평온함과 지혜로.  

 

4. 호의가 계속되면 그분이 둘라다 

둘라는 '출산할 것 같아요' 하면 달려와 함께 한다. 심지어 24시간 어느 때라도. 둘라와 함께 얘기를 하고 그녀의 조언과 지지를 경험하면, 이 직업은 돈보다 뜻이 커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쿵, 하고 온다. 

박은란 둘라는 첫째 아이의 경우, 자연주의 출산을 오래도록 준비하다 결국 2박 3일 동안 진통 후, 제왕절개로 낳았다. 둘째 아이의 경우, 브이백(VBAC)으로 낳았다. 이 두 가지 경험(출산의 끝판왕 느낌?)에 대한 이야기 또한 아내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주: 브이백이란 과거에 제왕절개를 했던 산모가 자연분만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의료선진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안전한 결과가 많아 좋은 선례가 쌓여있으나 국내에서는 제왕절개를 했던 산모는 두 번째에 자연분만이 불가능, 혹은 위험한 시도라는 견해가 많았던 분만입니다. 물론 지금은 한국에도 좋은 선례와 노하우가 많이 쌓여있지요.   

남편은 임신과 출산 과정 중(그리고 앞으로 올 육아에서도) 가장 중요한 파트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을 줄 수 없는 생물학적 한계가 존재한다. 애를 가져보지도 낳아보지도 않았기에, 때로 섭섭할 수 있고 답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자로 살아보지 않았기에 제아무리 똑똑하고 자상해도 태생적인 경계를 넘을 순 없다.  

둘라는 이런 경험을 앞서한 선배이자 충실한 조언자, 그리고 지지자로 남편이 해소해줄 수 없는 불안을 품어주며 산모를 돕는다. 자연주의 출산도, 모자동실 선택도, 아내와 함께 그녀와 많은 대화를 통해 결정한 것이라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이러쿵저러쿵 잘난 척하며 이것저것 적고 있지만 나는 임신도 출산도 경험해보지 않은 남편일 뿐이니 마지막은 둘라라는 직업에 대한 아내의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암흑 속에서 그녀의 손만 잡고 있어도 길의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

… … 

나? 나는? … …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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