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가 태어나고 4년이 지났다. 아내와 나는 서로의 얼굴에 늘어난 주름살을 본다. 고단한 시간 많았으나 기쁜 시간도 못지않았다. 잘 이겨내었다. 서로를 토닥인다. 곤히 자고 있는 하루 본다.

‘으응? 얘는 왜 하나도 안 컸대?’ 

달력을 본다.   

‘으응? 4년이 아니라 4주였네?’

2.  
대한간호학회가 펴낸 간호학 대사전에 따르면 신생아는 ‘태아가 모체에서 떠난 순간부터 임신, 분만의 영향이 사라지고 태외생활로의 적응과정을 마칠 때까지의 기간’이다. 


......

무슨 말인지 1도 모르겠고 계속 모르겠지만 ‘그럼 나도 아직 신생아인가’라는 생각은 든다. 시기로 본다면 생후 28일 미만이다. 4주 되겠다. 이 4주는 나와 아내에겐 4년이었다. 그 전엔 당연하다 생각했으나 당연하지 않은 것들 때문이다. 

해서, 오늘은 신생아 육아를 하며 나와 아내가 착각한 것들에 대해, 후학들을 미혹에서 건져내어 고단의 바다에 조금 덜 빠지도록(안 빠지는 건 불가능합니다) 힘써보고자 한다. 에헴.

3. 모유는 적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 
아기가 쇼옹 하고 나오면 모유는 언제 어느 때고 쇼옹쇼옹 나오는 줄 알았다. 과연, 그렇지 않다. 초산인 경우, 출산 하루 뒤부터 나오기 시작하는데 찔끔찔끔 젖양이 늘어난다. 

아내의 모유량이 적을 땐 배가 차지 않아 하루가 운다. 다행히 모유가 적으면 분유를 먹이면 된다. 나의 경우, 어머니가 모유량이 적어 유독 일찍 분유만 먹였다는데 잘 컸지 않은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헌데 이게 아빠 마음이랑 엄마 마음이 다르다.

아내는 쉽게 단유를 선택하지 못한다. 면역력에 모유가 좋다는데, 국제모유수유학회에서 추천하는 기간은 2년이라는데, 2년은 커녕 백일은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나 같으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끊었을 텐데!). 

아내는 힘들어도 최소 100일은 채우자는 마음에 우족, 모유 촉진 차, 루이보스티 등 각종 음식에 기대었으나 결론은 ‘쉽게 늘지 않는 사람은 뭘 먹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이다. 걱정 말자. 분유만 먹어도 잘 큰다! 분유 최고! 내가 표본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양이 많으면 문제없겠군,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모유가 많으면 유선이 막혀 유선염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것만큼 아픈 게 없다고 할 정도랄까. 심하면 고열에 시달리는 데다 마사지로 풀어내야 한다.

물론 많았다, 적었다 하는 상황도 있다. 앞서 모유가 적어 고생한 나의 아내가 그랬다. 어느 시기는 젖이 빨리 불어, 돌덩이처럼 땐땐해져 아프다. 애가 자고 있어도 잘 수 없다.

부시럭부시럭 소리가 들리는 새벽, 아내는 영혼이 제법 쇼옹, 하고 나와있는 얼굴로 유축을 시작한다. 다시 자려는 찰나, 아아, 삶이란 무엇인가, 하루가 깬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개뿔이랄까, 시를 적은 당사자 푸시킨도 삶이 그대를 속이니까 빡쳐서 결투하다 죽었으면서! 거짓말쟁이!

아기 낳는다고 모유수유가 다 가능한 건 아니다. 모유 안 먹어도 큰 병치레 없이 나처럼 건강하게 잘 크는 사람 널렸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4. 수유 자세 
흔히, 아기에게 젖먹이는 자세를 아름답다 한다. 생명 어쩌고 저쩌고.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육아를 안 해본 게 틀림없다.

마치 남태평양 아름다운 섬에 사는 독거 시인이 육체노동을 찬양하며, '아아, 나는 진실로 그러한 삶을 살고 싶었소', 하는 느낌이랄까. 사실 할 생각도 없고 해도 금방 도망갈 거면서. 쳇.

수유자세는 빡세다. 우선 앉은 자세는 허리, 어깨는 기본이고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목도 아프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씨, 뒷골 땡겨’ 되겠다.

모유수유를 계속하는 사람이라면 이걸 하루에 몇 번씩, 몇 년을 해야 한다. 왜 엄마들이 출산을 하고 몸이 망가지는지 이해된다고 할까(도대체 울 어무이는 왜 나를 안 버린 걸까). 아내는 운동을 꾸준히 했고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이 자세는 아프다. 각오 정도는 해두는 편이 좋다.

  

물론 누워서 다리에 베개를 끼고 먹이는 자세도 있다. 말만 들으면 편할 것 같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옆에서 보면, 아내는 아기의 숨이 막힐까, 계속 신경 쓴다(신생아는 더욱 신경 쓰이기 마련입니다).

왜 더욱 신경 쓰이냐면 너무 작아서 겁 나거든요. 사진은 생후 7일 된 하루를 트림시키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방심하면 젖이 입에서 떨어지니 완전히 편한 것도, 안 편한 것도 아닌 애매한 모양새가 된다. 허리와 목은 다시 아프다.

한 달쯤 지나, 아기의 빠는 힘이 세져 모유를 먹이는 시간이 짧아지면(신생아는 먹다, 자다, 하기 때문에 수유시간이 길어집니다. 부동자세가 길어진다는 뜻이지요) 어느 정도 해결되니 4주 후에 봅시다, 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5. 신생아가 다 먹고 자기만 하진 않는다
모든 신생아는 먹고 자기만 하는 줄 알았다. 

그 텀이 극히 짧고 분산되어 힘들지, 신생아 때는 그나마 편하다던데!, 지금 와서 친구들 말을 복기하면 젠장, 상대적인 게 분명하다. 상대적이라면 상대적이라고 말을 해줘야지 상대성 이론도 모르니까 단편적인 지식밖에 전달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것들 같으니라고(사실 상대성 이론에 대해선 저도 '이론'이라는 점만 압니다).

먹고 자기만은 개뿔이랄까, 20일이 지나고부턴 먹고 자지 않고 떼를 쓰기 시작, 잠 오면 그냥 잘 것이지 잠투정이 시작된다.

물론 이건 아빠를 닮은 것 같다(아빠가 나네요, 으음). 나는 신생아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잠투정이 심한데 대부분의 환경에서 느긋하게 잘 자지만(영하 26도에서도 잘 잡니다. 군대 있을 때 잘 자서 선임들이 싫어했지요) 자기 전까지는 이리 굴렀다, 저리 굴렀다, 말 걸었다, 안 걸었다, 특히 옆에 있는 사람을 괴롭힌다. 

이렇게 돌려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음.

6. 자연주의 출산을 해도 회음부는 찢어진다 
보통 출산의 고통이 10이면 출산 직후에 고통의 잔상이 1쯤 남아 있다 생각하는데 아내의 표현을 빌리면 0이 된다. 신기하게도 모두 사라진다. 강력한 성취감도 온다. 과연, 삶이 그렇게 다 좋을 순 없다. 문제는 회음부다.

제왕절개도 아닌데, 게다가 자연분만은 회음부를 절개하지만 자연주의 출산(우리의 경우, 수중분만)인데 왜 아프지,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슈웅, 아기가 나와도 회음부는 많이들 찢어진다(자궁은 임신 말기에 500배 늘어납니다. … … 500배!!).

이따금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아니, 이걸 어떻게 참았어요'라고 하는 타입의 인간이 있다. 나의 아내가 그러하다. 그런 아내도 회음부의 고통만큼은 으으, 고개를 흔든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면 ‘출산은 아기가 나오는 순간 모두 사라져 다시 할 수 있지만 회음부를 꿰매기 위한 마취주사와 회음부가 아물 때까지의 고통은 씨앙, 이라는 말을 500번 할 정도’ 다.

수술하면 아프다. 자연분만해도 아프다. 자연주의 출산해도 아프다. 마치 인생처럼 피할 길이 없다. 남편은 옆에서 나대지만 않으면 되니 괜찮다! 

7. 바운서와 공갈 젖꼭지를 다 좋아하진 않는다
바운서,라고 자동으로 아기를 흔들흔들해주는 기구가 있다.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야, 세상 참 좋아졌네’ 라 말한다. 내가 왜 이걸 아냐면 나도 하루가 세상에 나오기 전엔 그렇게 말했으니까!

분명 되는 아기들도 있을 게다. 문제는 내 자식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랄까. 하루는 이 바운서를 싫어한다. ‘우에에에엥’, 해석하면 '니가 안아야지... 잔꾀를 부리지 마… 아빠잖아...' 같은 느낌이랄까. 까다로운 녀석 같으니라고.

흔히 아기를 보면 상상하게 되는 공갈 젖꼭지도 하루는 좋아하지 않는다. 모유도 잘 먹고 분유도 잘 먹는 건 기특하다. 공갈 젖꼭지는 물려주면 퉤!, 하고 뱉어 버린다.

마치 '호오. 부모가 되놔서 벌써 구라질입니까. 한 번 제대로 울어볼까요?' 같은 패기에 가득 찬 눈빛이 쿵, 하고 온다.  

마치 이런 눈빛입니다. 사진은 생후 14일 된 하루입니다.


어머니의 말처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때의 나와 닮았겠지. 다시 한번 반복한다. 

이렇게 돌려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음.  

8. 신생아가 우는데 이유가 있긴 하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므로, 아기가 우는 데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공부에 공부를 거듭해도 80%는 알지만 20%는 모른다(저는 그랬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관찰력의 소유자라도, 대부분, 죽었다 깨나도 모르지 않을까.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가 있나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인생의 모든 일엔 이유가 있긴 한데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게 많으니까 뭐라도 대충 믿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구글은 언어 번역기보다 신생아 번역기를 만드는 게 지구 평화에 더 기여한다는 사실을 눈치채 주었으면 좋겠다.

9. 도망가는 부모들
아기를 낳고 도망가는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내와 나는 그게 어떤 이유라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상상 조자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다. ‘인간이 할 짓인가’, 하고 말이다.

흔히 출산 후 고용한다는 산후관리사는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까지 아기를 케어한다. 그 일을 17년 한 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본인처럼 장기간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다. 왜? 힘들어서! 이따금 극도로 민감한 아기를 만난 경우, 힘들어 도망가는 산후관리사가 있다 한다. 

상상해보자. 걔 부모는 어떨까. 

나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하게 되었다.

도망가는 부모가 나쁘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끝까지 아기를 키워내고 책임지는 대부분의 부모가, 참으로, 굉장하다.

여러분도 건투를 빕니다. 저희는 손목이 다 나갔었습니다만.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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