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편집장의 말

이마까라 니홍고 2025년 4월호 발행 : 할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관점

죽지 않는 돌고래 2025. 5. 21. 02:18

 
1.
지난번 "편집장의 말"에 이어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볼까 합니다.
 
2.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아버지가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나를 사랑하는 노래( 我を愛する歌-われをあいするうた)"를 좋아한 이유는 그의 시가 자신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정밀히 하면 그의 가족사와 닮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감옥에 간 이후(물론 나쁜 짓을 해서 간 건 아닙니다. 그 시대 기준으로는 나쁜 일이었지만), 수직 낙하한 생활과 함께 반국가단체 수괴의 아내라는 딱지를 안고 7남매를 홀로 키웠습니다.
어느 날, 9살 혹은 10살 즈음인 아버지 손을 잡고 동해 바닷가로 가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녀가 자살하려 한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아버지 기억으로는 그런 일이 3, 4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함께 바다를 바라보다 근처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자살하려 바닷가에 갔다가 모래사장의 작은 바닷게와 놀다 그 마음을 잊고 돌아온 것과 닮았습니다.
할머니의 '작은 바닷게'는 아버지였던 셈이지요.
 
4.
시대의 엘리트였지만 꿈 한 번 펼치지 못하고 평생 고문과 후유증에 시달린 할아버지의 삶은 외부에서 보면 불행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입버릇은 "행복하다"였습니다.
제 어릴 적 할아버지는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위스키에 타 반주하는 모습, 오래된 나무 소파에서 하모니카를 부르는 모습, 난과 수석에 몰두하던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행복한 한량 그 자체입니다(제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에게 "며느라, 내가 말년에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자주 반복되었기에 선명합니다.
3자의 입장에서 본 그는 불행한 인생이었을지 모르나,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한 손자의 입장에선 삶을 반기는 풍류인이었습니다.
가끔씩 할머니, 아버지와 투닥거리긴 했지만, 그 모습도 행복의 한 퍼즐입니다.
 
5.
외부 환경은 바꿀 수 없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 있고 바람이 부는 날이 있고 봄에 눈이 내리는 날도 있으며 산불이 세상을 덮는 날도 있습니다.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이 나입니다. 정밀히 하면 '나의 관점'입니다. '관점'이 하나 늘어나면 내가 바뀌고 이윽고 세상이 바뀝니다.
의지로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바뀌어지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관점'이 하나 늘어났을 뿐인데 말이지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세상이 변하는 순서입니다.
 
6.
모국어 외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지금까지의 삶에서 없었던 새로운 '관점'을 얻는 일입니다. 인간에겐 거의 불가능하다는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늘어난 '관점'은 제 경험상, 슬픔도 고통도 있지만 반드시 이를 뛰어넘는 행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우면, 많이 웃게 되지요.
그만큼 좋은 일이 또 없습니다.
 
2025.03.30 PM 05:36
요즘 넷플의 "ホットスポット"에 빠져있는, 죽지않는돌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