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8점
김형경 지음/예담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가 하루 종일 책만 읽고 있었더니, 어머니가 슬며시 머리맡에 놓아 주신 책이다.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과연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책이다.  

나와 같은 나이대의 사람에게도 좋은 느낌을 주는 에세이가 가득하나, 좀 더 나이대가 있는 이들이 책이 전하는 바를 가장 잘 받아내지 않을까 한다.


4.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사람풍경 / 김형경 / 예담


 

1.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비밀 한 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하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인간 정신이 생후 3년에 이르기까지 60퍼센트, 여섯 살까지 95퍼센트 형성 된다고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다섯 살까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신분석을 받은 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간 정신을 설명하는 말인가 싶어 놀란 일이 있다.

 


2.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몇 년 살았다는 한국인 여성을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외국인 남성들과 사귈 때 가장 적응이 안 되고 불쾌한 대목이 업 투 유(It’s up to you)’라고 했다. 그들은 영화 보러 갈래?”해도 업 투 유, “나가서 저녁식사할래?” 해도 업 투 유, “휴가 함께 보낼래?”해도 업 투 유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몸에 밴 레이디 퍼스트의 여성 존중 태도인지는 몰라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기적이고 우유부단한 태도로 보인다고 했다. 그 중 가장 황당한 경우는 나랑 자고 싶니?”하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업 투 유라고 했다. 황당할 뿐 아니라 모욕감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깔깔거리고 웃으며 그 얘기를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서늘했다. 서양식 합리주의와 동양식 온정주의가 만나 일으키는 갈등 같기도 했고,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여성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을 원하는 서양 남성의 태도에 대해 느끼는 소외감 같기도 했다. 그 여성이 그동안 보아온 한국 남성들은 비싼 음식값을 혼자 다 내고, 영화 티켓을 미리 끊어놓고 기다리고, 헤어지자고 말하면 끝끝내 더 큰 것을 제시하는 남자였을 것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서양 남자들이 얼마나 개인주의적이고, 인정머리 없는지를 이야기했다. 방세도 반씩 내고, 생활비도 반씩 나누는 건 야만적이지 않느냐고 동의를 구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좋은 남자를 하나 만났다고 했다. 그가 나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 영주권을 딸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다만 그녀가 그 과도한 의존성 때문에 자신의 삶을 정지시키거나, 평생 불만족과 불행감을 안고 살지 않기만을 바랐다.


 

3.
 

예전에 영국에 유학가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공부하던 후배가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그 학원 강사는 영국 출신 여성이었는데 한국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네가 부러워(I envy you)”라는 말이나 , 질투하니?(Are you jealous?)”같은 표현은 서구문화에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므로 외국에 나가서는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더라고 했다. 서구문화는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그 개인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성, 재능, 취향 심지어 소유물까지 서로 존중해주는 것이라는 게 강사의 부연 설명이라고 했다. 그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이었다.

 


4.
 

할머니 손에서 자란 사람은 순하다는 속설도 더 깊이 이해되었다. 그런 이들은 형제나 친구와 경쟁하면서 생의 치열함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삶을 마무리하는 노인네의 정서와 방식을 습득해버렸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5.
 

창조성은 인간을 의식의 변방으로 데리고 가서 그 너머로밀어버린다.” – 사랑과 의지/롤로 메이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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