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먹는다 - 8점
이규형 지음/해냄




꽤 오래된 책이다. 2000년도에 나왔으니 벌써 9년전.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할 당시, 과거에 읽었던 일본 관련 책들을 자취방으로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다. 레포트에 참고할 수 있을까, 다시 보았다. 



22. 일본을 먹는다 / 이규형 지음 / 네오북

 

 꽁치, 고등어, 정어리는 하급 생선으로 경시되고 있다. 그러나 실은 이것처럼 건강에 좋은 생선이 없다. 싸구려 생선이라 아무도 양식하지 않으니 100퍼센트 자연산일 수밖에. 일본인들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꽁치, 고등어, 정어리를 좋아하고, 생선 3형제라고 이름붙이고 있는 것이다.

 

 

 우메보시만으로 도시락의 밥을 다 먹는 것. 그런데 옛날엔 이것이 초라한 도시락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메이지 시대에는 우메보시와 흰쌀밥이 최고의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장기 도시락이 매우 볼품없는 식사겠지만 백 년 전인 메이지 시대에는 최고의 식사였을 것이다.

 

 

 일본엔 '무텟포'라는 말이 있는데 맨땅에 헤딩해대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철포, 즉 총 없이 전쟁하러 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차 없이 식사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무차'라고 하는데 차 없이 식사하는 것을 총 없이 전쟁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그 정도로 일본인에게 차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오니기리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 사무라이들에게서 시작됐다고 한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다른 집을 방문하면 동반한 무사들은 정원에서 기다린다. 그때 방문받은 집에서 식사로 대접했던 것이 오니기리였다. 어원을 조사해 보면 '병사가 주둔하고 있다' 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것이라고도 하고, '빠르다' 라는 의미에서 왔다고 하기도 한다. 오니기리의 니기리(にぎり)는 '쥐다, 주먹밥을 만들다'의 명사형에 오()를 붙인 말이다.

 

 

 일본은 동네마다 아침이면 빵을 사는 인구가 대단히 많다. 빵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다. 일본인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빵을 먹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식 군대가 등장했을 때부터다.

 일본의 영양학은 메이지 시대에 들어 군대 식사의 서구화에 의해 만들어졌다. 병사의 식사는 음식 문화로 인식되기보다는 전투에 필요한 효율적인 체력을 만드는 데 필요했다. 일본 빵의 유래는 바로 이 시대 군대에서 이루어졌다.

 천황의 직속 부대 내에서 각기병 소동이 있었다. 유신 정부가 처음 탄생했을 당시 관군은 모두 지방 영주의 병사들로 천황의 직속 부대는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통치가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서둘러 육군은 프랑스식으로, 해군은 영국식으로 만들기로 했다.

 프랑스 군대를 모델로 해서 만든 군대는 주로 나가사키 출신이 많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보리밥을 주식으로 한 평민들이었다. 신 정부는 천황의 직속 부대라고 해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모두 살밥을 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자 예상 밖의 변이 일어났다. 병사는 물론 교관마저 각기병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각기병에 걸리면 죽는 사람이 많았다.

 매우 놀란 정부는 중환자를 독일인이 경영하는 병원으로 보냈으나 빵이 주식이었던 서양인들에게는 각기병 환자가 없어서 치료법을 몰라 당황스러워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병원에서는 계속 관찰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전부 완쾌되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한 일은 식사를 쌀밥 대신 서양식으로 빵과 우유를 준 것뿐.

 지금 생각해 보면 비타민 결핍증 환자에게 비타민 함유율이 높은 빵을 주어 완쾌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군대의 급식은 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인들이 빵을 먹게 된 유래고, 오늘날 자연스레 세계적으로 빵을 많이 먹는 민족이 된 것이다.

 앞에서 오니기리가 옛날 사무라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신식 군대에게 빵을 먹여보니 각기병이 안 걸려서 보급됐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사무라이들의 식량이 오니기리에서 빵으로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전쟁의 패턴 때문이었다. 평원에서 마주보며 진치고 맞장까던 시대가 끝났던 것이다. 근대전은 대포 쏘며 산 넘어 있는 적과 얼굴 안 보고도 전쟁했다. 내 행동을 감출수록 상대가 당황했다. 이럴 때 주먹밥 도시락은 적에게 쉽게 발견되는 요인이었다. 주먹밥 도시락은 밥할 때 연기가 나기 때문에 적에게 들키기 쉬웠던 거다.

 1842년 당시 전쟁 및 외교 담당 관리였던 에가와라는 사람은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주먹밥 대신에 군량 빵을 병사에게 휴대하게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험 삼아 요리사에게 빵을 만들어보게 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모든 군대는 만약에 대비하여 군량 빵을 만들어서 식량으로 사용하였다. 일본의 근대적인 군대의 기초는 거의 에가와에 의해서 확립되었다고 하는데 그의 가장 큰 공로는 군대뿐 아니라 시민의 식생활이 서구화로 한 걸음 내딛게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전쟁, 외교 담당자라기보단 음식 혁명가로 불러야 할 것이다.

 개화 시기 일본은 육식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날고기에 굶주린 외국 병사들의 도둑질에 의해서 해제됐다. 개화를 했으니 주식이 고기인 서양인 부대가 들어와 고기를 못 먹어 겔겔거렸던 거다. 영국의 해군이 훗카이도 지방의 어떤 곳에 상륙했을 때 사고가 터졌다. 그들 중의 몇 명이 농가에 들어가 소 한마리를 약탈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영국의 선장은 "그 행위 자체가 불법인 것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원양 항해에서 날고기에 굶주린 그들에게 합법적으로 고기를 줄 수 없는 이상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을 거라고 보증할 수는 없다" 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일단 뜻을 풀고 개항한 이상을 외국인이 필요로 하는 고기, 계란, 우유 등을 일본 땅에서 해결하게 해달라는 거였다. 코끼리가 사자와 친구로 잘 지내자며 풀을 대접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선장의 의견.

 그 사건으로 '외국인에게 고기를'이라는 정책이 성립됐고, 결국은 그렇다면 '일본인에게도 고기를'이라는 식으로 확대되며 일본 음식 역사 사상 최대의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소도둑놈들이 만든 역사였다.

 

 

 '돈부리'라는 말은 에도 시대에 등장했다. 처음에는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안주나 과자를 담는 그릇의 통칭으로 쓰였다. 밥을 돈부리에 담기 시작한 곳은 식당에서였다. 일일이 추가 주문을 받지 않고 먹고 난 빈 그릇으로 계산하는 것이 간편했기 때문이다.

 막부 시대 말기에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돈부리메시(덮밥)를팔았다. 그러나 신분이 높은 사람은 음식점에서 돈부리메시를 먹는 것을 천하게 여겨 먹지 않았다. 돈부리를 처음 영업용으로 사용한 것은 소바 가게다. 가케소바(우동처럼 국물이 있는 메밀국수)를 돈부리에 넣은 것이 처음으로, 면에 계란,고기,튀김이 들어 있는 소바가 출연하게 되자 고급 소바점에서는 좋은 돈부리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제 따뜻한 밥에 반찬을 올려놓은 돈부리는 일본 점심 외식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돈부리류의 원조는 우나기(장어) 돈부리. 하지만 메이지 시대가 될 때까지 우나기 돈부리는 하급 장어 가게에서만 팔았다.

 

 

 어떤 스시 집에 가도 승부는 마구로(참치, 다랑어)다. 마구로라는 생선을 어떻게 어느 부분을 썰어서 내놓는가. 싱싱하게 맛있는 마구로를 좋은 값에 먹을 수 있는 집인가 아닌가가 일본 요릿집들을 비교하는 승부의 눈일 것이다.

 그러나 마구로가 고급요리로 출세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마구로는 회 이외에 간단한 반찬의 재료로 쓰이는 하급 생선이었다. 지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의 마구로지만(좋은 마구로 한 마리는 1,000만 원씩 한다) 옛날에는 남은 생선으로 취급되어 냄비에 끓여 먹는 요리에 사용되거나 생선 기름의 원료 정도로 사용되었다.

 마구로의 빨간 살을 회의 재료로 쓰기 시작한 것은 막부 말기부터였다. 가격이 싼 마구로를 사서 오래 먹을 수 있도록 간장에 절여 스시로 만든 것에서 유래되어 스시 가게의 용어로 즈케(절임, 담금)라 불렸다. 이것을 시초로 그후 어떤 유명한 스시 집에서 1917~1918년 당시 싼 다랑어의 뱃살 근육을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는 의미에서 '살살'에 해당하는 '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이름은 그 가게의 단골 손님인 한 회사원이 지어준 것이라는데, 이제 일본은 이 도로라는 단어가 스시 집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스시의 재료가 된 마구로는 출세하기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고급 생선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1960년대 냉동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냉동 다랑어라고 해도 영하 20~30도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살이 검어져 깨끗한 회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의 가격이 비로소 빨간 생선류를 따라 잡은 것은 1960년대. 지금은 연안의 참다랑어 도로는 서민은 구경하지도 못할 정도로 비싼 생선이다. 다랑어류에서 스시, 회용 이외에 해외에서 명성을 올린 날개다랑어라는 것이 있다. 흰색 생선으로 너무 담백해 일본 요리에는 별로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국은 이걸 캔으로 만들어 수출에 성공했다. 동원참치 캔같이 날개다랑어를 기름에 절여 캔으로 만든 '바다의 치킨'이 미국에서 인기 있다.

 날개다랑어 캔은 일본에서도 수출 목적으로 제조되었지만 지금은 일본 가정에서도 미용과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다. 다랑어뿐만 아니라 가쓰오(가다랑어)를 원료로 한 '바다의 치킨'도 만들고 있다. 전에는 가쓰오의 대용품으로 생각되었던 다랑어의 지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여름에 은어는 자기 지역을 지키면서 돌에 붙어 있는 이끼와 규조류 등을 먹으면서 성장한다. 이 시기에는 다른 민물고기와 달리 곤충 등의 동물질은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은어에서는 메론 같은 좋은 냄새가 난다. 그래서 '향기 물고기'라고 불린다. 중국어로는 '샨유이'라고 하는데 '샨'은 향기를 뜻하는 말이다. 영어로도 '스위트 피쉬(sweet fish)'로 달콤한 향기의 물고기라는 데는 세계가 공감한다는 얘기다. 옛날부터 은어는 진귀하여 지배 계급에게 진상하는 음식에 이용되곤 했다.

 일본에서 은어는 민물고기의 여왕이라 불리는 잉어와는 달리 수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은어에게서는 웬지 젊은 여성의 화려함이 느껴진다.

 

 

 스시, 낫토, 돈부리는 물론 일본 고유의 요리다. 하지만 일본 고유의 것만이 일본 요리는 아니다. 설사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해도 일본화한 것은 일본 요리라고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영화라는 것이 서구에서 발명됐지만 한국에 들여와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게 만든 것을 한국 영화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 요리인지 생각해 보자. 외래 문물이 받아들여졌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일본 요리다.

 일본인이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고 지지해 온 음식이 일본 요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출신국이 각기 다른 카레라이스, 라면, 스파게티가 일본인의 일상식이 되었다면 그건 일본식 요리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일본인이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것, 그래서 일본화 된 것, 이것이 바로 일본 음식인 것이다.

 

 

 일본의 어떤 음식 책자를 봐도 유명한 음식점을 소개할 때는 프랑스 요리점부터 등장한다. 맛있게 잘하는 곳도 엄청 많다. 세계에서 프랑스로 요리 유학을 가장 많이 가는 민족도 일본인이다. 그래서 일본의 프랑스 요리는 대단히 맛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일본인에게 프랑스 요리 붐이 불었을까? 왜 일본 요리사들은 프랑스 요리에 강할까? 이탈리아 요리 붐은 버블 시대에 일어났다. 프랑스 요리 붐은 언제부터였을까? 알고 보니 아주 황당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그것도 장장 백 년도 넘는 시대의 사건이 그 동기다.

 개화 당시의 일이다. 힘에 의해 열려진 개항이라 그 당시 천황은 외국 사신과의 면담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때 프랑스 사신이 천황에게 일본의 전통 의상과 일본식 식사는 프랑스에 대한 모욕이라고 밀어붙였다. 천황에게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을 것과 연회 음식도 일본식이 아닌 프랑스 요리로 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궁중 요리에 프랑스 요리가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천황이 이런 신정부의 방침에 따라 천 년 넘게 지켜온 육식의 금기를 깨고 처음으로 고기를 사용한 프랑스 요리를 먹게 된 것은 1872년 5월이었다. 이를 계기로 식생활의 서구화는 한층 더 빨라졌으며, 특히 귀족들을 중심으로 프랑스 요리는 먹을 줄 모르면 안 되는 교양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귀족과 상류층을 위한 프랑스 요리점이 생기고 다른 요리사보다 많은 돈을 버니 이쪽만 연구하는 전문 요리사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게 벌써 백 년 전에 일본인이 프랑스 요리를 받아들이게 된 이야기인 거다. 그러니 맛없으면 그게 비정상이지.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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