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요리사 - 8점
이근배 지음/풀그림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책을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는 체하며 쓴 글은 죽어 있고 경험에서 나온 글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책의 발췌 내용을 올리기 위해 알라딘에서 이미지를 가져 오던 중, 이 책이 품절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흠, 이럴 땐 묘하게 기분이 좋다. 저자로서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독자로서는 마치 나만이 가지고 있는 리스트가 늘었다라는 느낌이랄까.

1990년부터 1998년 까지, 청와대 주방에서 전직 대통령 세명의 식단을 책임진 이근배 요리사의 에세이집이다.



청와대 요리사 / 이근배 지음 / 풀그림


초판 1쇄 인쇄 2007 3 15

     1쇄 발행 2007 3 20

     2쇄 발행 2007 3 30

 

 넷째,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라. 누구보다 자신의 경쟁자로부터 많이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만일 죽을 때까지 누군가에게 배우겠다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그는 천하무적이 될 자질을 지닌 사람이다. 배우겠다는 열린 자세가 아니라 나는 이미 다 배웠다, 다 안다는 닫힌 자세를 갖는 순간, 그는 자신의 우물에 빠질 것이다. 자신의 오만과 편견이 주변에 벽을 쌓아 스스로를 가두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린다. 하지만 경쟁자나 적으로부터 배우겠다는 투철하고 유연한 자세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끝없이 발견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대형 호텔에서 유럽 출신 조리사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다. 한국인 양식 조리사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람이 서양 사람보다 양식을 더 잘 만들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외국인 조리사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이 있다. 그들은 요령을 피우는 일이 절대 없다. 서양인들은 성실하고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다. 그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거나 배우기를 원하면 적극적이고 친절하게 가르쳐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세 살짜리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만 졸업하면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다. 이 점에 있어서 일본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며 이순신은 얄미운 적인데도 이순신 장군을 군신(軍神)으로 떠받들고 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치로 제독은 자신을 영국의 넬슨 제독에 버금가는 인물로 치켜세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넬슨은 군신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 세계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 된다.” 가와타 쓰도무라는 일본군 소좌는 한술 더 뜨고 있다. 러시아 함대와 충돌할 때 그는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게 도와달라고 빌기까지 했다. 적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운 일본인들은 그로부터 몇 백 년 지나지 않아 다시 이 땅을 유린했다.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먹어온 발효식품은 식품이라기보다 약에 가깝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일제시대에 이질이 돌면 일본 사람들은 턱턱 죽어나가는데, 같은 지역에 사는 조선 사람은 죽는 법이 없었다고 말이다. 이질은 세균에 의한 설사병이다. 지금이야 약이 좋아서 설사병이라면 가벼운 병으로 생각하지만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이질에 강한 이유가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질에 강한 것은 하루 세 끼 부지런히 김치를 먹은 덕분이었다. 이질이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이 김치에 있는 유산균에 약한 것이다. 김치 같은 발효식품이 가지고 있는 약리효과는 이것뿐이 아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발효식품이 발달한 또 한 가지 이유로 불교의 영향을 들고 있다. 불교가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고, 채식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불교정신은 불교에서 중요한 동물인 소를 대접하는 분위기를 이끌었다. 우리 조상들은 소가 들을까봐 그 앞에서는 소를 흉보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소를 귀하게 대접했다. 그러니 쇠고기를 먹는 것은 부잣집에서도 어쩌다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된장에도 단점이 있다. 나트륨이 지나치게 많고 비타민 A C가 부족한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는 데는 부추가 최고이다. 부추에 들어 있는 칼륨이 체외로 배설될 때 나트륨을 끌고 나간다.

부추에는 콩에 없는 비타민 A C가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부추에 있는 비타민 A가 된장의 항암 성분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2배의 항암효과를 낸다. 된장과 부추는 환상의 콤비인 것이다. 된장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부추를 넣거나 부추무침에 된장을 넣어 무치면 한결 완벽한 음식이 된다.

 맛있는 된장이 완성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미생물이 그 발효과정에 관여한다. 미생물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없다면 된장은 그토록 신비로운 힘을 갖지 못할 것이다. 2006년 농업어업예술위원회는 앤틱농수산물전을 개최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래 묵은 발효식품을 전시한 이 전시회에는 80년 된 간장, 60년 묵은 된장 등 갖가지 사연을 지닌 발효식품들이 출품되었다. 10~100년 묵은 이러한 발효식품은 수십만 원에서 1억 원까지 호가한다. 사람들이 이제 비로소 우리 발효식품의 진가를 알아채기 시작한 모양이다.

 

 

 우리 조상들은 고추장을 별나게 애지중지했다. 조선 중기의 대문호 연암 박지원은 부인과 사별하고 난 뒤 재혼하지 않고 살았다. 그는 안의현감으로 발령받자 안의로 내려가 나랏일을 보면서 집에 남겨둔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다. 연암은 편지와 함께 자식들에게 자기가 직접 담근 고추장을 한 단지 보내기도 했다. 조선시대 양반댁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고정관념을 무참히 깨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추장의 역사를 더듬으려면 고추가 언제 우리 땅에 들어왔는지를 살피는 것이 순서이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와 왜초(倭椒), 당초(唐椒), 만초(蠻椒),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 랄가(辣茄) 등 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서 겨자처럼 맵다 하여 왜개자(倭芥子)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개화사>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독살하려고 가져온 것인데, 고추가 우리 민족의 체질에 잘 맞아 오히려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자료에는 반대로 고추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추장에는 된장에 없는 성분 한 가지가 들어 있다. 고추에 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것이다. 고추의 캡사이신은 땀을 내도록 하여 노폐물 배출을 도와주고 비위를 가라앉히며 마음이 안정되도록 도와준다. 특히 캡사이신이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들어 고추장이 비만을 방지하는 음식으로 일본인과 중국인 등 외국인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2006년 미국의 건강전문잡지 <헬스(Health)>는 건강에 좋은 세계 5대 음식을 발표했다. 그 음식은 스페인의 올리브유와 그리스의 요구르트, 인도의 렌틸, 일본의 콩, 그리고 한국의 김치였다. 알려진 대로 올리브유는 심장병을 예방해 주고 요구르트는 면역성을 길러주며 말린 콩인 렌틸은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주는 섬유질이 풍부하다. 그리고 콩은 암과 골다공증 예방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김치는 섬유질이 풍부한 저지방 다이어트 음식으로 비타민 A, B, C 등 핵심 비타민은 물론 유산균이 풍부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음식물을 보존하고 맛을 내는 데 필요한 온갖 물질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세상이 되었다. 나아가 그것이 거꾸로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하니, 이래도 과학과 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도움만 준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돈이 너무 많으면 그 돈이 자식을 망치듯이, 먹을거리가 너무 많다 보니 음식이 사람을 망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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