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멧돼지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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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0.목요일

죽지않는돌고래


 

오늘 처음으로 딴지기사([방송]헌터스. 누구를 위한 사냥인가.)를 보고 헌터스라는 프로그램이 있는 걸 알았고 또 그게 멧돼지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란 것 또한 처음 알았다. 젠장, TV없이 살면 이렇게 정보가 늦다. (나중에 너부리 편집장이 하나 사주겠지 머...는 농담이고 원래 TV 없이 산다.)

 


 

걍, 멧돼지가 나와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한번 해볼까 한다. 이거 본 주제랑 전혀 상관 없는, 대안도 결론도 분석도 아닌, 걍 내 개인적인 추억이야기다. 일기장에나 끄적여야 할 얘기라고 뭐라하지 마시고 요즘 대세라는 생활기사로 읽어 주기 바란다. 

 


시대가 지날 수록 스트레이트 기사는 사향길로 접어들고 편안한 이야기 형식의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아 질거라는데 어떻게 보면 궁극적인 기사의 완성형이 딴지체가 아닐까. (무미건조한 스트레이트 기사는 과거, 한정된 지면 안에 보다 많은 내용을 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니 사람들이 이 딱딱한 기사형식에 익숙해져 이런 형식의 글만 기사다운 기사로 받아들이는 허무맹랑한 신뢰감이 생겨나게 됐다. 근데 이게 수년 전 부터 뒤집어 지고 있다는 말.)잡설 이만하고 회상 들어간다. 

 


멧돼지하면 생각나는 추억 첫번째.

 


난 멧~을 정말 많이 본 편인데(울 부대에서는 멧돼지를 친근하게 '멧~'이라 불렀다. 멧돼지 닮아서 별명이 '멧'인 놈도 있었고)군생활의 반을 GOP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딴 곳은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한 곳은 유독 멧돼지가 많았다. 짬밥을 먹으러 오는 아기 멧돼지는 귀여웠는데 집채만하다고 표현될 정도의 어른 멧돼지를 보면 뭐라고 해야하나... 실제 눈앞에서 보면 공포가 좀 쩐다. 조폭 10명한테 둘러 싸이는 정도의 공포라고 해야 되나.(물론 내 전설의 원펀치 쓰리 강냉이로 가볍게 제압할 수 있지만 말이다.)

 


잠시 작업 나갔다가 짱박혀 잘때 고라니가 코앞에서 날 쳐다본 적이 있다. 눈을 떠 보니까 고라니가 날 보고 있는 거다.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겨서 그런지 한참을 서로 쳐다 봤는데(손 뻗으면 머리 쓰다듬을 수 있는 거리)안 도망가고 날 쳐다보고 있더라. 고라니는 눈이 선한 편이라 그런지 정말 귀여웠다. 근데 그런 고라니조차도 뒷발로 맞으면 늑골 몇대는 나가겠지라고 생각하니 은근슬쩍 무서웠다.

 


어쨌든 가끔씩 OP를 찍으러 가면 멧돼지떼가 눈 앞에서 '쿵쿵쿵쿵쿵'하면서 지나가는데 7,8마리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거 눈앞에서 본 사람들은 왜 멧돼지가 무서운 줄 안다. 한6,70도 되는 각도의 산을 그냥 쏜살같이 지나간다. 스치면 사망이라는게 이해되는 스피드로 쌩하고 가는데 비무장지대에서 적생오성신호탄이 터졌을 때(적출현 신호)랑 비슷하게 쫄았다.

 


평소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던 소대장과 함께 야밤에 OP를 찍고 내려오는데(GOP에선 규칙상 단독행동이 안된다. 병사만으로 구성될 때는 3명, 또는 간부 1명+병사1명으로 구성되어야 이동이 가능하다. 병사가 꼭 3명이 같이 다녀야 하는 이유는 2명일 경우 마음이 맞으면 북한으로 튈 수 있기 때문. 무슨 인간심리 어쩌구 저쩌구를 기초로 인간이 3명 모이면 마음 맞을 확률이 희박해지므로 글케 정했다고 한다. 근데 군대가 다 그렇듯 이것도 가끔 어긴다.)그 장난만 치던 소대장이 진심으로 한마디 했다.

 


'죽지 않는 돌고래야, 잘하면 죽겠다. 장전해라.'

 


그렇게 멀리서 멧돼지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총알 한발 장전하고 쫄면서 산을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OP에서 우리 소대까지 산길로 4-5킬로쯤 됐다. 참고로 GOP에서 근무나 이동시 언제나 총알과 수류탄을 소지한다.)뭐, 우리가 건드리기 직전에는 멧돼지도 우리 안 건드린다, 걔들도 소리내면서 가면 우리 무서워 한다는게 상식이긴 하다만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멧돼지가 쿵쿵하면서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면 상식이고 나발이고 그냥 무서웠다.

 

 


멧돼지하면 생각나는 거 두번째

 


한번은 근무이동로에 꾸에엑 꾸에엑 소리가 났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멧돼지가 울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얘가 다리가 다 부러진 채로 누워서는 옴짝달싹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 원숭이 나무에 떨어지듯 멧돼지도 그 가파른 산길을 뛰어 다니다가 자빠져서는 다리가 부러졌다... 뭐, 우리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했다.(gop근무지에 경사가 가파른 곳은 정말 각도가 쩐다. 1년동안 페바에서 죽어라 훈련하고 매일 구보로 단련했는데도 처음 근무설 때 허벅지 쪼개지는 줄 알았다. )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우째 야생동물인 멧돼지가 것두 산길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자빠져 있을 수 있냐, 이거 완전 구라다'라는 반응이 예상되지만 고맙게도 증거 사진이 있다. 

 


 


내가 찍은 건 아니고 내 맞고랑 후임이 가서 찍어 온거다. 맞고가 좀 겁이 없어서 처음엔 경계하다가 좀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기도 했는데 멧돼지는 그냥 울기만 했다. (사실 이거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내가 교육받은 바로는 멧돼지는 4다리가 하늘로 뻗기 전에는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 괜히 좀 웅크리고 있어서 못 움직이는 줄 알고 가까이 갔다가 골로 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랜다.)그렇게 좀 있다 죽은 걸로 기억한다.

 


난 첨 알았는데 그렇게 멧돼지가 죽거나 뭔 일이 생기면 무슨 동물협횐가 와서 데려가더라. 민통선 안에까지 그런 사람들이 와서 동물을 데려가는게 좀 신기했다.

 


진짠지 가짠진 모르겠는데 우리 중대의 x소대는 구덩이에 빠진 멧돼지를 총살해서 먹었다고 한다. 이거 또 군대에서 어떻게 그렇게 총알 함부로 쓰냐, 이거 구라다 하시는 분들 있을 줄 아는데, 독립된 소대로 근무하는 gop에서 뭘 못하겠냐. 입단속만 잘하면 살인이 나도 당분간은 옆소대가 눈치 못챈다. 최소 1킬로 이상씩은 떨어져 있으니.(특히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gp는 더 할 거라고 본다. 글구 부소대장 따까리 하던 애들은 딱히 gop가 아니더라도 별의별 희귀약초를 캐러 다니던 경험 있을 거다. 흐흐, 선수끼리 모른 체 하지 말자. )

 


규칙상 근무 투입전에 영점조준을 위한 사격을 해야 하는데 애들이 맨날 근무다 작업이다 뭐다 해서 피곤에 쩔어있으면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탄이 계속 쌓이다가 나중에 탄피를 넘겨야 할 때쯤 되면 소대장이랑 내가 가서 무지하게 갈기고 왔던 걸로 기억한다.

 


쏴야할 양이 너무 많으니 k3고 뭐고 몇정씩 어깨에 둘러 메고 가서 소대장이랑 몇천발씩 쏘면서 놀았다.(하나로만 계속 갈기면 총기수입할 때 짜증나고 그 총만 집중적으로 상하므로.)철봉 비스무리한거 맞추기 하면서 놀았는데 하도 쏴대니까 나중에 구멍이 뽕뽕 뚫려서 쓰러졌던 걸로 기억한다. 글고 보면 사격하나는 정말 미친듯이 했다. 그러니까 근무투입 전 사격시간에 맞춰서(소리가 나니까 그 시간에 상부에 보고해야 된다.)멧돼지 좀 쏴도 아무도 모른단 말이다. 걸리면 물론 영창가겠지만.

 


계속 이런말만 하다보니까 내가 군생활 너무 가라로 한거 같은데 나름 사단 선봉 분대장에 분대공방 같은 거 할때도 사단 1등먹고 그랬다. 까질땐 까지더라도 할땐 했다, 요거 짚어 주면서 다음 이야기. 

 

 


멧돼지하면 생각나는 거 세번째.

 


나 또한 당빠 상식적으로 동물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행위에 대해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왠만큼 특별한 이유가 아니고서야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넘들은 천벌받아 마땅한 거고 지구 환경을 위해서라도 더불어 살아야 된다는 주의다. 뭐, 이런데서 소고기, 돼지고기 먹는 걸로 따지고 들어오면 할말 없고. 

 


아참, 뜬금없지만 요번에 햄스터 믹서기 간 넘, 그 넘은 진짜 정신치료 받아야 된다. 미국에서 범죄 연구하는 아저씨 책보니까 어릴 때 곤충 날개 뜯고 이런 애보다 그렇게 포유류를 가지고 이상한 짓 하는 넘들이 진짜 인간에게도 무시무시한 짓 할 확률이 높단다. 이유는 인간도 포유류인, 그니까 같은 종이라서 그렇대나. 어쨌든. 

 


한번은 옛 여자친구가 하도 토끼가 귀엽다고 그래서 키우자고 그랬는데 절대 안된다고 했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 없으면 키우지 마라고. 뭐, 결국 못 이기고 내가 사는 곳에서 키웠는데 여친 관심도 시들해지고 내가 잘 못 보살핀 탓인지 1년을 못가 죽었다. 길거리에서 산 토끼라서 처음부터 그렇게 건강하진 않았지만 심히 괴로웠다.

 


난 부모님 생일은 까먹으면서 애완동물 생일 챙겨주고 별의별 호들갑 떠는 애들을 좀 맛간 애들로 생각했는데(부모님한테도 잘하면 무효!) 키워보니 조금은 그 마음이 이해 가드라. 이게 정들면 진짜 가족이다.(뭐 이거랑 별개로 갠적으로 둥물을 꽤 좋아하긴 했다. 근데 병적으로 떠 받드는 건 좀 이상했단 말.) 유럽 같은데서 애완동물 키우는 걸 인성교육의 하나로 친다는데 그게 뻥은 아닌 것 같다.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 같고 뭔가 짠한 것도 많았고. 뭐, 그만큼 걔네들도 버려지는 애완동물이 많아서 골머리를 썪지만. 

 


어쨌든 여친이 죽은 토끼가 징그럽다고(병나서 죽었다)자꾸 안본다길래 처음으로 버럭 화를 내면서 두눈 뜨고 묻는 거 똑똑히 지켜보라고 했다. 이게 무책임한 결과라고. 내가 키웠으니 내가 잘못한게 더 많은데 자격지심에 화를 그렇게 냈나보다. 어쨌든 고이 고이 묻어 주고 명복도 빌어주고 그랬다.    

 


뭐, 내가 동물 싫어하는 넘 아니다, 오해받아서 괜히 다구리 당할까봐 약 좀 치다보니 얘기가 길어졌다. 어쨌든. 

 


우연히 한 블로그 회사 덕분에 공짜로 민통선 여행을 간적이 있었는데 이때 그 마을에서 위원장하는 분이 옆자리에 앉아서 얼씨구나 싶어 즉석 인터뷰를 땄다.(아, 글고 보니 이 얘기도 되게 잼나는데. 민통선 안에 사는 사람들이 좀 특수한 데서 사는 만큼 국가랑 싸움을 많이 한다. 국가에서 이 사람들 도청따다 걸려서 망신당한 적도 있고. 이건 나중에 기회있음 기사로 써먹어야지.)

 


민통선 안에서 농사짓는 분들은 정말 멧돼지 때문에 약이라도 먹고 죽고 싶은 심정이란다. 사실 불법이라고 들었는데 200볼튼가, 뭐 어쨌든 엄청나게 센 전류가 흐르는 철선을 농지 주위에 쳐 놓는다. 당빠 무쟈게 위험하다. 다들 알면서도, 또 위에서 알면서도 은근슬쩍 넘어간다고 하는데 것때메 농장 주인이 꼭 1년에 몇명씩 죽는단다. 근데 그걸 안 치운다. 그거 치우면 1년 농사 다 망하니까. 그 이야기 듣고 얼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위험한데도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선을 칠까하고 생각했다.

 


멧돼지 죽이는 거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방치하자는 것도 아니다. 걍 멧돼지 얘기 나오니까 생각나서 한번 풀어 봤다. 나처럼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해서. 뭐, 그렇다고.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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