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서울의 한 고시원 옥탑방이다. 사람들은 고시원 옥탑방이라고 하면 굉장히 열악한 환경으로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일단 방 안에 화장실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방 안에 화장실이 있는 고시원은 이쪽 세계에선 특A급에 속한다. 강남으로 치면 청담동급이란 뜻이다.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가 굉장히 친절하신데다 몇몇 이유로 점수를 많이 딴 덕에 막 담근 김장김치를 미리 챙겨 받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옥탑방은 겨울에는 조금 더 춥고 여름에는 조금 더 더운 단점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답답한 것보다야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문을 열어 둘 수도 있고 방안을 환기하는데도 좋다. 무엇보다 최고의 장점은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까지 올라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점이며 문만 열면 건조대나 세탁기의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에 빨래를 위한 가장 신속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은 내가 사는 고시원의 옥상 풍경으로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가 상추,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하고 있어 무공해 채소나 과일을 얻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 김창규
고시원



단점이라면 가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을 때, 못 알아 듣겠다는 표정을 짓고 서로 멋쩍어 하는 경우가 있는 정도다. 거주자의 반 이상이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생활할 당시, 중국계 직업여성을 상대하는 화장품 방문판매에 따라 나선 적이 있다. 그때 배운 중국어 단어가 고시원 친구들에게 통해서 매우 기뻤다. 예를 들어 '펑요우'(친구라는 뜻) 같은 것 말이다.

 

기본 정도 중국어라도 배워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점이 너무 아쉽다. 그랬다면 매일 실전을 하면서 비약적으로 중국어가 늘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옛 어른들이 기회가 있을 때 배워 두어야 한다고 했나 보다.

 

중국인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 것도 이곳에서 얻은 귀한 경험 중 하나다. 특히 공동부엌에서 이따금 보는 그들의 요리솜씨는 정말 '언빌리버블'하다.(강호동 말투로 해줘야 제 맛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순식간에 요리가 완성되는지, 한국남자가 중국남자에게 배워야 할 제 1의 장점이 바로 요리가 아닐까 한다. 때때로 중국인 남녀가 같이 요리라도 할라치면 그 조그만 부엌에 사천성 최고의 조리장이 온 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몇몇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은 어딜 가나 시끄럽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이 큰 목소리로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뭐, 목소리가 크면 솔직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방은 이 고시원 내에서 유일하게 창문이 달린 방이다. 옥탑방인 데다 제일 끝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이 없는 곳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아주 약간의 햇살이라도 방안으로 들어 올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건 정말로 큰 행운이라는 것을. 앞쪽 건물 때문에 창의 정면이 막혀 있고 고시원 내에서 가장 추운 방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가 이 방을 선택한 이유다. 햇살은 그만큼 소중하다.
ⓒ 김창규
고시원


다만 주위 환경은 그렇게 훌륭한 편이 아니다. 컴퓨터가 고장 나 PC방에서 원고를 쓸 요량으로 주위를 좀 걸었는데 PC방의 80%가 성인도박, 성인채팅 전용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고시원 제일 아래층에는 묘한 분위기를 내는 남성전용 성인마사지방이 있다. 내가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아마 이보다 좋은 환경도 없을 듯하다.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반칙 쾌락'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인데다 한 건물 안이다 보니 누군가의 눈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방을 정하고 아버지와 출판사 사장님이 놀러 왔을 때다.

 

'음, 여긴 환경이 안 좋은 것 같아. 주위가 다 유흥가인데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그런 업소잖아.'

 

출판사 사장님은 곧 사회 초년생이 될 나를 친아들처럼 걱정해주며 다른 방을 찾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 주었다. 그때, 아버지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창녀촌 한 가운데서도 공부에 열중할 수 있어야 그게 진짜 공부 아닙니까. 이런 데서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지요. 난 괜찮다고 봅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났다. 다행히 나는 내 방으로 가기 위해 매일 지나치는 그곳에 한번도 출입한 적이 없고 지난 달에는 의외의 수입이 있었던 탓에 부모님께 45만원의 용돈을 드릴 수 있었다. 조만간 부모님을 서울로 초대해 얼마 안 되는 원고료를 모은 돈이지만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대접해 볼 생각이다.

 

자식은 부모가 믿는 만큼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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