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자취방에서 뒹굴 거리며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계란을 얼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몇 개를 냉동실에 넣어 보았다.

 

다음 날, 냉동실에 넣어 놓았던 계란은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며 돌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양손을 번갈아 가며 계란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열려 있는 문을 향해 힘껏 계란을 던졌다.

 

당시 내가 살던 자취방은 독립주택 뒤쪽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창고 같은 곳으로 구석진 골목길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가벼운 스테인리스 재질의 문에는 자그마한 사각형 모양의 올록볼록한 유리가 촘촘히 박혀 있는 창이 붙어 있었다. 오래된 만화방의 변소간에 붙어있는 그런 창 말이다.

 

머리를 숙여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말로 딱 한 발짝 거리에 방으로 들어가는 나무문이 나타나고 그 나무문을 열면 또 거기서 한 발짝 거리에 내 침대가 있었다. 두 문을 열고 침대에 누우면 정면으로 돌덩이가 군데군데 박혀있는 시멘트 벽이 보였다. 빛이란 빛은 모두 막고 있는 그 시멘트 벽을 향해 계란을 던진 것이다.

 

계란을 확인하러 몇 발짝 움직인 나는 시멘트 벽이 움푹 파여 돌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떨어져 있는 계란은 돌 부스러기가 묻어 있을 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계란을 던졌다.

 

시멘트 벽에 붙어있던 돌은 또다시 잘게 바스러졌지만 계란은 눈곱만큼의 파인 자국만 있을 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쩡했다.

 

그 경험이 원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수능 30일 전에 처음으로 수학 교과서의 집합 부분을 폈다. 30일 동안은 학교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수능 하루 전을 제외하고 30일간의 기억이 없다. 다만 꿈에서도 교과서를 읽고 있었던 것 같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짧은 노력의 경험들이 모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이끌어 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수능이 13일 남았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당시의 나 같은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도 정체를 정확히 할 수 없지만 무엇이 무서운지, 무엇이 싫었는지, 난 항상 도망 다녔다. 학교에게서 가족에게서 그리고 나에게서. 

 

특별히 중요한 일이 없다면 지금 한번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도망만 치며 살던 내가 하기에는 우스운 말이지만, 13일을 남기고 처음으로 교과서를 펴는 것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단 13일이라도 노력한 자신을 칭찬하고 싶은 날이 온다.

 

실패해도 좋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좋다. 남에게 비웃음을 받아도 좋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만큼은 정면승부한 자신을 스스로에게 선물했으면 좋겠다. 수능 점수는 학력을 증명해 주지만 그 경험은 나 자신을 증명해 준다.





















art by Jean Honore Fragonard 

(The Readder)

note by 죽지 않는 돌고래,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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